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게 제일 좋아.

자존주의 11

심리 상담 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루 종일 뒹굴고 있는 본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나는 거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한심하죠.”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오히려 스스로 놀랐다.

선생님은 잠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다른 분들은 편하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같은 장면인데

누군가는 ‘한심’이라고 보고

누군가는 ‘편안’이라고 본다니.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가혹하게 보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운동이라도 해야 했고,

책이라도 읽어야 했고,

적어도 무언가는 해야

“오늘을 낭비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가만히 있으면 이런 소리가 올라왔다.

“너 왜 이렇게 나태해?”

“남들은 더 열심히 사는데.”

“이러다 뒤처지는 거 아니야?”

나는 늘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부지런해 보이고,

성실해 보이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나 쉬는 날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거 너무 좋아.”

나는 진짜로 당황했다.

그걸 좋다고 말한다고?

그걸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 기준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건

게으름이었고, 의지 없음이었고,

고쳐야 할 태도였다.


근데 그 친구는 조금도 눈치 보지 않았다.

“나는 그게 제일 행복해.”

그 말이 이상하게 부러웠다.


저 사람은

남들이 뭐라 할지보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가 더 중요하구나.

나는 오랫동안

남들 기준으로 나를 재고 있었다.

한심해 보일까 봐,

게을러 보일까 봐,

별 볼 일 없어 보일까 봐.

그래서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했고,

좋은 것도 눈치 보며 골랐다.

편한 게 편하다고 인정하지 못했고,

힘든 게 힘들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비난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눈치 보며 살다 보니

내가 진짜로 좋고 싫은 게

점점 흐릿해졌다.

상담실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가

자꾸 떠올랐다.

“다른 분들은 편하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나에게 질문처럼 남았다.

나는 왜

내 편안함을 한심함으로 바꾸고 있었을까?

왜 나는 쉬는 나를

가치 없는 사람처럼 대했을까?


자존감은

대단한 성취에서 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선택이라도,

“나는 이게 좋다.” “나는 이건 싫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게 더 중요한 건 아닐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내가 편하면 그냥 편한 거다.

남들이 보기에

한심하고 멍청해 보일지라도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남들 기준에 맞춰 살던 동안

나는 늘 부족했다.

내 기준으로 서기 시작하니

비로소 조금 편해졌다.


한심해 보여도 괜찮다.

내가 좋으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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