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분담 계획표’라는걸 작성해 봤다. 우리 집 인턴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어느새 인턴 생활이 한 달 다 되어가니 이제쯤이면 내가 굳이 매번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고, ‘부탁해’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시키는 일’의 반복이니 듣는 우리 인턴으로서도 아예 담당해야 하는 목록이 확실히 주어지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맘이 나머지 반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어째 둘 다 나 좋자고 하는 일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인턴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집안일 분담 계획표라는 걸 써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도 그리 일을 잘하는 주부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뭐든 대충대충, 설렁설렁하는 쪽이다. 오늘 지워지지 않은 더러움은 다음에 지우면 되지. 오늘 정리하지 못한 살림살이는 내일 정리하면 되지. 이렇게 뱃속 편하게 살림하는 주부이다. 애초에 살림에는 재주도, 의욕도 딱히 없는 사람인 거다.
이처럼 태생이 불량 주부인 내가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요긴한 핑계는 일생 밖에서도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나는 그 일을 정리했다. 이제 ’시간이 없어서‘ 혹은 ’바빠서‘ 라는 등의, 집안 살림을 대충 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때를 맞이했다.
오래 해온 일을 접고 지금의 나는 글만 쓴다. 어쩌다 가물에 콩 나듯 글이 돈이 되고, 또 어쩌다 가끔 글을 매개로 한 자리에 불려 나가며, 일주일이면 돈이 되지 않는 글 모임과 돈이 되는 글 수업이 각각 두세 번쯤 있다. 그 어떤 경우라도 결국 ‘글만 쓴다’라는 말은 ‘놀고 있다’와 유사어쯤으로 읽히는 나날이다.
하지만 ‘놀고 있는’ 나는 여전히 살림과 가까이 지내지는 못하고 있다. 생각나면 한번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는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식기세척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서랍 속에 밀어 넣은 것들은 계절이 바뀔 때까지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채 다음 계절을 기다렸다.
우리 가족은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까지 세 식구다. 사람만큼 손이 가는 반려견 한 마리를 더 추가한다면 네 식구인 셈이다.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에서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가사일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의외로 제법 많았다. 그간 생각 없이 대충 해온 일들의 가짓수가 이렇게나 많다니, 싶어 내심 놀랐다.
청소기 돌리기, 설거지, 세탁과 건조, 방과 거실의 욕실 청소, 앞뒤 베란다 청소…. 기타 등등 요리를 빼고도 목록은 자꾸만 늘어났다.
그래. 이참에 정기적으로 집안을 좀 치우면서 깔끔하게 살아보자!
가사노동 인력이 늘었다고 해서 평소 연중행사로 하던 일까지 끄집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새로 인턴을 맞이했으니 알차게 활용해 볼 생각에 갑자기 의욕이 돋았다. 목록을 작성한 이후엔 적당히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집안일을 나누었다.
방과 거실의 욕실을 사이좋게 하나씩 맡는다.
한 사람이 청소기를 돌리면, 또 한 사람은 밀대로 걸레질을 한다.
길이가 긴 앞 베란다를 한 사람이 맡고, 상대적으로 작은 뒤 베란다를 맡은 사람은 먼지떨이로 잔 먼지를 털어내는 일을 하기로 한다.
여기까지 작성하고 보니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결혼한 것은 이미 한두 해 전이 아니다. 그간 이 목록의 집안일을 누가 대신 해주었던 것도 아니다. 물론 내가 성실히 했다 자부할 수는 없고, 부정기적으로 남편 역시 가끔은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생 맞벌이 부부로 살아왔으면서도 이처럼 가사 분담을 제대로 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이제 와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평하게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가사 분담 목록을 다시 훑어보다 생각하니 남편의 입장에 서보게도 된다. 아마도 억울함으로 따지자면 우리 집 인턴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눠주는 것이지만, 인턴은 받은 처지다. 게다가 주고받은 것이 딱히 어디서든 환영받기는 힘든 집안일이다.
이럴 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를 쓰면 맞는 것일까. 절대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인턴은 아직 인턴이다. 갈 길이 멀군, 했지만 어쩌면 그건 인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갈 길이 가깝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