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묵고 있던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배우 장국영의 나이는 그때 46세였다. 만우절의 그 기사에 사람들은 잠깐 진위를 의심했는데, 이내 밝혀진 사실에 다들 놀랐다. 그는 홍콩영화의 정점을 대표하며, 그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홍콩영화의 전성시대라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꼽는다. 나 역시도 그 시기에 홍콩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동사 서독’ ‘해피투게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봤다. 나에게 홍콩 배우 장국영의 죽음이 남다르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의 이십 대도 거기 있었으니까.
그의 죽음을 보도하는 뉴스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사진이 떴다. 한동안 기사엔 시시콜콜한 배우, 혹은 인간 장국영의 모든 것이 오르내렸다. 그가 자주 갔다는 식당이며 카페. 우울증을 앓던 병력, 그뿐 아니라 동성애자였다는 내밀한 이야기까지. 특히 그가 뛰어내린 곳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었기에 그와 관련된 기사도 많았다.
그가 평소에도 그 호텔을 좋아해서 자주 묵곤 했다는 것, 그중에서도 그곳의 애프터눈티를 즐겼기에 라운지에선 종종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그뿐만 아니라 그가 뛰어내리면서 호텔 지하 주차장 입구의 캐노피가 부서진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죽은 자의 인권 대신 산 자의 호기심으로 가득해서 씁쓸했다.
나는 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기사들을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장국영이 떠난 2003년의 만우절 이후 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홍콩의 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가볼 수 있었다.
홍콩 여행을 계획하며 꼭 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건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만다린 오리엔탈의 라운지에서 애프터눈티를 먹겠다는 것을 목록 상단에 두었다. 만다린 호텔의 애프터눈티는 예약이 필수라고 했는데, 지금처럼 구글로 예약이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호텔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예약했다.
중국풍의 붉은 등이 주렁주렁 걸린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장국영이 뛰어내린 그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오래전 만우절의 기사를 떠올리며 24층을 가늠해 올려다보고, 지하 주차장 입구의 캐노피를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그리고 예약한 라운지를 찾아갔다.
지금도 나는 짧은 여행에선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메는 경우가 많다. 쇼핑도 거의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애초에 짐을 많이 가져가지 않으니 배낭이 더 편한 것이다. 문제는 내가 만다린 호텔을 찾은 것은 귀국일이었는데 체크아웃 후 호텔에 짐을 맡기기엔 동선이 애매하고, 일본처럼 코인락커도 없는 곳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온 여행자가 홍콩에서 닷새를 보냈으니 그 차림새가 어떠했겠는가. 집에 가면 바로 세탁해야 하는 청바지에, 먼지가 내려앉은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둘러맨 얼굴엔 뚜벅이 여행의 피곤함이 잔뜩 묻어있었을 것이 뻔하다.
예약이 확정되었다는 메일을 인쇄한 것을 보여주고 안내받은 자리의 소파는 지나치게 푹신했다. 낮은 음악 소리, 적당한 고요. 거기에 닷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 피곤함도 한데 몰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애프터눈 티라는 것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던 나는 그저 차 한잔에 디저트 정도를 생각했는데 막상 직원이 가져다준 것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양이었다. 샌드위치, 구움 과자, 케이크 등 종류별 디저트가 삼단접시에 놓여있고, 차는 아예 티팟으로 주었다.
옆 테이블엔 우아하게 실크 스카프를 두른 초로의 여인들이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들뿐 아니라 손님들 모두 상당히 공들여 꾸민 차림새를 하고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중국어도 충분히 조용하고 품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종업원도, 다른 손님들도 그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그제야 호텔 라운지의 TPO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여행자들이란 가끔 대책 없이 용감해지거나, 혹은 필요에 따라 얼굴이 두 배로 두꺼워지기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민망함은 잠시였고, 그 이후부터 싸워야 하는 것은 식곤증이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애프터눈티를 먹고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그날 이후 홍콩에는 두 번 더 갔다. 호텔 앞은 홍콩 앞바다와 주룽반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지이니 갈 때마다 의도하지 않아도 늘 그 앞을 지나게 됐다. 지금도 가끔은 붉은 등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그 호텔을 생각한다. 언젠가 또 홍콩에 가게 될까.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우는 삶이 낫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은 종종 선물처럼, 혹은 벼락처럼 온다. 그 어떤 것이든 내가 골라 가질 수도, 싫다고 뿌리칠 수도 없다는 것은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라는 말은 ‘알 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끄러미 달력을 본다. 4월의 첫날. 만우절.
여전히, 거짓 뉴스처럼 떠난 장국영과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애프터눈티가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