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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리나 선율에 실어 보내는 한해

by 전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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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사방에서 송년을 빙자한 모임이 열리는 12월이다. 두 해째 주민자치센터에서 수업받고 있는 오카리나반 역시 한해의 끝자락에서 송년 음악회를 열었다. 사실 ‘송년 음악회’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수강생들끼리 한 해 동안 배운 것을 편하게 연주하는 자리이니 시작 전엔 부담이 없었다. 그저 평소 수업 시간에 하던 대로 연주하면 되지, 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근래에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로 결석이 잦았던지라 아무래도 시작 전에 미리 연습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서둘러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보니 이미 다들 분주했다. 나처럼 미리 와서 연습하려는 사람들. 이왕이면 멋진 송년 음악회로 꾸미고 싶어 자발적으로 무대장식을 준비해 온 사람들. 간만에 초급 중급반이 다 같이 모이는 기회니 음악회 후 뒤풀이를 위해 다과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 저마다 우리들의 송년 음악회를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른 테이블을 옮기고, 반짝이 장식을 붙이는 일에 일손을 보탰다.

우리끼리기에 부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서 공간을 꾸미고, 준비하는 걸 보니 그제야 떨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동영상까지 찍는다고 삼각대를 놓기 시작하니 떨림이 더해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 거야, 대체!”

다들 웃었다. 역시 갑자기 부담되고 떨리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니었던 거다. 연주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했다.

“로또 번호야?”

다들 깔깔거리면서 번호표를 뽑았다. 설상가상으로 연습할 때는 멀쩡하던 손가락이 막상 무대에 나설 차례가 다가오자 달달 떨려오기 시작했다.


작년 봄쯤 시작한 오카리나는 해를 넘겨 올 한 해에도 이어졌다. 한 해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주민센터에 가서 한 시간 반 동안 오카리나 수업을 받았다. 처음엔 제대로 음을 내는 것부터 힘들었는데, 이제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고음 부분에선 닭 잡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신나게 오카리나를 불다 보면 은근히 쾌감이 느껴진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층간소음이 신경이 쓰여 부는 시늉만 하기 일쑤인데 수업 시간에는 원 없이 소리를 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배움이면서 동시에 이처럼 즐거움이기도 한 오카리나 수업의 결과물을 서로 나누는 자리가 드디어 열렸다.

반주 없이 진지하게 독주를 하시는 분도 있고, 여럿이 모여 연주하기도 했다. 나는 초급반에서 수업을 듣는 다섯 명과 함께 2번 순서로 나서서 세 곡을 연주했다. 겨우 떨리는 맘을 진정시키고 한숨 돌렸는데 14번 순서로 한 곡을 더 연주해야 했다. 중급반의 지인과 듀엣으로 한 곡 더 연주하기로 한 것이다.

다섯 명이 연주한 합주곡과 달리 지인과의 듀엣은 집에서 차를 마시다가 “해볼까?” 하며 급조된 지라 두어 번 함께 불어본 것이 전부일 뿐 미처 반주에 맞춰볼 여유도 없었다. 2번 순서로 연주하고 다소 진정된 마음이 다시 콩닥콩닥 뛰었지만, 어찌어찌 곡을 끝내고 나니 대단한 일을 해낸 듯 뿌듯. 게다가 초급반과 중급반의 콜라보레이션에 의미를 둔 지라 함께 수업하는 양쪽 반 수강생들의 격려를 많이 받았다.


“두 해째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어”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의 내 얼굴엔 아마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함께 드러날 것이다. 내 마음이 그러니 속일 수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나의 오카리나 소리를 궁금해한다. 자랑을 좀 하고 싶은 뿌듯한 맘으로 이야기를 꺼낼 용기는, 그 순간 내 손에 오카리나가 들려있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인데 말이다.

여전히 내 오카리나 소리는 초급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오카리나를 불 때의 즐거움만큼은 중급을 넘어서 고급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자신은 아직 없지만 내가 그만큼 즐겁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집 가까이, 이토록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배움터가 있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다. 송년 음악회를 끝내고 모여 앉아 다과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웃었다. 내년에도 이렇게 경쾌한 오카리나 선율의 시간을 쭉 이어가고 그 끝자락에 또다시 열릴 2025년 송년 송년 음악회에선 오늘보다 훨씬 더 멋진 곡을 연주해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배움의 목표 달성 못지않게, 그 과정 자체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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