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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6. 2024

여행자의 도시

                                        

뉴욕은, 그중에서도 맨해튼은 가보지 않아도 어쩐지 익숙한 곳이다. 파리, 로마 등의 대표적인 관광도시가 그렇듯 뉴욕도 가까이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혹은 멋진 구도의 사진들. 그 프레임 속에서 뉴욕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뉴욕이라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거나, 어둡고 칙칙한 밑바닥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때론 눈부시고, 때로는 음침한 그곳 뉴욕은 내게 있어 늘 궁금한 곳 중 하나였다.     


캐나다를 경유했으므로 뉴어크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맨해튼에 들어섰다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표현 그 어느 것 하나 필요 없이 그곳은 정말 ‘빌딩 숲’이었으니까. 서울시민은 아니어도, 서울 근처 시민쯤 되는 내가 빌딩이 낯설 것은 없다. 그런데 맨해튼, 특히 그곳의 중심인 미드타운의 빌딩들이 유난히 ‘숲’이란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그리 넓지 않은 도로에, 인구 밀집 지역답게 위로 한없이 솟은 빌딩들이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수십 층의 빌딩들은 그 자체로도 높지만, 좁은 도로 탓에 유난히 서로 가까이 마주 보며 빼곡하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여행자는 맨해튼에 캐리어를 펼치자마자 바빴다. 궁금한 곳이 너무 많았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곳은 널려있었다. 영화 속 킹콩이 오르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뉴욕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 뿐만 아니었다. 해외기사의 말미에 종종 붙는 그 유명한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있는 곳,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는 세계의 풍경을 보여줄 때면 빠지지 않던 타임스퀘어. 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지만 어쩐지 실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그 뉴욕을 확인하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뉴요커들 대신 어디에나 넘쳐나는 관광객을 봤다.      


여행은 결국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는 일이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일상을 상자 속에 넣고 잠시 뚜껑을 닫아 구석으로 밀어놓는 일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의 짧은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가 찾아간 곳은 결국 관광지이니 그곳엔 그들의 일상이 보이지 않았다. 출근하는 그들, 일하는 그들 대신 높고 화려한 빌딩들이 있고,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 적당한 긴장감과 또 그만큼의 자유로움이 여행의 시간을 채웠다.     


며칠이 지나고 뉴욕의 거리가 익숙해질 즈음이 되자 다시 가방을 꾸렸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의 뉴욕 거리를 걷는 마음은 또 달랐다. 뉴욕에 오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있고, 자유의 여신상도 있는데 왜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것 같은 뉴요커들은 없는 거야, 라며 웃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왜 뉴요커가 없었겠는가. 내가 들어간 기념품 가게의 캐셔도, 내가 타고 일주일 내내 돌아다닌 시내버스 기사도 결국은 모두 뉴요커였는데...     


떠나기 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을 다시 지났다. 102층의, 한때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는 그 빌딩 앞에선 너무 높고, 너무 가까이 선 그것을 프레임 안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쇼핑하고 천천히 걸어오다가 빌딩 사이로 선 그 건물을 다시 바주했을때, 나도 모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아름답고 독특한, 킹콩이 오르던 그 영화의 한 장면으로 각인된 빌딩 전체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는 열다섯 시간을 날았다. 닫아놓은 일상의 뚜껑을 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여행이 끝나고, 이제 일상 대신 여행의 시간을 상자에 넣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 한다. 잠도 오지 않는 그 길고 지루한 시간 동안 나는 길에 서서 바라보았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 때야 비로소 전체 모습이 보이는 일을 생각했다. 어쩌면 여행도, 사는 일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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