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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 진민영

by 전명원

제목이 굉장히 계몽적이다. 자랑이라 할 것은 없지만 나는 나름 잘 버리는 사람이다. 쓰지 않는 것을 쌓아둔다거나. 여벌로 몇 개씩 같은 것을 쟁여놓아야 마음이 든든한 타입은 아닌 거다. 하지만 잘 버린다는 것이 잘 치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니 청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하다. 잔살림을 많이 늘어놓고 살지는 않으나 깔끔하게 치우고 사는 건 또 아닌 그런 사람이라고나 할까. 엄마 말씀처럼 나는, 치우기 싫어 버리는 사람이 맞는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책 제목이 너무 멋지다. 굉장히 혹할만한 제목이다.

나 역시 간소한 삶을 꿈꾼다. 집안을 둘러보면 여전히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물건들은 너무나 많다.

얼마 전 이웃들과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집 평수를 반으로 줄여가는 것도 좋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을 할지 말지 모르는 딸아이 하나뿐인 세 식구 구성원에, 양가 부모님은 모두 안 계시고, 왕래하는 일가친척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집 평수를 반으로 줄이는 것이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은 아니었다. 호기롭게 이웃들과 나눈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 책의 제목이 더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이어리에 일과를 적어놓고, 그 일을 하고 나면 일정을 아예 삭제해 버린다. 다이어리 앱의 오늘 날짜 칸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저녁이라면, 그날 하루 해야할 일을 모두 빠짐없이 잘 끝마친 것이다. 어떤 것은 부정기적인 약속이거나 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매일 하는 일종의 미션들이다. 그저 나 자신과의 약속일 뿐이니 사실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성경 필사, 묵주기도, 글쓰기, 책 읽기, 5천 보 걷기…. 이렇게 소소하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하나 더 추가해서 매일 하나씩 버리기를 실천 중이다. 그날의 다이어리 칸을 백지로 만들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매일 뭔가 크고 작은 것들을 버리긴 버렸다. 하지만 살림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왜일까.


사람이 사는 일은 결국 끊임없이 유무형의 무언가를 소비하는 일이다. 무형의 것이라면 모를까 소비의 대상이 어떤 물건이라고 한다면, 계속되는 소비를 위해 그 이전에 공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 하나를 버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나는 매일 무언가를 샀다. 하나가 필요해서 그 하나만 사는 경우도, 1이 필요해서 1을 사며 2도 사는 때도 있다. 오늘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아봐야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째 며칠에 한 번 몰아서 무언가를 사면 더 많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하나를 버리면 두 개를 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간소한 삶’이라는 것이 비단 집안의, 나의 물건들에만 국한되는 말일 리는 없다. 식구 수에 비해 넓은 집, 남 보기에 번듯한 차, 명품 로고가 박힌 핸드백이나 지갑 한두 개쯤은 갖고 싶어 한다. 나 역시도 이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리가.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지금쯤 되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다 소용없는 짓이었어’ 라고 후회하게 되는 지점들을 많이 가진 인생이 되었다. 겪지 않고도 알 수 있고, 당하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사람이 그런가. 나 역시도 지나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그런데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하고, 과하게 사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간소한 삶의 전부일까.

나는 이제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는 일’에 대해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다. 이 나이라면 이쯤을 갖추고, 이쯤의 소비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노력이 언제나 순조롭고, 늘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욕망과 실속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있는 나는, 보여지는 어떤 것이나 바람 타고 내게 도달할 남의 이야기에 신경 쓰기보다는 나의 ‘경험’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소비를 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면 여행길에 ‘쇼핑리스트’를 참고하며, 기념품을 하나 더 사 들고 오기보다는 다른 지역의 생소한 음식이나 풍경을 하나 더 경험하는 쪽을 택한다. 이런 노력들이 계속되고, 계속되다 보면 나름의 즐거움으로 풍족한 인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오늘 복합쇼핑몰에서 ‘즐거운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자제한다고 했지만, 역시 빈손으로 왔을 리가 없지. 아…. 나의 간소한 삶은 아직 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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