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무디어 놓은 하늘과 땅의 경계
안개가 다가왔다.
비와 함께 산으로 내려앉는다.
고개 들어 하늘에 보이던
구름, 숲으로의 침잠
경계가 사라졌다.
하늘인지 땅인지 구분이 헛되다.
안개가 흐려놓은
분별, 하나로의 만남
하늘이 내려왔다.
나무 사이 숲 속을 들락거리다.
구름인 듯 안개인 듯
雨中, 무디어진 天地의 경계
비가 억수로 내립니다.
내리고 또 내리는,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리는 장마입니다.
비 오는 날, 통도사에 갔습니다.
어마어마한 소나무 숲이 줄지어 있는 길을 지나갑니다.
영축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계곡을 지나 큰 내에 이르도록 격동의 물줄기를 만듭니다.
산꼭대기에 닿았을 빗물은 산허리를 지나 아래로 하산합니다.
거대한 낙락장송의 머리 끝에 내렸던 빗물이 줄기를 더듬어 땅으로 흐릅니다.
하늘에 있던 구름이 비로 내리며, 안개로 현현顯現하기를 반복합니다.
구름이 산허리로 내려와 하늘인 듯 땅인 듯 숲을 비경으로 만듭니다.
하늘에 있던 그것이 나무를 휩싸 안아서 몽夢인 듯 현現인 듯 몽환을 보여줍니다.
물안개가 숲을 들락거리며, 하늘과 땅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 통도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한국의 산지승원입니다.
입구부터 펼쳐진 낙락장송이 그득한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를 따라 걸으며,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차를 타고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서 늘어선 장송들도 장관입니다.
비가 그득한 장마의 시간, 영축산은 물이 가득 차서 굽이굽이 계곡으로 물을 내립니다.
통도사 옆 아랫 계곡 조차 폭포수 같이 힘 있게 흐릅니다.
산이, 계곡이, 절이 비와 만나는 호우시절을 만끽합니다.
통도사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내려와 있습니다.
구름이, 안개가 가득해 절 뒤로 나무가, 숲이, 산이 하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경계가 무뎌지고 흐려져 하나가 된 하늘과 땅, 산, 나무들.
상을 짓지 마라, 경계境界 짓지 마라는 가르침을 산과 조우하는 안개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땅인지 하늘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 나인지 너인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하기를 멈추어 봅니다.
경계를 만들지 않는 삶에 대해 오늘 다시 새겨 봅니다.
비가 오는 날, 안개가 가득한 날, 하늘이 내려오는 날입니다.
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