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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날

by 전명원

5월 1일이다. 5월을 여는 첫날이며, 근로자의 날. 그리고 나에겐 아빠의 기일.

성당을 열심히 다닌 적이 없는 헐렁한 신자였던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매주 성당을 가는 신자가 되었다. 그나마 주일을 지키지 않으니 내세울 일이 아니지만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부모님의 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죽은 뒤 제사는 지내지 말고 성당에 위령미사만 신청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나는 기일이며, 생신, 그리고 명절이면 성당에 위령미사를 신청했다. 신청해 놓고 내가 가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한 번 두 번 성당에 가서 앉았다. 그러다가 결국 매주 성당에 가는 신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의도하셨든 아니든 내가 매주 성당에 발걸음하는 신자가 된 건 부모님의 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빠의 위령미사를 신청한 5월 1일의 오전 10시 미사에 갔다. 미사 시작 전 오늘 미사에서 기억할 영혼들의 이름을 부른다. 아빠의 이름이 불린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인 것처럼 뭉클하고 코끝이 시리다.

무늬만 신자에 가까운 지라 미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오늘이 노동자의 성 요셉 축일이라는 걸 알았다.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다. 목수였던 요셉 성인은 노동자의 수호자로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이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신 이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성 요셉 축일과 근로자의 날이 겹친다. 아빠의 기일이며, 아빠의 세례명은 ‘요셉’이다. 신기한 우연에 생각이 많아졌다.

근로자의 날이라 회사를 가지 않는 딸은 성당미사에 함께 했다. 근로자의 날이지만 회사에 일이 많은 남편은 출근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근로자는 둘이나 있다. 이제 사회생활에 경력이 쌓이기 시작한 딸과 달리 남편은 퇴직을 앞두고 있다. 올해로 예정된 퇴직을 앞두고 부쩍 싱숭생숭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 살까지 회사다닐거였느냐, 이제 퇴직하면 여행도 다니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며 느긋하게 살면 되지.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 당사자인 남편에게는 알지만 전부 와닿지는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퇴직을 앞두고 있으니 어쩐지 효용가치가 다된 기분이라고 씁쓸해했다. 퇴직 후에도 고문으로 몇 년 더 회사와의 연을 이어가기로 했음에도 말이다.


나는 일생 일했지만, 조직에서 근무한 경험은 거의 없다. 내가 오너라는건 편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다만 이제 일을 놓아야겠다고 오래 망설이다가 막상 내려놓았을 땐 신기할 만큼 그 망설이던 시간을 금세 잊었다. 오래 멈추었던 글을 다시 쓰기 위해 수업을 듣거나,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출판 강의도 들으러 다녔다. 해보고 싶었으나 시간과 기회를 맞추기 어려웠던 이런저런 취미 수업도 듣고 있다.

그런 시기를 몇 년 보내고 이제 나는 꾸준히 쓰고, 책을 펴내는 사람이 되었다. 어딘가에서 예전의 나처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수업을 하기도 한다.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그에게도 나와 같은 날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의 성 요셉 축일이며, 근로자의 날이며, 나의 아빠 요셉의 기일이기도 했던 5월의 첫날. 성당미사에 앉은 나의 기원이 많았다.

돌아가신 아빠의 안식을 위해서, 남편이 갖게 될 제2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오래 근로의 나날을 살게 될 딸을 위해서.

생각해 보면 사는 일은 이처럼 늘 무언가를 기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날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기원하는 만큼 인생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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