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 오수영

by 전명원

IMG_2536.JPEG

에세이치고는 꽤 두껍고, 표지는 아름다웠다. 도서관의 신착도서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들고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어디에 방점이 찍히는 걸까. ‘사랑’일까. 아니면 ‘일’일까. 책을 읽다 보니 ‘사랑하는 일’을 말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제목 그대로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에 관해 쓴 글이다.

작가의 다른 책을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은 적이 있다. 여성인걸까 싶을 만큼 꽤 감성적인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의 직업은 작가라는 것 외에도 항공기의 운항승무원이라는 것이 독특했다. 그 이후 작가는 휴직을 거쳐 이제 더 이상 비행기를 타지는 않는다고 한다. 1인 출판사 고어라운드를 운영하며 자신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일 년간 구독 서비스를 하며 구독자들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낸 것을 모아 펴낸 것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다정하게, 때론 담담하게 말한다.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하며 번아웃이, 우울증이 왔고, 휴직을 하고, 급기야는 퇴사를 결정해서 오롯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자기의 이야기를.

사실 책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 한두 가지 주제의 책이 성공하면 그 유행은 한동안 지속되며 돌고 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성공 이후 우울증에 관한 책들도 참 많이 나왔다. 우울증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자기 고백의 책들이 쏟아졌다. 이 책 역시 저자의 우울증 내지는 번아웃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직장을 다니며 책을 낸 그에게 글을 쓰는 일은 숨구멍이며 돌파구이기도 했겠지만, 또 다른 면에서 글은 양날의 검과도 같았던 모양이다. 직장에서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사원이라는 눈치를 받고, 출판계에선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취미로 글을 쓰는 팔자 좋은 사람으로 폄하 당하기도 했다.

공황장애로 인해 급하게 비행에서 빠지는 몇 번의 경험 이후 결국 그는 상담 치료를 받고, 휴직을 하기에 이른다. 가족과 주변의 기대, 경제적인 불안감, 그 모두를 뒤로한 그 선택 이후 이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삶을 살아간다. 더 이상 공항까지 가는 동선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동네에 새로 둥지를 틀고, 주변을 산책하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나름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일상을 살아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일 년의 휴직 기간이 끝났을 때 그는 정해진 수순처럼 퇴사를 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가 직장과 출판계 양쪽에서 들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건 내가 들었던 어떤 ‘말’ 때문이었다. 초면의 글을 쓰는 작가 몇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좋은 취미 가지고 계시네요.”

당황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내가 빤히 쳐다보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들은 대부분 삼사십 대의 작가들이었는데, 거기 있는 모두가 전업 작가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 나의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했다. 그들에겐 치열하다는 글쓰기가, 내게는 취미활동이 되는 이유는 나이였을까, 아니면 생업이 아니라는 것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나의 자격지심이었을까. 물론 여러 해가 지났으니 이제 그 당시의 날 선 마음쯤은 웃고 넘길 줄은 알게 되었다.


작가가 얼굴을 알지 못하는 구독자들에게 조곤조곤 자신의 일상과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로 채운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을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한 건 바로 그 제목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가졌지만, 그가 진정 사랑하는 대상은 글이었고, 사랑하는 그 글을 쓰는 일로 살아가는 것이 그가 꿈꾸는 삶이었다.

나 역시도 글을 쓸 때마다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허울좋게 ‘작가’라는 이름으로 가끔 불리긴 하지만, 과연 알맹이가 있는 것일까. 어느 날엔 글이 잘 써지고, 또 어느날엔 한 줄도 쓰지 않는다. 쓰다만 원고는 쌓여가고, 언제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설령 완성한다고 한들 내 글이 독자에게 가닿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더 시도할 용기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용기를 낸다고 모두 원하는 목적지에 가닿을 수도 없는 법이니 오랫동안 길을 헤매는 일을 생각하면 매 순간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써야 할까?’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을 종종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다 읽고 난 책을 조용히 덮었다. 아름다운 표지에 선명한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나는 어쩐지 대답을 들은 것만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매일기 - 박소영, 박수영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