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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Apr 07. 2021

제가 대통령 되면 '시에스타' 바로 시작합니다

이런 될성부른 마인드 가진 지도자 어디 있나요?

세계에서 젤 부러운 나라를 하나만 짚어보세요


"이미 다 눈치채셨겠지만, 당연히 스페인이지요."

왜냐고 물으신다면, 답을 드려서 다 아시겠지만 '시에스타(siesta)' 란 게 스페인에는 있잖아요.

아주 대놓고 낮잠을 자는 나라라니, 얼마나 멋진지요. 

저는 스페인 국민이 되고 싶어요.

낮잠 자고 싶어서요.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다면, 시에스타를 제도화하여 학교와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부터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년 후에는 전체 사기업과 소매업 등 전 부문에서 시에스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어요. 

그러면 국민들의 행복도는 분명 올라갈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 행복하지 않습니다. 

시에스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대폭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공공영역과 기업의 생산성도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학습능력도 올리겠습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만들어서 지표 관리하겠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국민 행복지수를 경제지표, 교육지표와 함께 관리하겠습니다. 

이것을 매달 국민들께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시기만 한다면......


그때는 몰랐다.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인지.

원래 그냥 주어지면 제 가치를 잘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까 시에스타가 없는 대한민국에 시에스타를 제도화한 환타스틱 한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점심을 먹은 후 책걸상을 다 교실 뒤쪽으로 밀어놓았다. 교실바닥을 가볍게 쓸고 바닥에 학생들이 각자 이부자리를 편다. 그런 후 30분 정도 푹 잔다. 머리를 어디든 대면 바로 잘 수 있는 대단한 수면력을 가진 전 여고생들은 잠을 달게 잤다. 

나는 전교생이 다 같이 낮잠 자는 명문 여고를 졸업했다.


고3 때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서 놀며 공부했다. 주말이라고 별로 할 일도 없고 친구들도 나오니 대부분 학교에 나갔다. 선생님은 없었다. 우리끼리 교실에서 공부를 잠깐 하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틈틈이 낮잠 자기에도 참 좋았다. 다 각자 이불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누울 수 있었다. 

새삼 참 좋은 학교 나왔다는 자부심이 부푼다. 

이런 학교가 대한민국에 있었다니......  

가톨릭계 학교였다. 가톨릭의 본산이 남유럽이어서, 시에스타를 하고 있는 문화를 그대로 가져와 도입한 것 같다. 그때는 시에스타였는지도 몰랐고, 그게 그렇게 좋은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 진가를 알겠다.   


#시에스타(siesta)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이른 오후에 자는 낮잠 또는 낮잠 자는 시간.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아메리카의 낮잠 풍습을 말한다. 한낮에는 무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으므로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저녁까지 일을 하자는 취지이다. 시에스타라는 말은 스페인어이며, 원래는 라틴어의 'hora sexta(여섯 번째 시간)'에서 기원하였다. 풍습에 대한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포르투갈 남부 지방에서 시작되어 에스파냐와 그리스 등의 유럽을 거쳐 멕시코·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 퍼졌다고 한다. 시에스타 시간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후 1~3시 30분, 그리스에서는 오후 2~4시까지 이어진다. 시에스타 중에는 상점들은 물론 관공서도 문을 닫고 낮잠을 즐긴다. 이 때문에 시에스타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게으름이나 끈기 부족의 상징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따라서 에스파냐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시에스타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어 2005년 12월 관공서의 시에스타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의 결과로 시에스타는 생물학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곧, 30분 정도의 짧은 낮잠은 원기를 회복하고 지적·정신적 능력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시에스타는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알고 보니 대를 이어, 아들이 고등학교 때 '제대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와 다른 것은 아주 대놓고 자지 못했다는 것과 아주 양껏 잤다는 것이었다. 

나의 명문 여고에서는 집중적으로 다 같이 잤지만, 아들 학교에서는 대충 알아서 각자 틈틈이 나누어 자야 한다는 거였다.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주 많은 비율이 자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자러 가는 애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선생님들도 굳이 깨우려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상식과 매우 다른 관점을 많이 제시하는 아들은 남들이 보면 경쟁이 매우 치열한 특목고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쟁심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내미가 전하는 학교 분위기는 매우 협력적이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시기 질투가 적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애가 항상 푹 자고 학교생활을 했다. 아들내미 왈, "9시간은 꼭 자줘야 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큼 잘 수 있는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아침 6시에 애들을 깨워서 운동을 시켰고, 밤 12시가 취침시간이었다. 빈틈없이 자도 6시간인데, 어떻게 그렇게 잘 수 있냐고 물어보면 틈틈이 잔다고 했다. 주로 자습시간에 자고 부족하면 수업시간에도 잔단다. 아들뿐만 아니라 많은 애들이 매우 잘 잔다고 했다. 별 일 아니라는 거다. 


숫자에 관해 남다른 감각으로 대충 말하는 법이 없는 아들이기에 분명히 이만큼 잤다고 확신한다. 30분 잤던 나하고는 스케일이 다르다. 낮잠 3시간이라니, 그랜드급이다. 교실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자습실에서는 감독 선생님이 있었을 텐데 눈길을 피했는지 무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3시간을 틈틈이 분배해 넣으려면 나름 고단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부모 입장에서는 소중한 공부시간을 잠으로 장식하고 있는 게 참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떨어져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참, 대단타!" 하며 그냥 웃고 말았다. 




직장인들도 낮잠이 고프다


미국 학자 윌리엄 앤서니(William Anthony)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많은 미국 직장인이 낮잠을 자고 있고 이중 70%는 몰래 낮잠을 잔다. 몰래 낮잠 자는 장소로는 자기 차 뒷좌석이 인기가 좋았고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그래서 이 학자는 국민 모두가 낮잠을 잘 수 있는 '낮잠의 날'을 제정하려고 애쓴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다녔던 직장에서도 점심시간에 여직원 휴게소는 언제든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잠시라도 자고 싶은 욕구로 문을 열면 어디 대충 끼어서라도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일찍 서둘러 가지 않으면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아예 밥 안 먹고 잠만 자는 직원도 상당했다. 잠 고픈 게 배 고픈 것보다 간절한 사람이 많은 거다.  

 

<브레인 룰스>의 저자 존 메디나(John J. Medina, 워싱턴대 의대 교수)는 낮잠이 직원들의 생물학적 요구를 해결하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점심시간이나 짧은 휴식시간 등을 통해 매일 30분쯤 낮잠을 잘 공간을 기업이 제공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 효과는 직원을 배려하는 정도에 정비례해서 나타날 것이다. 지적 능력 때문에 채용된 사람들이 그 능력을 최상으로 유지할 길이 열릴 것이다. 낮잠과 비행사의 업무능력에 관한 연구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낸 미 항공우주국 소속 과학자 마크 로즈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 26분으로 사람들의 업무수행 능력을 34%나 향상할 수 있는 전략이 낮잠 말고 또 있습니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행한 연구에서 26분 동안 낮잠을 자면 비행사의 업무능력이 34%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5분간 낮잠을 자면 인지능력도 34% 높아진다. 그 효과는 6시간 이상 지속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 36대 대통령 린드 베인스 존슨은 오후에 30분 동안 낮잠을 잤다. 업무실 문을 닫고 잠옷을 갈아입은 후 낮잠을 잔 것으로 유명하다.




자고 있지만 뇌는 일한다니까 재워보시죠


우리가 잠을 잘 때도 두뇌는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믿기 힘들 만큼 활동적으로 일한다고 과학자들은 전한다. 다양한 실험에서 매번 입증이 되는 결과이다. 한 가지 실험 결과만 보자.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주고 문제풀이 방법을 알려준다. 더 쉬운 방법이 있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쉬운 방법을 알아낼 수 있도록 통찰력을 촉진하는 방법이 뭘까. 정답은 '재운다'이다. 문제를 설명한 뒤 12시간 후 학생들을 불러 문제를 풀게 하는데, 12시간 중 8시간을 자게 하면 60%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이 실험을 아무리 여러 번 해봐도 늘 잠을 잔 집단이 잠을 자지 않은 집단에 비해 세배 정도 성적이 더 좋았다.

 

수면은 시각적 특성을 구별하는 능력, 운동신경과 연관된 능력, 절차를 배우는 학습유형 등에 영향을 끼친다. 수면이 학습의 동반자라는 것은 명백하다.


존 메디나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잠을 자는 것은 휴식을 위하는 것이지만, 뇌의 입장에서 잠은 외부세계를 차단하고 내면의 인지 세계로 주의를 기울여 학습을 하기 위한 시간이 된다. 두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동적으로 수많은 뉴런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전기 명령을 주고받는다. 사실 두뇌는 깨어 있을 때보다 자는 동안 더 리드미컬하게 활동한다. 그러니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숨 자면서 생각해봅시다!" 하는 게 가장 과학적이라는 거다.

또 오후에 어쩐지 피곤하고 졸리면 그건 사람의 두뇌가 정말로 낮잠을 자고 싶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뇌가 바라는 건 오직 낮잠이다.  


잠을 잘 자면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낮잠도 마찬가지다. 공부 또는 일을 잘하기 위한 방법뿐만 아니라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작은 실천이 낮잠일 수도 있다. 이런 일상이 모이면 국민의 행복지수도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입이 아프도록 말씀드렸지만 시에스타를 실시하면 학생들은 성적을 올릴 것이요, 기업은 생산성을 높일 것이며, 온 국민은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다 증명된 것입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시에스타를 반드시 실시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만 주시면....





* 앞 사진 : Pixabay Gundula Vogel님 이미지 

* 뒤 사진 : Pixabay의 kimsam22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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