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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y 12. 2024

미래를 상상하는 일

                         미래를 상상하는 일     

오카리나 수업이 끝나고 어쩌다 수강생 중 넷이 모여 차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일 년 넘게 수업을 듣지만, 수강생들과 개인 시간을 가져보긴 처음이다. 수업 시간에 웃고 떠들지만, 끝나고 나면 다들 집으로 향하기 바빴다. 

주민센터에는 많은 강좌가 있어서 어떤 강좌는 매주 모여 밥을 먹기도 하고, 매달 소소한 회비를 모아 다 같이 회식을 하기도 한다는데 오카리나는 그런 것이 없다. 유일하게 지난 연말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간단한 다과회를 했던 것이 전부.      


이런 분위기는 선생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오카리나를 지도하시는 선생님은 명절이나 기념일에 꽃 한 송이 드리는 것도 꽤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저는 이런 것 안 해요, 라고 하시는 걸 보면 혹시나 수강생들에게 부담 줄까 봐 신경 쓰시는 분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단체모임이라면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친한 몇이 모이는 자리는 굉장히 좋아하는지라 가끔 오카리나에서 사귄 몇 분과는 그냥 헤어지기 서운하기도 하던 차에 마침 기회가 왔다.      


“끝나고 시간 있으면 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

맞은편에 앉은 두 분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라고 했다. 두 분이 수업 끝나고 티타임 약속을 잡는 그 순간, 우연히 눈이 마주친 M님이 내게도 말했다.

“자기도 커피 마시고 가.”

네, 하며 얼결에 끄덕이고 나니 아뿔싸! 지갑을 안 가져왔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하필 집 앞이라고 지갑을 안 갖고 왔네. 돌아가신 엄마는 늘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다. 화장실 갈 때도 챙겨야 하는 게 지갑이라고. 역시 엄마 말씀은 뭐든 맞는 법이라니까.

“저어, 근데, 지갑 안 가져왔어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는 나를 보고 M님이 화통하게 웃으셨다. 

“내가 사줄게.” 그러더니 내 옆에 앉은 E님께도 말씀하신다. “자기도 가자!”

나와 E님이 친한 사이라는 걸 아시는 분이라 얼른 E님도 끼워주시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네 명은 수업이 끝나고 근처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네 명 중 E님이야 이미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분이니 편한 사이고, 나머지 두 분은 함께 수업받은 지 반년이 다 되어온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두 분의 대화가 참 친근했다. 야! 너! 같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쉽사리 나오기 힘든 호칭들이 자연스러웠다.     

커피 마시고 삼십 분만 있다가자던 여자 넷의 대화는 약속한 시각을 훌쩍 넘겼다. 오카리나가 끝나고 나면 라인댄스를 하러 가신다는 에너지 넘치는 분들. 다른 요일엔 탁구도 치신다는 활기찬 분들. 그런 분들의 대화 역시 쉼 없이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남편 흉을 신랄하게 보다가, 자식을 걱정한다. 사위도 자식이라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그분들은 사위나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집 치우랴, 지저분한 살림 정리하랴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다며 그냥 밖에서 밥이나 먹고 헤어지는 게 낫다고 하시며 웃는다. 아직 딸이 결혼하지 않은데다 주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니 막상 접할 일이 없는 요즘 장모, 요즘 시어머니들의 모습이구나 싶다.      


오랜 교직을 내려놓고 정년퇴임 하신 나이. 어느새 사위, 며느리를 보는 나이. 나보다 십 년쯤은 윗 연배이실 분들의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인 대화를 들으며 함께 웃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의 십 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십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십 년 후의 나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사실 십 년까지 갈 것도 없이 늘 지금 이후는 알지 못하는 시간이니 막연하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 뿐이고, 지금만 알 뿐이다. 그러니 살아봐야 안다고 우리가 말하는 시간은 늘 현재에 머물러있다.     

 

즐거운 티타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십 년 후 내 모습은 여전히 막연하다. 하지만 그때쯤엔 나도 나보다 십 년쯤 어린(?)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정겨운 반말도 섞어 써가면서 사위 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원래 몸치야”라고 하면서도 라인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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