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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1

by 전명원

출발 전부터 우여곡절로 인해 과연 갈 수 있으려나 싶던 여행이었다. 동행하기로 한 친구는 여러 스포츠를 즐기며 여행에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터라 스스로도 ‘직진’ 스타일이라고 하며 웃곤 했다. 하지만 난데없는 디스크 증세로 출발하기 한 달 전 절뚝이며 내 앞에 선 친구를 보는 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착잡했다.

‘여행은 무슨, 건강이 우선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지불하고 예약한 여러 티켓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리고 리스본에 발을 디디고 싶은 꿈이 그런 숫자들보다 위에 있었음도 부정할 수는 없다.


스무 살부터 사십여 년 가까이 알아 온 친구와 졸업한 이후 이처럼 자주 본 적이 있었을까? 친구는 매주 목요일마다 병원에서 디스크 진찰을 받고 나서 내게 왔다. 한주 한주 나아지는 친구의 상태를 보며 ‘그래도 갈 수 있겠다.’ 싶은 맘과 ‘그러다 갑자기 또 어찌 될지 모른다’라는 불안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했다. 물론 이런 맘이 나뿐이었을 리 없다. 당사자인 친구는 오죽했을까.

이런 냉·온탕을 오가는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드디어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긴 가는구나”

안도와 염려,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열 시간을 날아 아부다비에 내렸다. 기름국의 공항답게 자정이 다 된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휘황찬란했다. 특히 얼굴을 가린 여인들과 가운 같은 긴 겉옷의 전통 옷을 입은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지. 여기는 중동이지, 싶은 순간이었다.

세 시간을 공항에서 머물렀다. 창밖은 어둡고, 밤은 점점 더 깊어져 갔지만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여행자는 그저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여행이란 집을 나선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니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여행길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피곤함과 지루함은 사라지고 공항의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이 새롭게 다가왔다.

드디어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다음 비행기를 탔다. 디스크로 허리가 불편해 자주 일어나 걸어야 하는 친구를 위해 복도로 배정받은 내 자리를 내어주고 대신 가운데 좌석에 끼어 앉았다. 에티하드 항공은 특이하게도 자리가 랜덤배정이었다. 출발 서너 시간 전에 공항카운터에서 무료 변경이 가능하긴 하지만 연결편은 시간 조건을 채울 수 없으니 무료 변경이 불가능했다. 결국 다소 불편한 자리가 걸려도 배정받은 대로 타야 했다.


다시 일곱 시간을 날아 드디어 바르셀로나.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모자랄듯한 새파란 하늘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다했구나 싶은 하늘이었달까. 마치 우리의 가을처럼 청명하고, 선선했다.

바르셀로나의 거리에는 온 세계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처럼 전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은 무엇일까. 이렇게 멋진 도시가 가진 장점이야 한둘이 아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가우디’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카사 바뜨요를 보기로 했다.

카사 바뜨요는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으니 말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에선 누구나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곡선이다. 카사 바트요 역시 가우디 특유의 곡선이 돋보였다. 조각 타일로 외장을 알록달록하게 장식했고, 마치 동화 속에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창문과 베란다. 카사 바트요는 어린이들을 위한 테마파크 속 건물처럼 느껴진다.

‘카사’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카사 바뜨요’는 ‘바뜨요씨의 집’인 셈이다. 오래전 건축가 가우디에게 작업을 맡겨 이런 독특한 건물을 갖게 된 바트요씨를 생각했다. 저마다 독특한 건물을 짓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기이한 개성을 뿜어내는 건물을 갖는다는 건 역시 돈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봐도 한눈에 그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는 가우디의 평범하지 않은 건축세계를, 그 감성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 말이다.


카사 바트요 앞의 벤치에 앉아 오래 건물을 올려다봤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갔다.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부를 들어가 보고 개중엔 옥상에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한 무리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사라지면 또 다른 무리가 다시 와서 순간을 남겼다. 가이드들이 번갈아 관광객들을 이끌고 와서 설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여러 언어가 뒤섞였다.

친구와 나는 벤치에 앉은 채 한동안 카사 바트요를 바라봤다. 그 어디로도 가지 않을 사람처럼, 그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여행이란,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란 이런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카사 바뜨요를 찾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카사 바뜨요앞에서 가우디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카사바뜨요는 가우디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뜨요씨의 집.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카사 바뜨요 외벽에 장식된 타일들이 그 햇살에 반짝거렸다. 바르셀로나의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나는 바트요씨에게 인사를 남기고 아주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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