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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3. 2024

그 괘종시계

                                그 괘종시계          

그 시계는 아주 고풍스러웠다…. 고 기억하지만, 그건 지금의 마음이다. 사실 내가 십 대 시절부터 이미 그것은 낡고 오래된 고물 취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괘종시계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해서 받은 아빠의 첫 월급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짙은 색의 호마이카 틀을 가진 커다란 그 괘종시계는 앞 유리를 열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 유리문을 열면 아래 칸에는 나비 모양의 태엽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으로 시계 숫자판 가운데의 구멍에 맞추어 돌리면 따르륵, 따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태엽이 돌았다. 시계는 때맞춰 태엽 밥을 먹이고, 시곗바늘을 정시에 잘 맞추어 두어도 늘 느리게 갔다.      


요즘 세상에 괘종시계라니! 

손목시계도 밧데리를 끼우는 세상에 태엽을 감아주는 시계라니!     


우리는 이사할 때마다 저것부터 버려야 한다고, 새집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타박했다. 우리들의 성화에 커다란 그 괘종시계는 거실에서 슬그머니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빠는 집안 살림에 참견하는 법이 일절 없었지만, 그 괘종시계만큼은 아껴서 안방 침대 옆에 늘 두고 보았다. 이래도 저래도 시간이 맞지 않았지만, 정각이 되면 열심히 댕댕댕 종을 울리는 그것에 열심히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도 아빠뿐이었다.    

  

스무 살 무렵 집들이 선물로 한창 유행이었던 건 뻐꾸기시계였다. 택지개발지구의 한 끝, 마당에 앵두나무를 심은 새집으로 이사했을 때 누군가 그 뻐꾸기시계를 집들이 선물로 주었다. 정각이 되면 시계 위의 작은 창이 열리고 앙증맞은 뻐꾸기가 튀어나와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태엽 밥을 먹어도 안 먹어도 늘 느린 아빠의 괘종시계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나면 잠시 후 안방에서 댕댕댕 종을 쳤다. 뻐꾸기가 울어 젖히고, 뒤이어 돌림노래 하듯 댕댕댕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오래 살았다. 그리고 결국은 다들 헤어졌다.


내가 결혼했고, 동생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홀로 갔으며, 지구 반대편의 나라로 언니가 결혼해서 떠났다. 부모님 두 분만 남은 집에선 여전히 정각이 되면 뻐꾸기가 튀어나와 울었고, 잠시 후 뒷북치듯 안방의 낡은 괘종시계가 댕댕댕 울렸다. 가족 모두 함께 이사 왔던 집에서 나갈 땐 나이 든 부모님 두 분만이 함께였다.     

부모님이 이사한 새 아파트엔 그에 맞게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끝내 버리지 못하고 가져간 건 오래 아낀 장롱과 떠난 동생이 쓰던 책상, 그리고 낡은 괘종시계였다. 아빠는 아들의 책상에 앉아 매일 혈압을 쟀고, 생각난 듯 일어나 시계 문을 열고 태엽을 감아줬다. 


그렇게 여러 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는 먹은 것을 잊고, 했던 일을 잊고, 어제 일을 잊었으므로 이내 시계태엽을 감는 일도 잊었다. 언젠가부터 정각이 되어도 괘종시계는 종을 치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엉뚱한 시간을 가리켰다. 

그리고 엄마 역시 병이 들었다. 매일 부모님 댁에서 오전을 함께 보내고 출근했다. 병자가 둘인 집안의 낡은 괘종시계는 어쩐지 서글퍼서, 나는 생전 관심 없던 그것의 태엽을 가끔씩 감았다. 따르륵, 따르륵…. 하지만 시계는 한 번도 정확하게 맞지 않았다. 바늘을 돌려 맞춰두고 가도 다음 날 아침에 와보면 시곗바늘은 흐르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한참 뒤처져 있었다.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안방 침대에 홀로 누운 엄마의 병도 깊어졌다. 어느 날 병문안을 왔던 사촌이 말했다. 

“언니, 저 오래된 괘종시계는 버리시는 게 좋겠어요. 병자가 있는 방에 너무 오래되어 망가진 물건이 있는 건 좋지 않아요.”

사촌이 돌아간 후 증세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 엄마 역시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 부모님이 그리 아끼던 괘종시계를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내다 버렸다. 무겁고 커다란 그 괘종시계를 안고 쓰레기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것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아빠의 첫 월급이었다던 괘종시계. 아빠가 아무것도 잊지 않던 시절에 규칙적으로 꺼내어 감던 나비 모양의 커다란 태엽. 한때는 빛났다가, 어느새 퇴물이 되고, 급기야는 내 손에서 버려지는 그것을.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오래된 괘종시계를 생각하곤 한다. 낡고 먼지 앉은 괘종시계를 껴안고 쓰레기장으로 향하던 그 밤도 가끔 생각한다. 그 밤, 내가 버린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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