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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다섯개

by 전명원


그 호텔 이름은 잊었다. 다만 믿거나 말거나 그곳은 ‘3성급’호텔이라고 했다. 물론 우리는 별의 개수가 중요하지 않은 여행자이기에 호텔 컨디션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좀더 싸고, 가격 대비 교통이 편한 호텔이 늘 선택의 기준이다.

새로 지은 빌딩따위는 아예 없는 걸까 싶을 만큼 로마는 오래된 것들의 도시였다. 온 도시 전체가, 골목이, 그리고 건물 구석구석이 모두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같은 느낌이었달까. 어떤 곳은 점잖은 선비같았고, 또 어떤 곳은 욕쟁이 할머니같았다.

체크인을 하고나자 지배인은 직접 엘리베이터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그가 창고같이 생긴 문을 열어주었을 때 우리는 마치 관짝같이 좁은 엘리베이터에 기겁했다. 어깨를 좁히고 둘이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호텔은 점잖은 노인이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속 주인공들처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건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나름 알찬 로마의 휴일을 즐겼다. 책에서만 봤던 것들이 실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바가 아니었다. 콜로세움을 보며 감탄했고, 트레비 분수에선 우리도 남들하듯 동전을 던졌다. 천정에 구멍이 뻥 뚫린 판테온에선 목을 한껏 꺾으며 그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겨울과 봄 사이의 로마는 걷기 좋은 날씨였으므로 우리는 하루종일 걷고 또 걷다 호텔로 돌아왔다.


문제는 바로 그 호텔이었다. 첫날 호텔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난감한 얼굴을 하다 이내 웃음이 터졌다. 작은 호텔방안엔 더블베드와 벽에 붙은 텔레비전, 그리고 옷장과 책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옷장이 문제였다. 벽에 바싹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모서리에 배치된 것도 아닌, 한마디로 침대 맞은편 벽의 중간쯤에 ‘놓여 있었다’. 정말 놓여있었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 이상한 배치는 날씬한 사람이라면 그 뒤로 드나들 수도 있을만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혹시 메이드가 청소하면서 옷장을 움직였나싶어 벽과 모서리에 붙여보려했으나 심지어 이 옷장은 바닥에 고정되어있었다. 마치 옷장과 밀착되어 있던 벽이 뒤로 물러난 것 같은 이해할수 없는 구조였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만한 언어능력은 되지 않으니 우리는 그저 그 방에 적응하기로 했다. 전기주전자안에는 석회가 잔뜩 끼어있었지만 “먹고 죽지는 않겠지”라며 애써 흐린 눈을 했다. 침대의 스프링은 꿀렁꿀렁했지만 “우리가 원래 딱딱한 침대에 익숙해서 그래”라며 서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샤워할 때 발생했다. 비행기 화장실만큼이나 작은 샤워부스였는데 과연 이걸 샤워부스라고 해야할까 싶을 만큼 샤워기의 물은 부스 밖으로 흘러나갔다. 다행히 욕실 바닥에도 하수구가 있어 안심하며 애써 몸을 요리조리 굴리며 샤워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야! 방으로 물이 막 들어와!”


샤워부스에서 새어나온 물은 욕실 가운데의 하수구로 내려가야 맞는 것이지만 문제는 욕실바닥의 경사가 거꾸로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수구대신 벽쪽으로 물이 몰려갔는데, 설상가상으로 욕실벽바닥에는 길다란 균열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그 틈을 통해 샤워부스에서 새어나온 물이 방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다급히 타올들을 꺼내어 그 틈새를 막고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호텔이 이래?”


방을 바꿔달라고 할 생각도 못한 순진한 두 여행자는 결국 샤워부스에 들어가 매우매우매우 조심하며 샤워기를 들고 최대한 물이 튀지 않게 샤워를 해야했다. 게다가 한 명이 샤워하고 있을때엔 혹시 모를 물난리에 대비해 또 한명은 그 틈새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야만 했다.

로마에서 머문 짧은 일주일. 하루종일 걷고 돌아온 밤이면 그렇게 번거로운 샤워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분명 처음 인상은 점잖은 얼굴에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었던 호텔은 점점 욕쟁이 할머니가 되어갔다.


그 호텔에서 일주일을 보낸 로마여행이 끝난지도 이미 십수년이 지났다. 그래도 여전히 로마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콜롯세움보다 샤워전쟁을 치르던 그 호텔을 먼저 떠올리며 웃곤한다. 사실 이처럼 웃을수 있는건 그 호텔의 다른 얼굴 때문이다.

이상함을 넘어 수상하기까지 하던 가구배치와 물이 새어 들어오는 방, 찝찝한 물주전자 같은 모든 단점들을 단번에 덮어버릴 만큼의 장점이 그 호텔엔 있었다. 그건 바로, 이른 아침마다 들려오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새벽미사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호텔 바로 앞엔 그 유명한 산타마리아 마조레대성당이 있었는데 그곳 종탑에서는 웅장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종소리가 마치 물결처럼 새벽 공기를 가르고 퍼져나갔다. 나는 매일 아침 누워있다가 그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알람도 필요없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나처럼 막 잠에서 깨어나는 골목을 내려다봤다. 건물사이로 보이는 대성당과 종탑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로마의 하늘도 한참 보다가 여행자의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여행은 끝나고나면 참 빨리 멀어진다. 우리의 로마도 그랬다. 짧은 여행이 끝난후 떠나온 로마는 빛의 속도로 멀어졌다. 하지만 실재함을 알게된 많고도 많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도시에서도 우리가 머물었던 그 허접한 호텔은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단점 투성이였지만 우리에게 최악의 경험으로 남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로마의 그 호텔은 이후 우리가 여행하며 만나는 모든 숙소들의 기준이 되어주기도 했다. 로마에선 더한 곳에서도 있었는걸. 로마에 비하면 여긴 5성급이지. 이런 식이다.

그렇다. 호텔앞 일리커피에서 매일 마시던 에스프레소덕에 버텼다던 남편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매일 아침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종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숙소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어진다. 물론 “재방문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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