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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Sep 24. 2024

나의 이동통신, 미니

                         나의 이동통신, 미니          


나는 3년 넘게 아이폰 13 미니를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아이폰에 대단히 만족한다. 하지만 이 만족은 어디까지나 아이폰 중에서도 ‘미니’ 한정이다. 말하자면 나는 아이폰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니멀한 사이즈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13세대를 지나 어느새 16세대 출시를 앞두고 있어도 아직 새 핸드폰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니 신모델이 나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꿀 텐데.


나는 소비에 있어서라면 명품을 준다 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며, 비싼 옷이나 좋은 차는 뒤에 붙은 0의 개수를 확인하면 돌아서는 발걸음에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물건 하나를 사려면 백 원 단위까지 검색하고 비교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덥석 사는 법은 없이 여러 날 담아둔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어떤 것은 소용없다 싶은 맘이 들고, 또 어떤 것은 가지고 있던 비슷한 것이 떠올라 장바구니에서 빼내곤 했다. 물론 때로는 그사이에 더 좋은 것을 발견해 새로운 것으로 장바구니를 채우기도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내 소비의 기준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가’, 그리고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였다.      


하지만 이런 나란 사람과 어울리지 않게 개인용 전자기기, 특히 그중에서도 핸드폰만큼은 2년까지도 쓰는 일이 드물던 사람이었다. 매번 새 기종이 나오면 멀쩡한 핸드폰을 바꾸었고, 약정기한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모델을 써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늘 이동통신 요금 고지서엔 핸드폰 할부 요금이 세금고지서처럼 붙어있었다. 

이렇듯 새 핸드폰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는 사람인지라 LG의 아이스크림폰, 갤럭시의 노트 시리즈, 그리고 플립과 폴더까지 새로 출시되어 눈길을 사로잡는 이동통신 모델들은 대부분 다 한 번씩 나를 거쳐 갔다. 어떤 것은 꽤 만족했고, 어떤 것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린 시절 꼬불꼬불한 선이 달린 전화기만 보다가 무선전화기가 나왔을 때 그것이 그리도 신기했다. 친구들과 대단한 비밀도 없었건만 그 무선전화기를 들고 방에 들어가 긴 수다를 떨다가 엄마에게 매번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나 쓸 수 있던 무선전화기는 이제 누구나의 손에 들려 어디든 가는 세상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이동통신의 시대가 된 것이다.      

카폰, 삐삐, 시티폰 등에 이어 처음 나온 핸드폰은 ‘비싼’ 것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보급형이라는 PCS의 시대가 왔고, 나 역시도 그 PCS를 시작으로 핸드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지금에 비하면 크고, 무거웠지만 전화를 손에 들고 다니는 시대를 맞이한 처음의 느낌은 생생하다. 돌아다니면서 전화를 할 수 있다니. 나만의 전화기라니. 


하지만 그 PCS조차 이제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핸드폰은 점점 작아지고, 얇아지더니 뚜껑을 열다가, 슬라이드 식으로 진화했다. 심지어 이제는 접기도 한다. 핸드폰은 더 이상 핸드폰이 아니다. 이동통신 없이 우리가 과연 일하고, 여행하고, 공부하고, 심지어 휴식까지 누리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2년을 채우기는커녕 일 년에 두 번 핸드폰을 바꾼 적도 있는 나란 사람이 끝내 써보지 않던 아이폰을 선택한 건 순전히 ‘미니’라는 그 작은 크기 때문이었다. 아이폰 13 미니는 얇고, 작았다. 너무 화면이 작지 않으냐, 여태껏 안드로이드만 쓰던 사람에게 애플은 쉽지 않다. 주변에선 그렇게 말했지만, 핸드폰을 바꾸는 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유혹에 약한 사람이니만큼 긴 고민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애플유저가 되어 사과 농장주의 삶을 시작했다.     


아이폰 16세대가 나왔지만, 여전히 미니사이즈는 출시되지 않아 실망스럽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씩도 바꾸던 핸드폰을 무려 3년이 넘게 쓰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핸드폰 할부가 끝났는데, 생각해보니 기기할부 요금이 붙지 않은 핸드폰 요금 고지서를 받는 것은 처음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다. 그 덕에 이동통신비가 확 줄긴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가끔 핸드폰화면이 멈추어 설 때면 조금 불안하다. 설마 3년 만에 연식을 드러내는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걱정한다. 핸드폰이야 아무 때나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미니’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소식 없는 미니 재출시의 날까지 나의 아이폰 13 미니가 버텨주길 바라는 것과 이제 적당한 시기에 미니와 작별하는 용기를 내는 일. 어느 쪽이 더 빠를까. 물론, 나의 맘은 여전히 전자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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