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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r 05. 2021

내가 무언가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의심해보셨어요?

내가 원치 않는 나를 만든 나의 뇌 점검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잖아


꼭두각시라니요? 무슨 그런 말 같잖은 말씀이세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자존감이 아주 짱짱한, 매우 주체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지성인이라고나 할까요?

지성인이라고 내입으로 말하려니,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불러도 크게 민망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어요. 

아무튼, 저는 꼭두각시 같은 거 근처에도 안 가는 그런 사고께나 하는 정신의 소유자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꼭두각시가 뭔지 먼저 정확히 알고 갈 필요가 있을 듯싶다.

꼭두각시란 나무로 깎아 만든 탈을 쓰고 노는 젊은 색시 인형으로,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물체를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괴뢰, 목우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북한을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대로 하는 집단이라고 해서 괴뢰(傀儡)라고 불렀다. 북한 괴뢰를 줄여서 북괴라는 표현을 많이 했었다. 어렸을 적 북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괴뢰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몰라 괴물이 연상되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꼭두각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우리는 누구도 꼭두각시가 아니고, 아니길 원하며,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흔히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도 힘내고 싶은데 힘이 안 나!"

"내 감정이 왜 이러는지 몰라!"

"나는 이 우울함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도대체 누가 시키는겨?


내 감정을, 내 몸을, 내 컨디션을 내가 감당키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지닌 크고 작은 질병들, 감정선, 고통들이 나를 지배한다. 나는 지배당한다. 

나한테 내가 지배당한다는 게 논리가 성립이 되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냥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상태에 있는 거잖아."

"내 컨디션이 그래서 그래. 이것저것 하고 어쩌다 보면 좋아지기도 해."


이런 생각과 느낌이 나오는 곳은 바로 우리의 뇌다.

우리는 생각과 감각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다. 좋은 말이다. 나를 존중한다는 것. 

하지만 그 생각과 감각은 많은 경우 과거의 무엇이거나 미래의 무엇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후회나 걱정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아무 맥락이나 개연성 없이 막 튀어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필레이 하버드 의대 교수가 쓴 <두려움>에 의하면 뇌신경세포는 저항이 적어서 전류 방해 없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단다. 다량의 전기신호가 뇌를 통과하지 않아도 많은 개별적인 생각이 만들어지고, 이 생각들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생각이 제시되면 뇌는 그것을 합쳐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에 두려움을 유발하는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수십억 개의 뉴런과 수천조 개의 연결이 존재하고, 이 모두에는 이야기를 활성화하는 전기 자극이 흐른다. 사람을 '꼼짝 못 하는'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는 거의 항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너무 어려워"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행동이 일어날 수가 없다. 어려움을 인정하고 이걸 꼭 극복할 것이라고 주의를 기울이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뇌의 행동 중추로 전자들을 흘려보낸다. 의식적인 뇌는 무의식적인 뇌와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다 이해를 했겠지만, 다시 한번 해석하자면 생각의 두 가지 단서만 있어도 뇌가 이걸 연결해서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생각들이 기분 좋은 것이기보다는 우리를 고단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될 거야, 힘들어, 못하겠어 같은 생각들이다. 무의식에 잠재된 두려움이 원인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지'하는 생각을 일으키면 뇌가 우리를 행동하도록 돕는다. 긍정적인 행동을 유발하도록 연결하고, 이 연결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내 뇌니까 내가 조종할 수 있다, 굴복하지 말자       


4년 전 나는 의식의 퀀텀점프라 할만한 체험을 했다.


<놓아버림>에 이어 <치유와 회복> <의식 수준을 넘어서> 등 데이비드 호킨스 책들을 탐독하고 있을 때였다. 

호킨스 박사는 끌어당기는 힘으로 이걸 설명했다. 

"부정적인 에너지 장은 온갖 에고의 태도들을 불러일으켜서 욕망을 순수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욕망과 더불어 분노와 자만심, 두려움, 슬픔, 무감정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슬픔은 두려움과 분노에 찬 욕망을 동반하며, 이 각각의 감정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20년 이상 끈질기게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얼마나 심했던지 면역치료에서 각종 한방치료까지 별의별 치료라는 치료를 다하기 위해 대학병원부터 이비인후과, 한의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결혼 초기에는 아예 환경을 바꿔보기 위해 휴직을 하고 사찰에서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큰 차도가 없었다. 오래된 병이라 그냥 잘 관리하는 수준에서 지니고 살았다. 정도만 조절할 수 있을 뿐이지,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심하였고 항히스타민제도 부작용이 심해 복용하면 맥을 못 출 정도로 힘이 빠졌다. 그러니까 콧물 재채기로 혼이 빠지거나 약물로 힘이 빠지거나 하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앉아서 밑줄 그어가며 마음공부를 하다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호킨스 박사의 말에 크게 공감을 했다. 

마음이 아주 강력하므로 부정적인 믿음체계를 한 번이라도 그냥 넘겨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알레르기가 있어'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이 생각에 제동을 걸고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책 <치유와 회복>에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건 다음과 같다. 아래 설명은 내가 이 방법에 따라 내 의식과 생각을 정리했던 것이다.

1. 병의 감각 경험에 대한 저항을 놓아버린다.

알레르기 비염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코끝 찡함과 근질거림을 정말 너무 싫어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그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그래도 그렇게 싫어하며 버둥대지 않겠어'하고 거듭 나에게 다짐했다.

2. 병의 이름이나 딱지를 더 이상 붙이지 않는다.

나는 알레르기 환자가 아니다. 그냥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날 뿐이다.

3. 말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는 그냥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을 경험했다.

4. 생각이라는 형체와 믿음체계를 철회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알레르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겠다. '알레르기가 뭐야?'하고 나한테 해맑은 표정으로 반문해봤다. 

5.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에너지 장을 선택한다

- '내 알레르기는 모두 치유되었다, 이제 건강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라고 나한테 세뇌했다.


진심으로 정말 마음을 다해 알레르기 비염을 다독였다. 그게 어떤 대상이나 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널 싫어하지 않겠어." "증상이 나타나면 그냥 함께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알레르기 환자가 아니야." "나는 모두 치유됐어." "나는 건강해." 


주문을 외웠다. 내 의식의 힘을 빌려 무의식으로 잠재된 고질병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정말 나는 이제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아니다.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아주 가끔 코가 막히거나 콧물, 재채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냥 한 번씩 몸이 오래된 습관을 자기도 모르게 발현할 뿐,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놀라웠다. 병을 고쳤다기보다는 병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스스로 구한 느낌이었다. 

나는 내 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여전히 고정관념 덩어리인 나를 본다


나는 이러이러하다는 생각이 아직도 너무 많다.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를 규정하며 그 속에서 나는 살고 있고 내 몸은 고정관념에 딱 알맞게 반응을 한다.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잠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직장일로 고민이 많을 때 불면증에 시달렸다. 

원래 잠, 특히 아침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는데, 불면증이 생긴 후로 잠에 대해 더 집착하듯 생각이 많아졌다. 잠은 최소 6시간은 자야 한다, 새벽 6시 대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잠을 적게 자면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안된다, 못 잔 잠은 반드시 자야만 충족된다 등등이었다.


오늘 새벽 5시 40분에 잠이 깼다. 한 다섯 시간 잔 것 같다. 이럴 때는 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를 지배한다. 내가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하니 나는 정말 피곤하다.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커피를 들이부어도 머리가 멍하다. 내 뇌는 최상의 컨디션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오늘 밤엔 정말 잘 자야 한다. 그래야 나는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뻔하고 몸은 여기에 딱 맞게 적절히 반응한다. 하루 종일 의식의 10%는 깨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이런 나를 요즘엔 내가 의식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으흠, 때가 오고 있다. 경험상 나의 왜곡된 의식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때가 바로 변곡점이었다. 충분한 잠, 적당한 잠이란 사슬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 뇌에 다른 명령을 내려 고정관념을 깨는 훈련이 필요하다. 

"충분히 잘 자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지 않아. 그냥 깨면 언제든 맑아지는 게 우리 몸이라고!"  

 

'내 뇌의 주인 되기' 프로젝트를 잠에서 시작한다. 성과는 차후에 보고하겠다.



* 제목 그림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John Hain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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