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비정상적인 사람들, 그렇지만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의 정보를 주고 왔습니다. 그는 내 머릿속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아파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들과 붙잡지 못하는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아픈 시절은 지금도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요, 현재 속에서 나는 많이 아파하고 있어요. 아이로 인해, 남편으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죽은 나의 강아지와 잃어버린 나의 유년과 행복을 붙잡지 못하고 놓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현재로 인해 나는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아프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파서 눈물을 흘린 것보다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이 더 아팠습니다. 나를 정말 아프게 한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상실.
그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결국 다 지나간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시간들을 잡을 수 있을까? 지나간 일은 아파도 지나간 것입니다. 내가 애써 치유하려들지 않아도 그것들은 이미 시간의 무게에 덮여 저절로 아물었습니다. 흔적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아프지는 않습니다. 나는 다만 그 흔적을 간혹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떠올리는 일만 하면 됩니다. 떠올리는 순간 다시금 마음이 아파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현재를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나의 현재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힘이 듭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지금입니다. 결국엔. 내가 어쩌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입니다.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고, 뻔히 보면서도 잃을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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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책 한 권을 그대로 찢을 뻔했습니다. 일하다가 말고, 짬을 내어 읽었던 책이었는데 순간 감정이 욱하고 올라오면서 책 한 권을 완전히 두 쪽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 작가의 소설은 사실 별로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맨 앞장 한 두 페이지를 읽다가 아아, 이건 아니잖아 하면서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작가가 이런저런 문학상을 차례로 휩쓰는 모습을 보며 어떤 치기가 생겨 도대체 뭘 얼마나 썼기에 내가 그동안에 존경해 마지않던 작가는 타지 못한 상을 이 사람이 타갈까 싶어 읽어보자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결말을 3분의 1 정도 남긴 상황에서 나는 그만 책을 찢어 버릴 뻔했습니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굳이? 굳이? 이런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상처와 치유를 위한 글이라고? 그러기 위해 정상성을 벗어난 사람들의 의식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치유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이 시대에서 과연 정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람들마저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작가의 글이 도대체 왜 때문에, 청소년 필독서에까지 꼽혀야 하는지,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가 따로 없구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치유를 꼭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것인지. 자기 안으로 침잠해 스스로가 가진 두려움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라지만, 그 탐색의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평온함과 안전함에 대한 의식은 과연 이 글의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읽는 자도 쓰는 자도 하나도 안전하지 않은 글을 두고 왜 이 사회는, 아니 문학계는 열광을 하는지, 그 어떤 구원도 희망도 없는 글에서. 왜 이 세계는 열광하는 것인지. 고작 젖가슴 하나에서만 저 자신을 위한 위안을 얻고 머릿속에는 정신병을 유발하는 수많은 망상을 가진 주인공에게서.
그보다 더한 글을 나는 숱하게 많이 읽었습니다. 더러는 불쾌했고 더러는 그 끝에 희망이라는 빛이 희미하게나마 비추는 글들이었지만, 대부분은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글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책을 찢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 불쾌한 글을 나는 끝까지 읽을 것입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의 책을 더는 손에 드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이 책도 어쩌면 사라져 버릴지도요. 이런 사라짐이라면, 그다지 슬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속이 시원하네요.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것보다 더 큰 치유가 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비정상 투성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