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던 것이 안되고 안되던 것이 되는 그런?
30대 초반인 후배가 정말 그렇게 물었단다.
"선배, 50대에는 무슨 재미로 살아요?"
이제 막 쉰을 넘긴 선배는 "야, 이 나이에도 살 만하다"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런 돼먹지 않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한 그 후배가 이제 쉰을 훌쩍 넘겼다.
그 선배 나이를 넘기고 나니 그런 질문했던 게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남편은 그때 그 얘기를 가끔 한다.
"내가 그런 질문을 했었어. 정말 50 정도 되면 아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았거든."
30대의 나는 반대로 내가 50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저의 정신연령은 50대예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기자 생활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친구 범주가 되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
그냥 서로 편하고 좋아서 일과 상관없이 만나게 되는데 50대가 제법 됐다. 그래서 그런 말을 겁도 없이 했다. 50대들과 잘 통하니, 나의 정신적 교류 레벨이 좀 상승된 느낌이랄까 뭐 그랬다. 50대가 뭔지도 모르고서.
엎어치나 메치나 30대였던 그들은 50대를 잘 몰랐다.
50대가 된 그들은 자신이 30대인지 50대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가 있다.
30대 때 세상 다 산 것 같이 경륜이 풍부해 보였던 50대가 되어도 여전히 어설픈 자신을 알게 된다.
20여 년이란 시간이 그냥 가지는 않았을 텐데도 언제 이만큼 왔나 싶게 순간인 듯 느껴진다. 때론 감성이 30대가 되고, 가끔은 20대 느낌도 스멀 올라온다. 마음은 청춘이란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중학교 다닐 때 주말 오후는 '젊음의 행진'과 '영 11(일레븐)'을 했다. 정말 좋아하는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이걸 맘껏 못 봤다. 아버지가 어쩌다 TV를 보시게 되면 권투 중계를 틀었다. 권투를 내가 좋아하는 이 프로그램과 같은 시간에 하는 중계하는 방송국만 원망했다. 아버지는 큰소리 한번 안치고 소리 없이 강한 권력자였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그저 아쉬운 눈길만 교환했다. "젊음의 행진 보고 싶어요" 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택진, 왕영은 등이 MC로 활동했던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백댄서들이 함께 나왔다. 그냥 넉넉한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팔다리 쭉쭉 뻗어가며 추는 디스코 군무를 보며 나는 백댄서를 꿈꿨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고 싶었다. 몸을 좀 움직여보니 그들 못지않은 몸놀림이 나왔다. 리듬을 좀 탔다.
대학에 들어가니 과에서 단체로 디스코장에 갔다. 저녁을 분식으로 먹고 나서 입장료 2천 원 하는 디스코장으로 몰려갔다. 거기서는 작은 콜라가 한 병씩 제공됐다. 콜라 한 병 마시고 몇 시간을 춤췄다. 정말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자신을 느끼며 댄서로서의 우성인자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점쳤다.
'나는 백댄서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누가 인정을 해주든 말든 나는 댄스에 소질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음악을 좋아하며 그 음악에 맞는 몸놀림이 가능하고, 맘만 먹으면 어떤 댄스든 익힐 수 있다는 자부심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치원 발표회에서 '압도적 허리 돌림으로 무대를 사로잡고 있는 저기 저 여자애'가 나의 딸인 것은 나의 유전자의 발현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딸이 자꾸 웃는다. 엄마의 몸짓에 감동은 못할망정.
음악에 따라 리듬을 조금씩 타다 보면 약간의 댄스 형상이 나오는데, 딸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몸 개그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내가 댄스를 너무 오래 쉰 것 같다.
뭐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박진영은 아직도 날렵하게 춤을 잘 추고 있지 않은가. 그의 나이를 검색해봤다. 72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쉰이다. 내가 박진영처럼 지속적으로 춤을 췄다면 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지 않고 감동했을까.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니까 영맨이나 와이엠시에이 같은 가사가 흐르면 그때 그 느낌이 살아난다. 몸은 가볍고, 지나치게 움직이지 않아도 리듬이 충분히 살아있는 몸짓은 내 마음속에만 있다. 형상은 그렇지 않게 되었다. '나는 백댄서가 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오늘 새벽 숲에 다녀왔다. 100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1만보를 채웠다.
새벽마다 길을 나서는 남편을 따라나섰다. 어제, 오늘 아침부터 그러기로 했다.
감정의 상태가 자꾸 어딘가로 가려고 해서 더 많이 움직여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충분히 자고 일찍 일어나 새벽 숲을 맛보고 싶었지만 새벽 3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몇 시간을 잤건 그냥 움직이기로 했다.
50대가 되니 나에게도 이런 발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초새벽에 눈이 자꾸 떠지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살면서 누구나 우울감과 불안감 등 불쾌함을 여러 차례 경험할 것으로 본다.
이런 감정 상태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있든지 어떤 일이 있었다.
출발이 뭐건 감정의 폭주로 내달을 때는 내 안에 원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이 생각을 낳아서 과장된 스토리텔링으로 상황을 부풀리고 감정도 덩달아 커져갔다. 생각이란 게 참 황당할 정도로 지 마음대로이고 과장과 왜곡을 잘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생각의 끝없는 확장을 서둘러 차단하는 것으로 감정을 끊어냈다. 멈춰라!
휴일에 내내 마음이 갈팡질팡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곁에 있던 딸이 쉽게 만나기 어려운 딴 나라로 떠난 게 도화선이 되었는지 몰라도 이런 감정은 참 이상타. 원인 부재의 울적함이 주조를 이루고 막막함, 허전함, 부질없음, 불안감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락가락한다. 누구를 탓하지도 못하고 원인을 찾지도 못하겠으며 진정하기가 쉽지 않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알아차릴 게 뻔한 남편이 "왜 그러냐?"라고 묻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왜 그런지, 또 어떻게 그러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걸을 뿐이다.
휴일에 두 시간 넘게 숲을 오르내렸다. 오르막이 나타나면 뛰었다. 숨이 차서 심박수가 170을 넘긴다.
오늘 새벽에도 오르막을 뛰어오른다. 심박수가 172를 기록한다. 이런 고강도 운동은 균형감을 찾게 해준다고 한다.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고 오르막을 뛰는 구간으로 정해놓고 강도를 높여본다.
마음작용이란 게 결국 뇌의 작용이고 갱년기를 맞아 호르몬 불균형으로 감정이 균형감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걷다가 뛰다가 하는 식으로 다양한 강도로 운동을 하면 혈류량이 증가하고 세로토닌과 신경세포 성장인자 등이 늘어나 화학적 변화, 즉 몸의 균형감을 되찾게 해준다고 한다.
감정이 들쭉날쭉하는 첫 경험을 맞아 몸을 더 많이 움직이는 것으로 훈련해보고자 한다.
오후에는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를 폈다. 어제나 오늘 같이 감정상태가 안 좋을 때는, 행복이 저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는 그냥 여기저기 펴서 보면 좋은 책이다. 쉽게 읽기 좋도록 편집을 해놓았다.
저녁에는 법륜 스님의 유튜브를 잠깐 봤다. 좋고 나쁨이 오고 가는 윤회의 틀을 벗어나는 법문이 와 닿는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 탓하지 말고,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것에 좋아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작용에 집착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50대가 되니 이런 법문들이 내 것이 되는 첫 경험들이 이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 대문 사진 : 새벽 숲 광경. 꽃도 아름답고 잎도 아름답고 앙상한 가지도 아름답다. 제각각 다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도 50대 나한테 주어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