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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3

by 전명원

언젠가부터 여행길에 성당미사에 가곤 한다. 당연히 남의 나라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미사 전례의 순서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므로 얼추 무리 없이 미사를 볼 수는 있다.

바르셀로나의 성당이라면 당연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그곳은 성당이라기보다 유적지이며 관광지에 가까워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음날 가려고 맘에 둔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좀 더 기대됐다.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에는 입장료가 있다. 하지만 매시간 스페인어와 까딸루냐어로 미사가 열리고, 그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는 따로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물론 대성당 안의 한쪽 구석에 있는 소성당에서 미사를 하며, 일체의 사진은 찍을 수 없다는 안내가 있었다. 나는 10시 미사에 맞춰 부지런히 성당에 당도했다.

성당 입구는 문이 두 개였다. 관광객들이 표를 사서 들어가는 문이 왼쪽이며, 미사를 보는 신도들이 드나드는 문은 오른쪽이었다. 나 역시도 오른쪽 신도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가니 대성당 안의 오른편 소성당으로 이어지는 출입구였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13세기에 지어진 화려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소성당의 제단과 벽면 장식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사진은 찍을 수 없지만 들어오며 대성당을 눈에 담았는데 웅장한 대성당 못지않게 소성당 역시 엄숙하고 경건했다. 전날 들어가 본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10시가 되자 성당 안에 은은한 종소리가 퍼졌고 소성당으로 들어온 수녀님은 작은 종을 땡땡 쳤다. 신부님은 곁에서 미사를 돕는 복사 한 명 없이 혼자 집전하셨다.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지 신부님. 나를 포함해 열 명 정도의 신자들. 그렇게 미사가 시작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성당에선 헌금 바구니를 신자석으로 돌리지 않지만, 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선 신자 한 명이 작은 뜰채처럼 생긴 헌금 바구니를 들고 지나갔고, 다들 자유롭게 헌금을 넣었다. 내가 어린 시절 성당에 가면 그처럼 헌금 바구니가 있었는데, 싶은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났다.

색다른 건 그뿐 아니었다. 미사 중간에 신자들끼리 서로 “평화를 빕니다” 라고, 인사하는 순서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앞뒤에 선 다른 신자들에게 목례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 성당의 신자들은 서로 껴안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앞자리에 앉았던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나는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타국의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영성체만큼은 낯설어서 선뜻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영성체도 했다. 어쩐지 매주 해온 의식이었음에도 다른 나라의 성당이어서일까. 굉장히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고딕 지구를 걷게 된다. 우리네 익선동을 떠올리게 하는 좁고 미로 같은 중세 시대의 거리가 고딕 지구이다. 걷는 내내 어쩐지 현실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긴 하지만, 고딕 지구는 일상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현실의 시간에서도 벗어난 곳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마차가 달려오고, 칼을 허리에 찬 기사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먼 나라 낯선 도시의 옛 건물들 사이를 걷는 기분은 그처럼 묘했다. 마치 영화세트장 속으로 들어간 듯.

고딕 지구에서 나와 람블라스 거리를 걷고, 보론지구까지 돌아다니는 동안 스페인의 햇살은 어디나 눈부시고 거리에 인파는 넘쳐났다.


바르셀로나에서 4뱍 5일의 일정, 그 마지막 날이다. 이곳을 떠난 뒤에도 나는 아마 오래 바르셀로나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아치문을 지나 중정을 사이에 두고 갑자기 성당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던 몬세라트. 온갖 기이함과 기이함을 넘은 기괴스러움으로 가득하던, 그러나 막상 내부에선 성당보다는 관광지의 느낌이 물씬 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타일 조각 장식의 익숙함으로 다가오던 구엘 공원. 가우디로 시작해서 결국은 가우디로 끝나게 되는 도시, 바르셀로나.

시간이 더 지난 어느 날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 소식이 들려온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어떤 순간, 어느 곳에서 그 소식을 들을지 모를 나는 아마도 오늘의 바르셀로나를 아련하게 추억하게 되겠지.

바르셀로나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추억이 한 칸 더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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