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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by 전명원

몬세라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산이다.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특히 검은 성모상이 유명하다. 성모님이 들고 계신 구슬을 잡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믿고 싶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대부분 투어로 많이 방문하지만,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지하철과 R5 기차, 그리고 또다시 아찔한 돌산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산악열차를 바꿔타고 몬세라트에 도착했다. 수도원까지 가지 않고도 멀리서부터 이미 그 독특한 풍경으로 한눈에 저기구나, 알 수 있다.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에스파냐 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R5 기차를 탔는데 이미 만석이라 꼬박 40여 분 넘게 서서 가야 했다. 바르셀로나에선 가우디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당연히 중간에 내리거나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차 안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온 세계의 인종과 언어가 뒤섞여있었다.

그 와중에 교사의 인솔하에 단체로 견학을 가는 듯한 학생 무리도 열차 한 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들 바닥에 앉아 웃고 떠들며 게임에 열중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한마디에 와르르 웃음이 터지고, 한마디에 슬랩스틱 코미디의 장면이 벌어진다. 시끄럽다고 눈살이 찌푸려질 만도 한데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산악열차로 바꿔탄 이후부터 창밖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산을 오르는 기차 밖은 아찔했다.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 대체 이런 길에 선로는 어찌 놓았을까. 하늘은 점점 넓어지고, 산 아래는 점점 깊어졌다.

산악열차가 산을 휘감듯 지그재그로 한참 오르고 나니 가우디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둥글고 기이한 바위산을 병풍처럼 두른 수도원과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행한 친구는 유튜브를 즐겨본다. 이번 여행의 정보도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서 얻었다고 했다. 반면 나는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 여행의 정보는 블로그와 웹서핑을 통해 얻는다. 그러고 보니 이미 우리는 모두 가이드북과 멀어진 시대를 살고 있구나 싶다. 예전엔 여행을 앞두면 가이드북을 먼저 샀는데 말이다.

이미 성당안과 검은 성모상을 여러 번 영상으로 보기도 했다며 친구는 내부 입장권을 신청하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당연히 내부가 궁금했기에 혼자 입장권을 예약했다. 큐알코드를 보여주고 성당 입구로 들어섰다. 내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던 내가 본건 사진 속의 몬세라트 수도원뿐이었다. 성당 입구를 들어설 땐 그곳이 성당 건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자 중정이 나왔고 그 맞은편에 성당 건물이 있었다. 밖의 입구에선 보이지 않는 성당 건물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너머 예수님과 열두제자의 부조가 선명한 성당을 마주했을 때 속으로 헉, 소리가 났다.

생각지 못한 풍경이어서일까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꼈는데 유럽의 여러 성당을 봤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마침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끝나고서야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검고 화려했다. 검은색과 황금색의 조화는 요란하지 않은 듯 화려했으며, 그 화려함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무게 있고 엄숙한 것이었다.

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서는 신자들과 내부를 보려고 들어온 관광객이 뒤섞이는 어수선함 속에서도 성당은 고요했다. 내부의 제단 위에 검은 성모상이 작게 보였다. 그 성모상을 가까이서 보려면 다시 나와 옆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다들 조용히 그 계단을 줄지어서 올랐다. 여러 해 전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지붕 꼭대기 전망대로 오르는 날이 떠올랐다. 이처럼 여행지에서 이미 지나온 여행지를 추억하거나, 앞으로 가야 할 여행지를 생각하는 순간은 어느새 자연스럽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작고, 더 검은 성모상을 마주했다. 성모님이 손에 든 구슬을 잡고 나 역시 마음속의 말을 짧은 기도로 꺼내놓았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이 믿음이다. 내게는 그런 믿음이 있으며, 그건 나를 좀 더 나은 길로 가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친구는 근처 유적지까지 짧은 트래킹을 떠나고 그사이에 나는 수도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산 아래가 한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높은 곳에 올랐다고 해서 하늘이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발 아래가 더 깊어지고, 멀어졌으므로 높이 올라왔구나 가늠할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어느 쪽일까. 어느 때엔 오르고 올라도 높이를 느낄 수 없는 하늘을 마주하는 기분이고, 또 어느 때엔 멀어진 아래를 보고서야 내가 선 위치를 깨닫게 된다.

어쨌거나 오늘의 나는 여기 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 아래, 그리고 아득한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몬세라트의 일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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