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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by 전명원

“엄마는 두루마리 화장지 쌓아놓는 걸 그렇게나 좋아했잖아!”

“맞아. 금방 전쟁 날 것도 아닌데 휴지는 기본이라며 유난히 그걸 그렇게 쟁여뒀었지.”

우리 자매는 엄마의 이야기를 하며 맞장구를 치고 웃었다.

무언가 공유하며 살아온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란 이런 것이다. 우리 엄마는 이상하게도 두루마리 화장지를 쟁여놓는 습관이 있었어,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랬었잖아, 라고 하는 것. 추억을 꺼내어 놓는 데에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관계.


미국에 살고있는 언니는 짧은 두 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여행 온 내내 바빴다. 친구들을 만나고, 시댁에도 갔다. 게다가 여행인플루언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여기저기 다니며 자료수집도 했다. 여행자의 바쁜 일정을 쪼개 우리 자매는 함께 쇼핑몰을, 새로 생긴 도서관을,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함께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공통의 추억들이 튀어나왔다. 나만, 혹은 언니만 알고 있던 사실들. 함께 기억하는 순간들. 그리고 우리 둘 다에게 교집합일 수밖에 없는 멀리 떠난 가족들.

이제 언니는 여행을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간다. 열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날아가야 하는 지구 반대편에 언니의 삶이 있다. 언니가 결혼해서 한국을 떠난 지는 이미 수십 년이 되었으며, 팬데믹 같은 특수상황이었던 기간을 빼고는 매해 한국에 다녀가니 이제 이별이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언니가 와있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멀리 떠난 가족들이 유난히 더 가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때 엄마가 미국에 와서 말이야….”

“아빠랑 갔던 곳이잖아.”

“우리 어렸을 때 먹었던 거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때,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추억의 시간을 꺼내놓을 때. 그럴 때면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듯 훌쩍 그 시절로 가게 된다. 어쩐지 떠나버린 가족들이 옆에 와서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날도 오겠구나. 언젠가는 다른 이들이 모여서 갑자기 나를 소환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구나. 비록 그들 눈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시댁에 인사를 드린다며 언니가 외출하고 난 방을 들여다봤다. 비어있는 방에 언니의 캐리어가 놓여있었다. 올 때 여행자가 챙겨온 캐리어엔 이런저런 선물들도 자리 잡고 있었지만 모두 반가운 이들의 손에 들려 떠났다.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는 그간 언니가 사들인 물건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들로 다시 채워졌다. 그뿐인가. 올 때보다 짐이 너무 많이 늘어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캐리어를 내주었다. “내년에 이 캐리어 가지러 갈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빈방을 나서다가 문득 빌려준 그 캐리어에 눈길이 갔다. 손잡이에 감아둔 붉은 손수건. 그건 엄마의 손수건이다. 나는 여행 다닐 때면 캐리어, 혹은 가방에 엄마의 손수건을 묶어 다닌다. 잠시 망설이다가 캐리어의 손잡이에서 엄마의 손수건을 풀었다. 다음 여행길에 캐리어는 없어도 괜찮지만, 엄마의 손수건이라면 필요하다.

풀어낸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언니에게도 나처럼 ‘엄마의 손수건’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언니뿐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떠난 후 남겨진 누군가의 손수건 같은 것.


여행을 마친 엄마는 내게 손수건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언니에게 나는 내 캐리어를 보낸다.


이처럼 어떤 것은 돌려줄 수 없으며, 어떤 것은 돌려받을 기약을 한다. 물론 기약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래도 “내년에 캐리어를 가지러 미국에 갈게, 잘 가지고 있어.” 라고 이야기하며 이별하는 지금은 행복한 것이다.

아직 무언가를 기약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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