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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r 29. 2021

동창이라고 말을 걸어온 사람들이 겁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밴드 좀 하시나요?"

아직도 재즈밴드 만드는 일을 죽기 전에 이뤄야 할 꿈의 버킷리스트로 올려놓고 있는 나는 '밴드'를 음악 밴드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독자님들을 포함한 대부분은 이 밴드를 그 밴드로 생각하지 않을 듯하다. 밴드에서 만나거나 밴드에 사진을 올리거나 하는 이 밴드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우리 때는 국민학교였다) 친구들이 만나게 되고, 번개모임을 갖고 하는 등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너는 옛날 그대로다" "하나도 안 늙었다" 등등의 뻔한 얘기들로 양념을 쳤을 게 분명하다.




밴드 붐이 일었을 때는 누구든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어떤 끈이라도 있으면 밴드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밴드로 묶이고 싶어 했다. 패밀리 밴드는 기본이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밴드를 만들어서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대부분 동기들의 모임이었고 수십 년간 연락 한 번 안 하던 애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들은 많지 않은 40여 명의 학과 동기들이라 20여 년 만에 봐도 나의 인지능력을 테스트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소식 전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었다. "잘 있었냐" "반갑다" "뭐하고 사냐" 등등 통상적인 몇 마디가 오가면 시들해졌다. 정말 소식을 알고 싶었던 친구는 거기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친구의 소식을 알게 된들 특별히 달라질 건 없긴 했다. 몇몇이 어디 놀러 간 사진, 등산 간 일 등을 밴드에 종종 올렸다. 명절 전날 흩어져 있던 동기들이 한번 모이는 시간을 가졌고 다시 그 사진이 밴드에 올라왔다. 나는 사진으로만 친구들을 봤다. 20대 얼굴과 매칭이 도저히 안 되는 얼굴로 등장해서 놀라게 하는 몇몇을 제외하면 나는 걔들을 알아봤다. 남성 동기의 경우 머리숱이 상당 부분 놀라움을 유발했다.


고등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동기 밴드는 매우 폭넓은 기억력을 요구했다. 같은 반 동기가 아니라 같은 학교 동기들이라 대상이 넓어지고 점점 더 오래전 인물들과 사건들을 기억에서 소환해야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주 가까웠던 친구 몇몇을 제외하면 기억나는 인물들이 거의 없었다. "안녕, 00아, 잘 있었어? 나는 00이야." 하고 말 걸어오는 동기들이 있었다. "아, 그래. 안녕?"정도로 대답했지만 사실 기억이 안 났다. 도저히 모르겠다. 


클났다! 쟤가 누군지 정말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거지?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게 겁이 났다. 


나의 기억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한 듯 느껴졌다. 다른 애들은 서로 알은체하고 인사하고 그러는데 왜 나한테는 기억이 사라진 거지? 내가 특별히 머리가 나쁜 축은 아닌데.... 무슨 일이야? 왜 나만 모르는 거야? 왜???




"연탄가스 때문이야"


이렇게 변명과 농을 섞어가며 나의 기억력 부재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곤 했다.

80년대는 연탄이 대세였다. 석유와 가스로 난방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요리는 석유곤로를  많이 사용했다. 연탄가스의 중독을 약간 심하게 또 경미하게 몇 차례 경험했다. 당시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그렇게 희귀한 일이 아닐 정도로 간간이 들려오는 뉴스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는데 한 번은 친구와 같이 뭔가를 하고 놀다가(이것도 기억이 잘 안 난다. ㅠ) 같이 내 방에서 잔 날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나보다 친구 증상이 심각해서 그 친구 챙기느라 나는 어땠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친구가 마당에 앉아서 일어나지를 못한 것,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동치미를 먹였던 일, "에고, 얘가 왜 이래?" 하고 주인아주머니가 놀랐던 말 등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여러 가지 민간처방이 이뤄지고 나서야 그 친구는 제정신을 찾았다. 병원 같은 데는 가지 않았다. 


경미하지만 지속적인 연탄가스 중독은 3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아버지 사업의 파산으로 우리 6인 가족은 사실상 단칸방인 문칸방 월세 살이를 했다. 미닫이문 하나로 연결되어 문을 열어놓으면 단칸방이고 닫으면 두 칸짜리 방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이전에는 진짜 한 칸짜리 방에서 살았고, 나름 업그레이드된 집이었기 때문이다. 현관문 격인 부엌문을 열면 부엌 안에 방문이 있고 그곳에서 여섯이 자면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 할 정도로 좁았다. 자다가 몸을 뒤척여 옆으로 눕게 되면 똑바로 누울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대학 다닐 때였는데 한 칸짜리, 두 칸짜리 모두 부뚜막이 있는 작은 부엌에서 항상 연탄가스 냄새가 났다.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든 식사 준비를 했다. 소량씩 지속적으로 연탄가스를 흡입했다.


이러한 성장환경과 기억력 문제를 연결시켜 봄직하다. 고등학교 때의 연탄가스 중독과 대학 때의 지속적인 연탄가스 누출로 인해 나의 뇌세포가 상당히 피해를 입어 기억력에 지대한 영향을 입었다. 이로 인해 기억력 손실 또는 기억 지연 등 기억 소환에 문제가 생겼음에 틀림이 없다는 진단을 내 나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거니까. ㅠㅠ 




"머리를 많이 돌리는 인간이라 과부하되지 않도록 포맷했나" 


공부 좀 한다고 하는 아들내미가 시험이 끝난 후 하는 말이 있었다. 

"포맷을 꼭 해줘야 해요."

 

시험공부했던 것들은 포맷을 해서 삭제를 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새로운 걸 입력하기 쉽다는 얘기다. 약간 좀 웃기는 말로 웃어보자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말이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었기에 참 믿음이 갔다. 


그래서 아들의 말로 논리를 삼아보면 나의 뇌는 지속적인 포맷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입력할 게 너무 많아서 그렇지 않으면 과부하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뇌가 알아서 다 준비하고 있는 거였다. 

'나의 뇌야.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워킹맘은 어쩔 수 없이 멀티태스킹을 할 수밖에 없다. 직장일과 아이 키우는 일을 해야 하는 데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여럿 벌였다. 무엇을 배우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운동에다가 각종 취미강좌 배우는 걸 틈틈이 하다가, 결국 배움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연달아하지는 못했지만, 일하면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또 박사과정까지 달렸다. 벅찬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은 없었다. 매우 자발적인 고생은 인생을 힘들게 했을 뿐 아니라 뇌를 지속적으로 고달프게 했던 걸까. 기억력의 소실 문제는 물안개처럼 슬며시 나를 잠입해 들어갔을 거라고 진단해본다. 뇌 용량은 한계가 있고, 입력이 많아지니 이전 것들을 포맷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겠지? 



  

"다 잊어버리고 마는 걸, 뭘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냐?"


나는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시간이 넉넉해서 책상 위에 10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기분 따라 읽는다. 책 읽는 방식도 나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들의 방식을 차용해봤다. 


아들의 공부 방식은 내가 보기에 매우 독특했다. 공부를 할 때(정확히는 시험 준비를 할 때) 도장깨기 하듯이 한 과목씩 독파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을 조금씩 준비해서 목표로 한 날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방법이었다. 나는 시험 때마다 어떤 과목은 좀 했는데 어떤 과목은 손도 못 대서 "00과목은 포기했어"하던 일이 제법 있었는데, 이런 낭패를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을 칠 일이 없는 나는 독서에 응용하고 있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 방법에서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방법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독서하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었으니 책을 재미나게 읽고 나서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책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이건 물 위에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이런 젠장!


'이렇게 다독한들 무엇하랴. 구름처럼 흩어질 것을.'

가끔씩 매우 이런 심각한 회의가 몰려온다. 그러다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닐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나의 뇌 탐구생활은 이런 동기도 크게 작용했다. 어딘가 있을지 모를, 아니 있음에 틀림없는 '기억 찾아 삼만리'를 해보자는 심산인 것이다. 여기에 나를 매우 독려하는 결과도 찾아냈다.




도서관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1980년 미국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가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일반인, 심리학과 졸업생 169명을 대상으로 기억에 대한 설명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심리학과 졸업생 84%, 일반인 69%는 도서관 모델을 선택했다. 의료인, 심리학자, 사회사업 종사자 6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3분의 2 가까이가 마찬가지로 답했다.


1. 우리가 습득한 모든 것은 우리 마음에 영원히 저장되어 있다. 물론 아주 세부적인 것들은 가끔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최면과 같은 특별한 방법을 쓰면 이런 세부사항들도 기억될 수 있다.(도서관 모델-어떤 기억이든 서고에 저장된다.)


2. 우리가 습득하는 것들 중 어떤 것들은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세부적인 기억들은 최면이나 다른 특수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결코 기억되지 못한다.  


뇌에 관한 과학적 탐구를 많이 해온 의료인이나 심리학자 등도 뇌의 저장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기억은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입력은 충분히 했는데, 출력이 안 되는 이 느낌을 바꾸고 싶다. 


기억들아, 어디 있니? 



* 다음 편에는 기억력 찾기 탐구생활을 이어갑니다.



#맨 위 이미지 : dadawork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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