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우리 요가 선생님
요가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효리 언니처럼 제대로인 요가인은 아니지만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시간이 되는대로 꾸준해 해 왔다. 예-전에 유행하던 핫요가도 해보고 줄을 천장에 걸어 하늘을 날듯이 하는 플라잉요가도 해봤다. 기구에 몸을 맡겨 움직이는 필라테스도 해봤다.
결국 제일 몸과 마음이 편한 요가는 얇은 요가 매트를 깔고 맨몸으로 하는 클래식(?) 요가였다. 살면서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많은 요가원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가격이 좀 무리였던 요가원도 있었고 퇴근 후 너무 힘들어 거의 기부하다시피 다니던 요가원도 있었다.
드디어 정착한 지금 이 동네에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했다. 운동은 선생님이 좋고 가까운 곳이 최고라는 나의 기준에 따라, 내가 사는 지역 문화체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요가수업에 등록했다. 첫 수업 시작부터 북적북적. 족히 30명은 넘어 보이는 많은 요가인들이 수업 시작 10분 전부터 줄 서있었다.
‘인기가 많은 수업 인가 보네. 정보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나는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는 선생님을 기다렸다.
곧 들어오신 선생님은 표정이 밝고 눈빛이 맑은 분이었다. 나는 ‘눈빛’을 본다. 사실 다른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눈에서 나오는 맑은 빛은 그 어떤 것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맑은 빛이 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확률이 아주 높다.
내 예상대로 선생님은 수업에도, 사람들에게도 아주 진심이었다. 그 많은 수강생들의 자세를 최대한 다 봐주기 위해 노력하셨고 교실 끝까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크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끝까지 숫자를 세어주셨다. 뻗는 손끝은 얼마나 힘이 있으면서 섬세한지, 선생님은 현대무용을 전공하셨을 것 같다고 마음대로 추측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센터를 다닌 지 일 년, 드디어 선생님과 나는 스몰토크를 할 수 있었다. 맑고 섬세한 그 선생님은 귀여운 아이가 있었고, 나의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부터 두 블록 떨어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내 유력한 선택지에 있었던 어린이집이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는 좀 올라가면 보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저도 선생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보낼 뻔했는데요.” 같은 동네에 머물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은은한 유대감이 생겨 기분이 좋았다. 착한 그 선생님은 내 말에 놀랐고 같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이들의 방학과 이런저런 일들로 요가 수업에 나가지 못한 지 수개월, 아주 우연히 어린이집 옆 카페에서 선생님을 마주쳤다. 첫째 아이의 방학을 맞이해 둘째를 등원시키고 같이 카페에서 책을 읽을 계획이었다. 띠링- 카페의 문을 열자 보이는 나의 요가 선생님. 나도 모르게 선생님! 부르며 선생님을 안아주었다.
‘어라? 나 왜 이리 오버해? 우린 고작 스몰토크만 한 사인데. 너무 일방적인 관심 아니야?’ 그 짧은 시간에 후회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포옹하자 슬며시 같이 손을 모아 안아주셨다. 손길이 참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회원님, 그간 왜 안 나오셨어요. 기다렸어요. 잘 지내시죠?” 선생님은 역시 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반가워하셨다.
우리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서로의 근황과 아이 얘기, 수업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아이를 보며 반갑게 인사도 해주셨다. 아-그리고 혹시 현대 무용을 전공하셨냐고 여쭤도 봤다. 선생님은 무용을 전공한 것은 아니고 허리가 아파 시작한 요가가 이렇게 업이 되었다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다.
커피가 나오자 선생님은 오전 요가 수업을 위해 문을 열고 나가셨다. 나와 아이에게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주셨다. 나도 행복한 성탄절 보내시라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우연히 자주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스몰토크에서 미들토크를 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나이도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나의 요가선생님은 언제나 나에게 맑고 빛이 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