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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y 24. 2024

강낭콩의 시간

                                      

"나는야~ 강낭콩 왕이 될 거야~"

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일 아침 물을 준다. 강낭콩은 자고 일어나면 밤사이 훌쩍 자라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 ‘잭과 콩나무’에선 땅에 떨어진 콩이 하룻밤 사이에 하늘까지 닿은 콩나무가 되어, 그 나무를 타고 거인의 집에 올라가는 잭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서 그런 동화의 소재로 ‘콩’이 등장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강낭콩은 쑥쑥 큰다.     


처음 시작은 어린이날 즈음이었다. 딸이 근무하는 영어유치원에서 강낭콩 심기 실습을 하고 남은 것을 얻었다며 일곱 알의 강낭콩과 배양토를 들고 왔다. 작년 한 해는 주민센터의 텃밭 추첨에 당첨되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행운이 따라주지 않아 시무룩했던 나를 기억했는지 “강낭콩 키워볼래?” 하며 가지고 온 것이다. “그렇다면!” 외치며 신이 났다.      


종이컵에 한 알씩 파종하고, 앙증맞은 떡잎이 올라와 꼬투리가 떨어질 즈음이 되었을 땐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스티로폼 상자 하나로 모자라서 커다란, 정말 커다란 베란다용 텃밭 화분을 두 개 더 샀다. 화분이 크니 배양토도 많이 사야지, 하며 주문한 것이 50ℓ였다. 50ℓ에 감이 없던 나는 쌀 포대가 배송되어온 줄 알고 그 크기에 기겁했다. 이왕 심는 거, 강낭콩 일곱 개가 차지하기엔 넓은 면적이니 상추 모종도 몇 개 심었다. 나날이 일이 커진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만, 뭐든 그렇다. 이미 시작하면 되돌아가긴 쉽지 않은 법이지.    

  

커다란 텃밭 화분으로 옮겨 심은 강낭콩은 나날이 키가 커서 대를 세워 주어야 했다. 마르지 않게 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드디어 꽃이 피었다!

작고 귀여운 강낭콩꽃. 경이로움 가득한 눈빛으로 넓적한 콩잎에 비해 작고 여린 그 연보라색 꽃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벌이며 나비가 드나들지 않는 베란다에서 수정이 되려나 싶었다.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이 다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붓질해서 꽃가루를 옮겨주어야 하나 싶어 검색하니 강낭콩은 그게 필요 없는 식물이라고 했다. 신기했다. 이 꽃 저 꽃으로 나비와 벌이 꽃가루를 옮기며 수정을 시킨다는 건 알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은 또 모르고 있었던 거다. 이것 역시 생물 시간에 배웠을텐데 이제 잊는 것은 빠르고, 새로 익히는 것은 그만큼의 속도가 붙지 않는 나이다. 다행인 건 그나마 인터넷이라는 신세계 덕에 궁금한 것은 바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수많은 선생님께 감사하며 강낭콩 재배기들을 검색하다 보니 아주 높은 비율로 강낭콩 관찰일지 내용이 많았다. 초등학교 수행평가 단골 소재인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발아율도 좋고, 쑥쑥 잘 크고, 저 혼자 열매도 맺고. 이러니 어린이들의 관찰일기로 적합한 작물이 된 게 아닐까. 역시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요즘 나는 꽃 진 자리에 꼬투리가 맺힌다는 블로그의 글을 검색하며 기대감이 급상승하는 중이다. 고작 일곱 개의 강낭콩을 심었으니 거기서 열매가 열려봐야 몇 개 열리지도 않을 것을 안다. 사다 먹는 강낭콩을 생각한다면, 이미 화분이며 배양토만 해도 그 값을 훌쩍 넘어섰으니 돈으로만 가늠해본다면 애초에 수지타산이 맞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엔 돈으로만 가늠할 수 없는 일이 더러 있다. 계산으로만 정리할 수 없는 일도 종종 생긴다.    

 

열어둔 베란다 창으로 늦봄의 바람이 들어왔다. 연하디연한 강낭콩 잎이 바람에 팔락팔락 흔들렸다. 나는 창을 열고 그렇게 선 채로 한동안 엄지손톱만 한 꽃이 핀 강낭콩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한해살이 작물인 강낭콩. 종이컵에 발아시켜, 화분으로 옮겨 앉은 이후에도 이렇게 쑥쑥 잘 자라고 있는 나의 강낭콩. 

열매를 맺고 나면 일 년짜리 강낭콩의 생애는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지지대와 줄을 타고 오르는 강낭콩의 삶을 생각했다. 

일 년을 천년같이 애쓰는 그 삶을. 천년처럼 애쓰지만 결국 일 년뿐인 그 삶을. 

우리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을테니 지금 내 삶은 어디쯤에서, 어디를 향해 애써 가지를 뻗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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