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02
세상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이혼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누가 이혼을 했다더라, 다시 시작했다더라 하는 말이
그저 일상 대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아니, 요즘 사람들 왜 이렇게 쉽게 이혼해?”
“이혼은 흠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 아냐?”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에 쉬운 이별이 없듯, 쉬운 이혼은 없다.
누구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겉으론 담담해 보여도, 그 안에는 수없이 부서지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숨어 있다.
내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큰아이는 중2, 작은아이는 4학년
둘 다 엄마 아빠를 다 좋아하고,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주던 아이들이었다.
3개월의 숙려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이혼이 확정되는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날은 작은아이의 체육대회날이었다.
며칠 전, 작은아이가 내 옆으로 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엄마, 체육대회 꼭 와야 해! 나 이번에 진짜 열심히 연습했다! 알지?”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말이 반가우면서도, 너무나 아팠다.
“… 아들아, 엄마가 그날은…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멈춰 섰다.
“왜? 약속했잖아. 엄마 맨 앞에서 응원해 준다 했잖아.”
작은 목소리로 했던 말인데,
그 말이 어른의 마음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미안해… 엄마가 꼭 가야 하는 일이 있어.
정말… 빠질 수가 없어.
그리고… 아빠도 일이 있어서 못 가.”
아이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작은 뒷모습.
어깨가 축 처진 모습.
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내 마음엔 쿵, 하고 울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이의 학교 대신 법원으로 향했다.
아침 햇살은 유난히 밝았는데
나는 그 밝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혼잣말과 눈물이 서로 끊임없이 밀려왔다.
“오늘만 아니면 좋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아이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여기까지 버텼는데…
결국 시작부터 이렇게 아프게 만드는구나…”
법원 앞에 도착해도 몸이 쉽게 움직이질 않았다.
심장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너무 오래 멈춰 있었으니까.
후회와 결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나는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그 작은 도장 하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잘라냈다.
손이 떨려 도장을 제대로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흐르고,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
이건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울면서 이혼을 했다.
40대의 어느 날,
나는 아주 조용하고도 무겁고도 슬픈 독립을 했다.
누구에게도 쉬운 길이 아니고,
누구도 가볍게 택하지 않는 선택.
겉에서 보기에야
‘이혼했다더라’
단 한 문장으로 끝나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수백 번의 망설임, 수천 번의 심호흡,
수많은 밤의 눈물이 쌓여 있다는 걸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이혼은 절대 쉽게 하는 결정이 아니다.
누구도 쉽게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