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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15. 2024

침묵, 그 충전의 시간

                                      

무릎 골절 수술을 받은 지 일 년 반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2층 이상의 계단을 오르거나 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번 전가의 보도처럼 ‘무릎 골절 수술을 받아서’라며 내세우는 핑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여행 가서 하루에 이만 보도 너끈히 걸어 다닐 때, 그리고 울퉁불퉁한 계곡의 돌밭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내는 낚시의 시간을 보낼 때 그렇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 앞에서라면 모든 이유는 핑계가 되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18년 차 플라이 낚시꾼이다. 대부분 사람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로 플라이낚시를 기억하지만, 막상 나는 그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플라이낚시에 빠진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는데, 영화의 포스터도 아니고 누군지도 알 수 없는 한 낚시꾼이 강원도 계곡에서 긴 낚싯줄로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이 플라이낚시인 줄도 몰랐던 나는 검색을 통해 플라이낚시란 걸 알아냈고, 그때부터 글로 플라이낚시를 익히기 시작했다. 얼굴도, 진짜 이름도 모르는 낚시꾼들은 단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오랜 시간 알아낸 정보들을 선뜻 건네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어디 가서 손해를 볼까 싶어 믿을 만한 낚시용품점을 소개해주며, 사야 할 것보다는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먼저 알려줬다. 그렇게 나는 플라이 낚시꾼이 되었다. 대부분 혼자 다니는 낚시꾼이었지만, 알지 못하는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낚시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그때에도, 지금도 실상은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닐는지 모른다.     


골절 수술 이후 여러 달이 지나고, 적어도 겉보기엔 남들처럼 걷게 된 지금도 계곡 가에 서면 늘 조심스럽다. 낚시할 때는 일종의 방수 바지인 웨이더라는 것을 입고 계류화를 신는다. 울퉁불퉁한 돌밭을 걷고, 물을 건너야 하는 플라이낚시 특성상 웨이더는 필수이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 무릎 장화를 선호한다. 어차피 무릎 이상 물엔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여전히 핀이 박히고 와이어로 감긴 무릎뼈를 생각하며 되도록 험한 돌길은 피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양반다리가 불가능한 다리에 신축성이라곤 하나 없는 잠수복 같은 웨이더를 입는 것부터가 불편하기도 하다.     


10월엔 여러 가지 이름이 붙지만, 낚시꾼에게 가을은 대물의 계절이기도 하다. 물론 나 같은 서너 마리 조사에게 대물이란 요원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가을 낚시에선 다른 계절보다 좀 더 묵직한 손맛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지난번 조행에선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었다. 여름이 길고 더웠던 탓이었을까.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정글이 되어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번 조행에선 제대로 웨이더를 갖추어 입었다. 역시 웨이더를 입고, 계류화를 신고 나서니 어쩐지 사륜구동 SUV를 몰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웨이더까지 입고 비장하게 임한 오늘의 낚시는 갈겨니 대환장 파티였다. 한 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작고도 작은 그 녀석들이 물지 못하게 조금 큰 미끼를 써도, 기어이 주둥이에 피어싱한 듯 미끼가 박혀 올라왔다. 이러다 꽝 치는 것 아닐까 싶던 차에 겨우 원하던 손맛을 보고 나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몇 마리를 낚고 나면 이제 더 큰 것이 있겠지, 기대하며 힘을 내는 낚시꾼이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세 마리쯤 낚고 나면 세상 느긋해진다. 바위 위에 낚싯대를 내려놓고, 신축성도 없이 불편하기만 한 웨이터 차림으로 돌밭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잠시 해바라기를 했다. 

가을하늘은 새파랗고, 청량한 바람에 휜 구름이 제법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산에 단풍은 아직 물들지 않았다. 맑은 계곡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모였다가 다시 흩어져 아래로 흘러갔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마치 박자처럼 일정했다. 

문득 시계를 보았다.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새벽 네 시의 천근 같은 어둠 속을 두 시간 넘게 달려왔다. 횡성 부근을 지나서야 먼 하늘이 푸르게 물들며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 길을 지나 지금 강원도 계곡에 앉아있는 나를 생각했다. 오늘 하루, 나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인가도 드물고, 비탈과 평지의 배추밭엔 허리를 숙인 농사꾼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일 뿐 지나는 차들도 거의 없는 계곡이니 누구와 말을 나누겠는가. 아마 나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하루 중 열두 시간쯤의 침묵을 보내는 일을 생각했다.      


나는 늘 말로 하는 일을 해왔다. 어떤 일이든 말하지 않고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나는 계속 말로 떠들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친구와 혹은 맘에 맞는 사람들과 웃으며 나누는 말과 일로서 하는 말이 같을 리는 없다. 하루 일이 끝나고 나면 나는 매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내 얼굴을 감추고, 내 마음을 숨기고, 내 목소리를 바꾸어야 하는 말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시작한 것이 바로 플라이낚시였다. 혼자서 온종일의 침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열 마리도, 큰 물고기도 필요 없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 침묵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하며 웃곤 했다.     


불편한 웨이더덕에  혼자 끄응, 소리를 내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돌밭에서 일어섰다. 자박자박. 인적없는 시골길에 내 발걸음 소리가 낮게 퍼졌다. 어디선가 귀 밝은 시골 개가 짖었다. 집까지 가려면 좀 더 시간이 있다. 몇 시간은 더 침묵을 지킬 수 있겠다. 나는, 가득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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