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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7. 2024

퀀텀점프의 순간

                              

언니는 지구 반대편의 자기 삶으로 돌아갔다. 보름간 언니가 쓰던 방은 다시 내 서재가 되었고, 오늘 아침엔 보름 전처럼 혼자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식구들이 모두 출근하고 나서 늦게 먹는 커피와 빵 한 조각의 아침은 언제나 같은 풍경인데, 어쩐지 같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언니가 와 있던 보름, 그 이전에는 이것이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은 혼자만의 아침 식사뿐 아니다. 두 주간 멈추었던 모임과 수업을 재개했다. 기다려 준 사람들은 반가웠다.

오늘은 경기비전센터에서 매주 갖는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지난 모임에서 나누었던 말들은 어떤 것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변화의 대부분은 비스듬하고 완만한 경사가 아닌, 계단의 모습을 한 것만 같다고 말했었다. 그건 주제가 아닌, 곁가지의 사담이었는데 그 말을 기억했다가 오늘 에세이를 써오신 분이 계셨다. 이른바 퀀텀 점프를 인용해 아이가 커가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인상적인 인용을 해준 그분의 글 덕분에 나 역시 퀀텀 점프를 생각했다. 퀀텀 점프란 어떤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물체가 변하는 게 서서히 변하는 게 아니라, 아무 변화가 없는 듯하다가 갑자기 상태가 변하는데, 그 변화의 정도가 점프하듯 매우 큰 현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원래는 물리학 용어지만, 요즘 들어 경제나 사회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그럴 땐 주로 각성, 혁신 등의 의미를 설명하는 단어가 된다.     


누구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퀀텀 점프를 경험하는 순간은 있다. 마음을 깨닫는 일, 요령을 터득하는 일, 지름길을 발견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 외에도 익숙한 곳에서 낯선 풍경을 찾아내는 일, 낯선 것이 드디어 내 것처럼 익숙해지는 순간도 역시 삶에서 발견하는 퀀텀 점프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어떤 퀀텀 점프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어떤 점프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길에 있을, 있었으면 하는 퀀텀 점프의 순간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단행본 분량의 글을 완성해 놓았다고 해서 책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독립출판을 하면 모르겠지만, 자비출판도 관계없다고 생각하면 또 모르겠지만 기획출판을 하고자 한다면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완곡한 거절의 메일을 받는다. 때로 그조차 없어 묵묵부답은 거절의 말과 동의어임을 짐작하고 서운해한다. 

내 이름으로 된 공저를 몇 권 내고, 단행본을 두 권 출판했다고 해서 매번 새로운 책의 출판이 쉽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기다리며 쓰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엔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쓰는 것이 좋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고 자신에게 말하는 많은 말들.     


늘 기다리는 것은 쉽사리 오지 않고, 기대하는 건 도무지 만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임에서 퀀텀 점프를 인용한 글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나의 글쓰기에도 퀀텀 점프의 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어떤 것’이 생긴다. 글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거나, 에세이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나만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내가 하나의 문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게도 퀀텀 점프의 시간이 와주려나,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것은 누가 앞에 놓아주는 뜀틀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찾아야 하고, 찾았을 때 그 점프를 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곳에 이르는 길이 하나일 리 없고, 하나의 문만 그리로 통할 리는 없다. 

내게 퀀텀 점프가 필요한 건지, 그 순간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한 건지, 점프할 용기가 필요한 건지 그 어느 쪽일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모두가 필요한 듯도 하고, 그 모두가 자신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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