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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3. 2024

국팔고백

                                    

파주 출판도시를 찾아가는 길, 평일임에도 고속도로는 제법 막혔다. 출판사 담당자와의 미팅은 11시였는데 늦지 않으려 무려 2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했건만, 내비게이션은 도착시간이 10시 50분이라고 안내했다. 도착해서 여유가 있겠지 싶던 마음은 점점 늘어나는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조급해졌다.     


운전하는 입장에선 길이 막히면 답답하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최선이다. 예전의 나는 차선을 바꾸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싶어 이리 저리 차선을 넘나들기 일쑤였다. 급출발, 급제동도 종종 했다. 더 마음이 급하면 가끔은 앞차에 번쩍! 상향등으로 신호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추월하며 깜빡깜빡, 미안한 표시등을 켜는 건 잊지 않았지만.

길이 막히면 막히는 대로 이처럼 마음이 조급해서 운전이 거칠어졌고, 뻥 뚫린 도로에선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액셀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과속으로 딱지도 줄줄이 끊어봤지만, 그 버릇이 영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언제인가부터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린다. 웬만해선 1차로를 타지 않으며, 한번 올라탄 차선도 잘 바꾸지 않는다. 나는 느긋해진걸까, 여유있어진걸까. 빨리 달려 일찍 도착하는 게 최선, 이라는 생각을 바꾸니 오히려 편했다. 빨리 간다고 서둘러봐야 큰 차이 없다는 마음도 이제 자리 잡았다. 예전에 우스개처럼 자신의 운전은 ‘국팔고백’이라고 하는 지인이 있었다. 국도에선 80킬로, 고속도로에선 100킬로로 달린다는 것이다. 들을 때마다 웃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국팔고백’의 운전자인 셈이다.     


약속 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초행이었던 파주출판도시의 널찍한 거리엔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고 온통 출판사 간판을 단 건물들이 이어졌다. ‘출판도시’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마치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고, 글자들만 모여 사는 곳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거대한 한 권의 책 같은 도시. 과묵한 활자들처럼 출판사들이 이어지는 도시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그 활자 중 하나인 출판사와의 미팅도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이제 길이 덜 막히려나. 희망대로 길의 정체는 풀려있었다. 오전에 두 시간이 걸렸던 길을, 돌아갈 때는 한 시간 반도 채 안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다. 정체가 풀린 길을 느긋하게 달렸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쯤으로 달리면 과속카메라에 찍힐 일도 없고, 속도에 긴장을 덜 하기 때문인지 주변 풍경도 좀 더 느긋하게 다가온다. 내 앞뒤에서 달리는 차들도 유심히 보게 된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빠는 운동신경이 둔한 나를 걱정하시며 ‘항상 앞차 뒷바퀴가 보이게 다녀라’ 하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내가 운전할 때 머릿속에 1순위로 두고 있는 조언이다. 문득 그 말을 생각하다가, 나이가 든 후 운전을 그만둔 무렵의 아빠를 떠올렸다.

오로지 집과 가까운 골프연습장만을 왕복하는 운전이었는데 그마저도 접게 된 이유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주차하다가 옆 차를 아주 살짝 스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찌그러진 것도 아니고, 페인트가 살짝 묻은 것처럼 스친 정도라서 아빠는 옆 차와 닿았다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결국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일생 운전을 했던 아빠는 차를 팔고, 운전대를 놓았다.      


요즘 뉴스에선 고령 운전자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일이 잦다. 얼마 전 오카리나 수업을 함께 듣는 분도 운전을 그만둔 이야기를 했다. 정년퇴임을 하신 그분이 운전을 그만하게 된 건 얼마 전이라고 했다. 평소에도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분답게 운전해서 안 다니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운전하는 것이 겁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이제 운전을 그만해야겠구나’ 싶더라는 것이다. 미련 없이 운전을 접고,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데 그렇게 맘이 편할 수 없다고 하신다.     


나는 한때 일 년에 4만 킬로를 운전하며 돌아다니기도 했었지만, 살아있는 것이라면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예전과 비교해 꽤 얌전해진 운전을 생각하면 나도 조금씩 나이 먹는 운전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겁 없이 달리던 나이를 지나 이제는 운전대의 무거움을 먼저 생각하는, 겁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여기서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마 내게도 운전대가 겁나는 나이가 찾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나 역시도 미련 없이 운전대를 놓고 행복한 뚜벅이로 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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