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결심

각자의 몫



오래전, 관계가 불편하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연인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왔던 남자아이의 인스타 팔로우를 차단했다는 딸. 그런데 최근 그 남자아이가 짜증 난다며 입이 댓 발 나왔습니다. 딸이 그 친구의 인스타를 차단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친구도 사귀는 사이도 아닌 관계가 애매하기도 했지만, 한 번은 딸이 또 한 번은 그 남자아이가 서로 번갈아가며 대시를 거절한 뒤에 그 남자아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자친구가 생긴 것까지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상대 여자친구가 염탐하듯 딸의 인스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기도 했던 남자아이의 인스타를 차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그리고 이 녀석의 여자친구, 그동안 계속해서 딸이 인스타에 올린 스토리니 릴스를 봤다는군요. 그것도 모자라 남자아이는 올해 초 카톡으로 새해 인사까지 했다고 합니다. 인스타를 차단하기 전에 딸은 남자아이에게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남자아이도 어느 정도 납득했다고 생각한 것은 딸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영 불편하다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친구도 아닌, 그렇다고 사귈뻔하다가 흐지부지 틀어져버린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건 자기 기준에서는 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딸.


"네가 그 친구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하는 이유를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 네 여자친구가 내 인스타에 계속 들어오는 게 불편하다고 말이야. 분명 그 여자친구도 자기 남자 친구가 뭔가 불안하니까 네 인스타를 계속 들여다보는 걸 거 아니야."


MBTI 유형 중에 N과 T를 모두 가진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제안해 봅니다.


"안돼!" 딸은 단칼에 잘라 대답합니다.

"그렇게 했다가 분명 그 녀석 자기 여친한테 가서 이러쿵저러쿵 확인을 하며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하려 들 거란 말이지. 걔 완전 T에 제 딴에 어른스럽다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완전 초딩 수준으로 굴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 여자친구 입장만 난처해질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서 내 인스타에 들어오는 거라면 더 불안해지지 않을까? 내 남자친구가 나한테 그렇게 한데도 나도 더 불안해질 것 같아. 이미 나를 경계할 대로 경계하고 있을 텐데 그 일로 둘이 싸우게 되면 괜히 나만 더 억울하게 미움 사게 되잖아. 난 그 둘 사이에 진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F와 P 성향을 갖고 있는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정말 그렇겠구나. 그 나이라면. 아니 그 나이가 아니라도 자기 애인의 입에서 다른 여자 사람 친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 나온다면 저절로 아아 그래, 그런 거였어. 역시 내가 괜히 불안해하는 거였어. 그 여자 사람 친구가 불편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며 납득 할 여자는 없을 테니까. 뭐지 이거? 하는 불안감은 제대로 닦지 않은 똥 마냥 불쾌하게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보다 훨씬 어린 딸이 오히려 나보다 더 현명하구나.'


나는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듭니다. 딸은 자라는 동안 나에게 얼마나 답답함을 느꼈을까요? 그동안 나는 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이렇게 한 번 해봐.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다면 그 말 안에 딸이 어떤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그저 딸에게 제때 먹는 따뜻한 밥 한 끼 같은 존재만 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 멋대로 너무 많은 것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딸은 원하지 않은 때에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되면서 목이 메고, 속이 더부룩해지고 결국 머리까지 아파져 마음까지 막혀버렸습니다.


그동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폭포수처럼, 아니 해일처럼 쏟아냈던 말들을 떠올려봅니다. 아이는 엄마가 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어머, 정말 그렇네. 남자친구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고 불안함이 없어지지는 않겠다. 오히려 더 불안해지겠지. 네 말이 맞아. 와~ 너는 어쩜 상대 여자애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가 있다니? 역시 F라 그런가. 너 진짜 섬세하구나. 엄마가 배우게 되네."


나는 딸아이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대견한 눈빛으로 딸아이의 눈을 쳐다봅니다. 딸은 이토록이나 어른스럽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악하는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왜 다른 사람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한 걸까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기 앞서 내 생각을 정립하고 알리느라 항상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고, 내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큰둥하는 사람들은 내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이 일어난 이유와 해결방안을 정리할 수 있어야 내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심리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금쪽이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이혼숙려캠프니 김창옥 씨 토크 콘서트 등등 어찌 되었든 프로그램 안에 아주 잠깐이라도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이야기를 모든 사람, 비슷한 경우의 환경에 적용해 생각할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이라는 존재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결여를 느끼는 사람의 충동적인 집착이라던지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기제는 듣고 있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당장에 나도 그러하니까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웠던 가시는 결국 누군가를 찌르게 됩니다. 그런데 속이 단단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만져지는 살갗이 아주 보드랍고 포근합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첫걸음으로 들어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듣다 보면 멈칫하거나 울컥하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하예질 때도 있지만 불안해하지 말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습니다. 끝까지 들어보고 무슨 말을 건네줘야 할지. 어느 선까지 손을 내밀어야 할지 눈치를 살핍니다. 그런 나 자신이 아직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앞으로 달려 나갈 때도 있고 눈물이 핑 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동안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원망스러운 저주들을 속으로 퍼붓기도 합니다만, 학교와 회사라는 사회에서 한껏 가시로 무장한 딸과 남편에게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 박자 때로는 한 나절 호흡을 고르다가 다시 앞을 응시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뭔지 아세요? 내가 단단해졌다고 그들이 가시를 거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가시를 거둔 건 거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 있는 무언가가 그들 힘으로 스스로 무뎌지고 재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로 인해 감흥을 받고 깨달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변화로 움직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들어주는 첫걸음을 떼었다고 자만하면 안 되겠습니다. 나로 인해 변하는 건 없으니까요. 나도 다만 올바른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나는 그 움직임의 첫걸음을 뗀 것뿐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그나저나 나는 내 딸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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