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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운전면허 갱신 대상자이다. 연초부터 문자로. 카톡으로 계속 안내문이 날아왔다. 미루고 미루다가 올해 운전면허 적성검사 및 갱신 대상자가 역대 최고 인원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무려 약 489만 명에 달하며, 전 국민 10명 중 한 명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더 이상 연말까지 미룰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물론 기간 내에 갱신하지 않을 경우 붙는다는 과태료를 생각하니 은근히 조급해졌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운전면허 갱신하려고 보니 당연히 사진이 필요했다. 가지고 있는 반명함판 사진도 있지만, 이것은 몇 해 전 지금의 운전면허증을 영문 겸용 운전면허증으로 바꾸면서 썼던 사진이다. 당연히 이 사진으로는 갱신이 안 된다. 새로 신청할 땐 반드시 최근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이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진관에 가야 한다. 넙데데한 얼굴을 조금이나마 깎아주고, 세월의 잡티도 좀 가려주는 보정을 해주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반명함판 사진을 찍는 비용도 제법 올라있었고, 이처럼 신분증 갱신이 아니라면 사실 그 사진을 쓸데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즘의 핸드폰은 못하는 일이 없고, 핸드폰 카메라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화질을 자랑한다. 모델이 멋지지 않을 뿐이니 전문가의 보정만 포기하면 된다. 하긴, 원판 불변의 법칙이니 전문가라고 해서 나를 환골탈태시켜 줄 수는 없으니, 포기는 어렵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집에서 셀카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온라인 신청을 할 예정인데 그렇다면 굳이 인화된 증명사진이 필요치 않으니 더욱더 시도해 볼만하다. 파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집안의 조명을 밝히고, 무늬 없는 흰색의 벽 앞에서 요리조리 표정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선 어색함이 한가득인데 혼자 셀카로 찍어보니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놀이하듯 수십 장의 셔터를 누르고 결과물을 확인한 끝에 맘에 드는 한 장을 건졌다. 물론 그 ‘맘에 드는’이라는 것은 ‘포기’와도 비슷하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사진을 들여다볼 땐 최대한 ‘흐린 눈’을 했다.
자! 이제 사진이 준비되었다. 그렇다면 온라인 신청을 시작하라 차례다.
굳이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사진을 찍어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수 있는 시대라니. 기술의 발전에 어두운 이면이 없을 리 없지만 이런 점은 정말 편하고 좋다. 단, 이 기술의 발전을 누리려면 끊임없이 접하고 익혀야 한다는 단서가 붙지만.
온라인 신청을 할 때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활용하려면 미리 ‘픽셀’을 조정해야 한다. 핸드폰 사진의 편집화면에서 크기조정 메뉴로 들어가면 픽셀 조정도 할 수 있다. 운전면허 신청사이트에서 요구하는 350-450 크기로 간단히 조정할 수 있었다. 이 파일을 업로드하니 바로 적용되었다. 참 간단한 시스템이다. 나처럼 ‘쓰는 기능만 쓸 줄 아는’ 사람도 너끈히 해낼 수 있을 만큼 쉬운 과정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운전면허 갱신 사이트에선 7년 무사고이니 1종 면허를 신청할 수 있다는 안내가 떴다. 하지만 1종 면허를 신청한다면 적성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잠시 망설였지만, 하던 대로 그냥 2종 면허로 갱신하기로 했다.
특이한 건 운전면허 갱신 주기였다. 내가 발급받은 2종 면허의 경우 65세 미만은 10년 주기로, 65세 이상 75세 미만은 5년, 그리고 75세 이상은 3년이었다. 나이에 따라 갱신 주기가 다르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마 예전의 나는 그 갱신 주기가 궁금하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여전히 10년의 갱신 주기를 받을 수 있는 나이긴 하지만, 10년 후라면 그때엔 다른 기준을 적용받겠구나 싶으니 어쩐지 남다른 기분이었다.
갱신 주기가 나이에 따라 다른 것 외에도 또 다른 점이라면 면허증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뒷면에 영문 표기가 되어 있는 운전면허증을 쓴다. 외국 여행 시 여권 대신 영문 면허증으로 신분 확인을 했던 적도 있어 이 제도는 퍽 유용했다. 이번에는 IC칩이 내장된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 일반 면허증보다 비싼 1만 5천 원의 갱신수수료가 붙었다. 나는 나이 들수록 비싸고, 크고 좋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써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경험이고, 문화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IC 면허증으로 발급 신청했다.
이제 수령할 장소와 날짜만 지정하면 된다. 가장 빠른 날짜는 12월 11일이었다. 신청일이 11월 19일임을 감안하면 적당하다. 장소 역시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로 지정했다.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하게 운전면허 갱신 신청을 마쳤다.
운전자인 나는 지난 10년 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이제 새롭게 부여받은 면허 기간 10년 동안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을까.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이 같을 리는 없다.
나는 전보다 액셀을 덜 밟는 운전자가 되었다. 전에 비하면 1차선과 가변차선에 들어가는 빈도도 현저히 줄었다. 생각해 보니 양보도 좀 더 한다. 무개념 운전자를 만났을 때의 흥분도 역시 전에 비하면 훨씬 낮다.
물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삐리리’소리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여전히 있지만 새로운 10년도 나는 좀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운전자로 핸들을 잡아볼 생각이다. 길 위에 늘 평화가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