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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Apr 29. 2021

마마보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요?

아들에게 결정적인 엄마 유전자

딸만 꼭 둘을 낳고 싶었다. 아들 말고


'제가요, 꼭요, 딸만 둘 낳으렵니다. 두고 보세요.'

이런 황당한 고집을 부린 것은 손자를 원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첫아이를 갖고 나서 '아들이 좋고 어쩌고' 하시는 시어머니 말씀에 나는 겉으로 아무 반응을 안보였고, 속으로만 반항을 했다. 시어머니는 내 아이를 키워줄 분이었기에 일단 무조건 감사를 보이는 게 현명했다.    

그리고 딸만 낳겠다고 다짐한다. 


아들 선호현상에 대한 아주 강한 반발심이 있었던 나는 여성인 시어머니의 아들 선호에 아주 쐐기를 박고 싶었다. 아들 선호를 충족시켜 주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든 그걸 깨부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딸만 낳고 싶었다. 


그런데 생명의 문제는 역시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첫아이를 낳아보니 아들이었다. 아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약간 실망했다. 딸을 낳았어야 하는데....

딱 한 가지 다행인 건 아들을 낳은 뒤로는 아들이 좋네 어떠네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무언의 반항심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없어졌다.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주위에서 딸 낳기 어려울 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어때서 딸을 낳기 어렵게 생겼단 말이야!' 

기가 막혔지만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머릿속에 아주 잔뜩 딸에 대한 판타지를 품고 있었는데, 특히 내 딸은 오목조목하니 공주급으로 예쁜 딸일 거라는 생각이 주를 이뤘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감동이 끊이지 않을 것 같은 딸을 내가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첫아이 때 입덧하면 내로라할 정도로 심했던 나는 둘째를 임신한 뒤 입덧계의 왕좌에 오를 정도로 입덧이 더 심해졌다. 뱃속에 딸이 있으면 더 까탈스럽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1천% 의 예민도로 느끼며 하루에도 몇 번씩 토했다.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없겠는데, 거리의 그 많은 식당에서 음식 냄새를 풍겼고, 집에 있으면 온통 아파트 곳곳에서 밥을 해 먹으니 견디기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음식들아, 사라져 버려!'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엄마가 고생하니 뱃속의 아이는 딸임에 틀림없었다.


또 두어 가지 인생 선배들이 전하는 태중 아기의 선별법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배가 불러오면서 몸이 무거워지는데, 딸의 경우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들 했다. 그런 것 같았다. 아주 천근만근이다. 

부른 배의 모양이 넓고 둥그스름하면 아들, 뾰족한 듯 볼록하면 딸이란다. 이건 잘 모르겠다. 

태동도 다르단다. 뱃속에 있던 아들이 너무 격렬해서 남보기 민망할 정도로 배가 여기저기 솟아오르곤 했는데 둘째는 요가를 하듯이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보건대 딸이라는 신호가 더 많아 딸에 대한 희망을 좀 더 품게 했다. 

나도 딸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두 아이 모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산부인과에 아이의 성별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아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둘째의 분만은 진통 시간은 첫아이에 비해 훨씬 짧았는데 통증은 더 크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픈 것과 알고 아픈 것의 차이인 것 같았다. 얼마나 아플지 알고 있으니 더 겁나고 통증 강도가 더 크게 느껴졌다.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나 죽는구나 싶은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딸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요? 분만의 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쁨이 몰려왔다. 


친정어머니는 신생아실의 딸을 보고 나서, "너는 딸을 못 낳을 줄 알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기특해하신다. 

'엄마! 제가요, 그런 사람입니다. 엄마 딸이 못하는 게 없어요. 딸까지 낳았어요.' 

나의 능력치에 한껏 고무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마마보이


아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딸이 좋다는 것이 편견임을 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랜 기간 아들을 선호해왔기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딸 선호가 일정기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이 조차도 편협한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딸이든 아들이든 소중한 존재이기에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도록 돕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된다.


우리의 소중한 존재들은 성장해나가면서 부모를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갖도록 지도한다. 예전에는 눈길 조차 돌리지 않았던 하나의 세계를 영접하도록 만드는 데 그중 하나가 유전자의 세계였다. 우리가 만들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100% 우리 책임이었지만 유전자 조합에 따라 공과 책임을 나눌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목구비에서, 신체 각 부분에서, 행동에서 각가지 양상을 보이는 것들은 성장해 나가면서 모습이나 행동, 성격 모두 윤곽이 분명해져 책임 소재를 명확케 하도록 만든다.


어느 날 휴일 낮잠 시간이었다. 아들과 딸, 남편, 이렇게 셋이 똑같이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다른 쪽 다리를 그 위에 걸치고 자고 있다. 셋이 똑같은 포즈이다. 

'잠자는 모습까지 유전자로 이어지는 건가?'

이건 신기한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딸의 눈은 엄마를 닮았지만 입과 전체적인 얼굴 실루엣은 아빠를 닮았다. 다리가 튼튼하고 달리기를 잘하는 건 친탁이 분명했다. 아들은 눈은 아빠를 닮지만 다른 건 엄마를 많이 닮았다. 다리가 가늘고 달리기만 하면 꼴찌는 맡아놓은 몸치이다. 외탁이다. 평발은 외할아버지 발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략적으로 보면 딸은 아빠를 더 많이, 아들은 엄마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아빠를 닮은 딸과 엄마를 닮은 아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고, 아빠 닮은 딸이 잘 산다는 말도 많이 한다. 내 경우만 봐도 압도적으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외가 쪽의 무엇이 나한테 왔는지 찾아내기가 참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가 커가면서 외모뿐 아니라 학습과 관심 영역에서 차이를 보이자 더욱 흥미로웠다. 이러던 차에 호주에서 발표되었다는 연구결과를 신문기사로 읽게 되었다. X 염색체 유전자에 대한 것이었다. 지능과 관련된 모든 것은 X 유전자에 담겨 있단다. 아들(XY)은 오직 엄마의 지능을 물려받고, 딸(XX)은 엄마와 아빠의 것을 골고루 받는다는 것이었다.      




염색체는 DNA가 실타래 모양으로 얽힌 것으로 핵 속에 들어있다. 이 속에 한 사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 유전물질이 담겨있다. 사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염색체 46개가 필요하고 23개는 엄마가, 23개는 아빠가 준다. 이중 2개가 성염색체이고, 그중 하나는 반드시 X염색체이다. 딸은 XX, 아들은 XY인 것은 우리 모두 학교서 배워서 다 알고 있다.   


 X염색체는 1,500개 정도의 유전자가 있고 태아의 구조를 만들 때 필요한 중대한 일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Y염색체는 매우 작아 100개가 채 안 되는 유전자가 있고, 백만 년에 다섯 개씩 유전자를 버려왔다고 한다. 유전자가 줄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X 염색체가 하나뿐이고 딸은 두 개다. 딸은 엄마 뱃속에서 세포를 만들 때 엄마의 X유전자, 아빠의 X유전자를 선택한다. 둘 중 하나를 유전자 맘대로 골라쓸 수 있다.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X 염색체를 엄마로부터 받은 것만 쓸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엄마 것만 그대로 써야 한다. 


그래서 미국 뇌과학자 존 메디나는 이렇게 말한다.

"X염색체에 관한 한 모든 남자는 말 그대로 마마보이일 수밖에 없다"




아들의 성적표는 모두 엄마 책임이라고?


이런 유전적 흐름을 알게 되면 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 놈이 뇌를 만들며 아주 중요한 것들을 모두 나에게서 받았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유전적으로 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 X 염색체를 엄마한테서만 받은 아들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엄마의 유전자를 일방적으로 받아서 쓰는 것이다. 특히 두뇌와 관련해, 인지능력과 관련해서 말이다. 


우리는 X염색체에 담긴 1,500개 유전자 중 대다수의 기능을 알고 있다. 자, 놀라운 것은 그다음 얘기다. 그중 다수가 두뇌 기능에 관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관장한다. 2005년 인간 게놈이 정리되었고, X염색체 유전자 중 상당수가 두뇌 형성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 중 일부는 언어 기능과 사회적 행동에서부터 여러 가지 지능 유형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인지능력에 관여할지 모른다. 학자들은 그런 X염색체를 인지의 '핫 스폿 Hot spot'이라고 부른다.


<브레인 룰스>의 저자 메디나 교수는 내가 그동안 열심히 관찰했던, 매우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는 두뇌의 유전에 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과학적으로 정리해준다.  


'인지의 핫 스폿'은 쉽게 말게 말하면 공부하는 지능과 관련된 것들이다. 인지란 지식을 알아내고 습득하는 능력이고 이 중요한 핫 스폿을 엄마는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줄 수 있지만, 아들은 엄마에게만 그것을 받을 수 있다. 아빠는 딸에게만 줄 수 있고, 얼마큼 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공부와 관련된 것에는 엄마의 유전적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딸은 아빠의 X염색체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들의 두뇌는 온전히 마마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2세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남녀의 결합은 잘생긴 남성과 똑똑한 여성이라고 했다. 그러면 인물 좋고 머리 좋은 2세를 만들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유전적 조합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이런 류의 다양한 언급들을 예의 주시했다. 

 

2005년에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지만, X 염색체 연구는 그 이전부터 다양하게 언급되었고 두뇌의 지능과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을 이미 여러 매체에서 접했다.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 맞는지 유심히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댁 4자매와 4형제의 아들 분석


나는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그러니까 아들은 엄마의 두뇌 유전자만 받고, 딸은 엄마와 아빠의 두뇌 유전자를 섞어서 받는다는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들들을 주목했다. 딸은 엄마, 아빠 것을 골고루 선택했다니 조합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분석하기 좋은 케이스가 남편의 친가와 외가였다. 남편의 친가는 아들이 많고 외가는 딸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4녀 집안이었고, 시아버지는 4남 집안이었다. 


시어머니와 자매들은 모두 아들을 둘씩 두었다. 

홍씨 집안 4 자매는 보통 이상으로 알뜰하고 똑 부러지며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남자 만나든 집안 잘 꾸려갈 여성들이었다. 거기다가 두뇌회전도 빨랐다.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지만 어디 가도 뒤지지 않는 스마트함이 돋보였다. 그녀들의 아들들은 모두 나쁘지 않은 대학을 졸업했고 괜찮은 직장을 가졌다. 안정적인 중산층이 되었다. 자매들의 딸들은 상대적으로 편차가 컸다. 아들과 비교하면 전체적인 성취도가 낮았다.


김씨 집안 4형제는 평범하고 성실한 남성들이었다. 가정을 이뤄 다들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그 자식들이 한 집안사람 같지 않게 다 제각각이었다. 아들뿐 아니라 자식들 모두 학벌, 직업 등 사회적 성취도에서 유사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외모는 다 비교적 반듯했다. 4형제는 모두 아내보다 더 반듯한 외모를 지녔다.


이외에도 분석이 가능할 법한 다양한 사례분석을 통해 엄마를 보면 아들이 어떨지, 아들을 보면 엄마가 어떨지 유추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거의 맞아떨어졌다. 똑똑한 엄마는 좋은 성적표를 가지고 오는 아들을 두었다. 딸은 아빠에 따라 성적표가 더 좋아질 수도,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X유전자 관련 연구내용과 다양한 탐색을 거친 나는 남편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당신 머리가 좋은지, 내 머리가 좋은지' 배틀을 붙어보자는 것이다. 캠퍼스 커플로 같은 과를 졸업하고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던 우리 부부는 사회적 성취도만을 보고 서로의 두뇌 유전자 질을 판별하기 어려웠다. 배틀의 방법으로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잣대가 있으니 아들과 딸의 성적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오직 나의 X 염색체만을 받은 아들의 성적표와 나의 것과 남편의 X 염색체를 골고루 받은 딸의 성적표를 보면 알 수 있는 거였다. 심플하고 확실한 방법이지 않나? ㅋ


결과는요? 비밀에 부치겠다. 아이들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붙이거나 비교하면서 키우지 않아서 아이들은 부모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혹여나 알더라도 그냥 재미로 한 거니, 이해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너무 궁금한 극소수의 독자들을 위해서 아주 살짝 귀띔을 하자면, 원래 싸움은 센 놈이 붙자고 덤비는 거다.  

          


# 제목 이미지 : Pixabay의 Gerd Altmann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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