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청나라 때인 1842년 8월 29일 난징 조약으로 영국령이 되었으나, 1997년 7월 1일에 중국에 주권이 반환되었다. 그 이후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중국과 다른 독립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곳이다. 자본주의 경제 및 정치체제인 홍콩은 실제로 정치를 비롯한 경제, 법률, 재정, 교육 등 대부분이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홍콩인들은 중국 국적이지만 중국 본토의 국민과는 다르며, 홍콩 영주권 제도와 홍콩 여권이 존재한다. 이 홍콩 여권을 가진 홍콩인은 중국과 대만을 제외한 해외에서 중국 본토인과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하니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었다가 영국령이 되고, 또다시 중국에 반환되었으나 그렇다고 중국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홍콩의 위치는 굳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거리를 걷다 보면 느껴진다. 영국식 지명, 중국풍의 거리. 그뿐 아니다. 초라한 듯 화려하고, 남루한 듯 깔끔하며, 소란한 듯 정적이다. 그 모든 것이 홍콩 같기도, 그 어떤 것도 홍콩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홍콩은 이번에 세 번째 여행이다. 몇 년에 한 번씩 홍콩에 와보면 어떤 것은 그대로, 또 어떤 것은 새롭다.
중국의 끄트머리 구룡반도와 홍콩섬, 란타우섬 등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홍콩은 서울보다 조금 큰데 평지가 적어 인구밀집도가 꽤 높다고 한다. 가뜩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을 찾았을 때는 ‘춘절’ 기간이었다. 중국 본토며 외국에서 홍콩을 찾은 관광객들과 뒤섞여 어디나 인파가 굉장했다.
우리가 ‘설’이라고 부르듯, 홍콩은 ‘춘절’이라고 부르는 일 년 중 최대의 명절인지라 사방은 온통 붉은색의 물결이었다. 상점마다 진열장엔 붉은 돈봉투로 장식하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금색 글자들이 가득했다.
홍콩에선 춘절의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곳곳에서 열리는 경품행사엔 긴 줄이 생기고, 춘절 밤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거리 퍼레이드는 꽤 볼만하다고 했다. 우리는 기대를 하고 침사추이 거리로 나갔다. 침사추이는 유명한 스타의 손도장뿐 아니라 홍콩의 상징과도 같은 시계탑이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나는 번화가이다.
내부에 들어가면 동서남북이 헷갈릴 만큼 넓고 복잡한 하버시티에서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기다렸다. 6시부터 식전 공연이 펼쳐지고, 8시부터는 본격적인 거리퍼레이드가 시작된다는 소식엔 퍼레이드의 진행 노선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5시쯤 되자 벌써부터 인도와 차도 사이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차량통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바리케이드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돗자리를 가지고 나온 사람에, 접이식 의자를 들고나온 이도 꽤 많았다. 다들 퍼레이드 구경에 단단히 준비한 모양새였다.
6시가 되자 퍼레이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실 춘절 퍼레이드이니 중국 전통 공연을 기대하며 인파 사이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두세 팀의 공연이 연이어 지나가고 나서야 뭔가 좀 이상한데…. 싶었다.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유치원생들의 재롱잔치와도 같은 공연이 펼쳐지더니, 이어 외발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는 아가씨들이 지나간다. 그러고는 난데없이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녀학생 무리의 줄넘기 공연이 펼쳐지다가 공과 화려한 요요를 가지고 마치 그것들과 한 몸인 듯 재주를 펼치는 팀이 나와 요란하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묘기를 보여줬다. 인도인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행진하며 북을 치며 춤을 추었고, 중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사자탈이 뛰어와 궁둥이를 요란스럽게 흔들어 재꼈다. 이제 이처럼 중국 전통의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것일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도 이어진 건, 중국인형 풍의 발레복을 입은 꼬마들이 앙증맞게 꾸미는 무대였다. 길게 실망할 틈도 없이 뒤이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BTS 음악이 나왔고, 그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서커스 같은 동작을 펼치는 팀도 있었다.
이것이 과연 춘절퍼레이드가 맞는 것인가 의심할 무렵, 캐세이퍼시픽 승무원들이 퍼레이드카를 타고 지나갔다. 퍼레이드카 뒤를 따르던 승무원들은 길거리의 관객들에게 빨간 복주머니를 나눠주었는데 다들 그것을 받기 위해 앞으로 몰려드는 통에 바리케이드가 넘어질 뻔한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퍼레이드 카 앞에서 행진하던 승무원들은 유니폼을 입은 채 요란한 댄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과연 승무원들일까? 아니면 유니폼만 빌려 입은 걸까. 어이없는 와중에도 궁금해지며 혼자 웃음이 났다.
병맛 퍼레이드가 절정으로 향하자 퍼레이드를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점차 톤이 더 높이 올라갔는데, 하필이면 자리 잡은 곳이 스피커 바로 옆이었다.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새된 함성과 괴성을 번갈아 지를 때마다 놀라서 식겁했다. 급기야는 이러다 기껏 나은 돌발성 난청이 다시 도지는 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이건 춘절퍼레이드가 아니라 그냥 잡탕 퍼레이드인데.”
전통 중국공연을 기대한 우리 가족은 서로 얼굴을 보며 킥킥대다가 결국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줄을 잡아야지 하는데 난데없이 이번에는 라인 캐릭터들이 또다시 퍼레이드카를 타고 눈앞을 지나갔다. 이쯤 되면 주제가 뭘까 심히 궁금해지고, 과연 이 어이없음의 끝이 어딜까 싶기도 했는데, 신기한 건 어째 묘하게 퍼레이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거다.
공연팀들이 지나갈 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어주기 시작했고 꽤 자주 우리의 K팝이 배경음악으로 나온 덕에 그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흔들흔들 장단도 맞췄다. 그러다 굉장히 익숙한, 그렇다, 우리나라의 민속공연이 펼쳐지자 갑자기 병맛 퍼레이드는 반가움으로 동포애가 샘솟는 현장이 됐다.
돌아오는 길은 이미 깊은 밤의 어둠이었다. 우리는 내내 병맛 퍼레이드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신기함을 이야기하며 내내 웃었다. 생각해 보면 설의, 춘절의 퍼레이드는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그 어떤 병맛을 만나든 웃고 즐길 줄 아는 한 해를 살아보렴. 이런 것 말이다. 뭐 아니면 말고. 어쨌거나 하루 즐거웠으니 더 큰 의미는 찾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