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에 노란색 우편물 하나가 언뜻 보였다. 설마, 하며 펼쳐보니 역시나 교통 범칙금 고지서가 맞다. 누구일까 궁금한 맘에 선 채로 고지서를 열었다. 우리 집의 운전자는 둘이지만, 차는 모두 내 명의인지라 사진 속 차 번호를 확인해야만 누가 ‘딱지’의 범인인지 알 수 있다. 사진 속 번호판은 2134 네 자리가 선명하다. 남편이 범인이다. 흠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뒤이어 범칙금 액수를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130,000원.
무려 13만 원이라니. 나는 교통단속 카메라 하나에 이만한 액수의 교통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역시 어린이보호구역의 위력은 대단하구나 싶을 뿐이었다.
그날 퇴근한 남편을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13만 원이라는 액수를 강조하며, 신호를 지켜라, 속도를 줄여라 잔소리를 이어갔다. 사실 남편은 그리 과속하는 사람이 아니니 분명 신호를 놓쳤을 것이고, 하필 그곳이 어린이 보호구역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에겐 굉장히 강조했다. 13만 원을.
사실 남편을 쥐잡듯 잡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 나는 경찰청 연서를 단골로 받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같은 날에 연달아 찍힌 주장의 연서를 쌍으로 받았던 적도 있다. 내가 받은 연서들이란 중앙선 위반도 아니고, 어린이보호구역도 아니고 오로지 속도위반, 그러니까 과속벌금이었다. 학창 시절 백 미터 달리기는 24초에 뛰던 내가 차만 탔다하면 과속카메라에 단골로 찍힌 것이다.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였다기보다는 마음이 바쁜 운전자였던 탓이다. 운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플라이낚시를 시작했고, 플라이낚시는 강원도 계곡에서 하는 것이었다. 한창 재미를 들인 낚시를 하기엔 늘 시간이 모자랐으므로 나는 평일 새벽에 강원도로 떠나 오후 근무를 위해 부지런히 돌아오는 반나절 낚시전문의 조사가 되었다. 일요일 하루 쉬는 가족들을 두고 나 혼자 낚시를 가겠다고 나서기는 맘이 불편했으므로 평일의 반나절 낚시를 택한 것이다.
사실 평일 낚시의 장점도 없진 않았다. 길이 막히지 않고, 물고기가 잘 낚이는 좋은 포인트를 선점한 낚시꾼을 만나는 일도 드물었으니 이래저래 좋았다. 하지만 갈 때는 낚시의 적요함을 상상하며 느긋했던 마음이, 돌아올 땐 돌변했다. 오후수업은 보통 5시에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려면 적어도 4시까진 일터인 학원에 도착해야 했으니, 방법은 하나. 액셀을 밟는 것이었다.
낚시하러 가는 길엔 시속 120킬로였다면, 돌아올 때는 140킬로, 혹은 160킬로까지도 속도계가 훌쩍 넘어가 있기 일쑤였다. 늘 1차선으로 다녔고, 내 앞에 얼쩡거리는 차들이 있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차선 변경을 하곤 했다. 나는 한때 그런 운전자였다.
내가 ‘한때’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그렇다. 이제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달리 설렁설렁 다니는 운전자가 되었다. 고속도로가 아무리 뚫려있어도 시속 120킬로를 넘는 일은 거의 없다. 1차선이나 가변차선을 들어가는 일도 거의 없다. 나는 그저 2차선에서 느긋하게 달린다.
내가 이런 운전자가 된 것은 역시 일을 그만두고 난 이후다. 여전히 평일 낚시를 다니고, 몸에 익은 반나절 낚시의 습관을 버린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돌아올 길이 급하지 않으니 이제 느긋하다.
오래전 한 낚시꾼이 자신의 운전수칙이 ‘국팔고백’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국도에선 시속 80, 고속도로에선 시속 100이 자기 기준이라는 것이다. 다들 웃고 넘겼던 그 말을 요즘 가끔 생각한다.
달리는 속도를 늦추고 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긴장을 내려놓고 여유롭다. 앞차의 뒤꽁무니도,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뒤차의 얼굴도 날이 서 있지 않다. 물론 예전과 달리 경찰청의 노란 연서를 받는 일도 거의 없다. 이래저래 좋은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느긋함은 한편으론 내가 그만큼 나이 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역시 인생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모두 좋을 수도 없지만, 모두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일에 치이지 않는 나이가 되었으니 바쁘게 돌아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이 이제 스릴을 즐기지 않지만, 대신 여유의 맛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의 차 번호가 떡 하니 찍힌 13만 원짜리 경찰청 연서를 다시 보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13만 원의 충격과 공포가 사라지기 전에 남편에게 다시 한번 쐐기를 박는다.
“다음에 또 이런 거 받아오면, 용돈에서 두 배로 공제해 버릴 거야!”
축구 경기 심판처럼 근엄한 얼굴로 남편에게 노란색 고지서를 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