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조림

어른이의 걸음마

Sonicbrat의 Window-framed Clouds 소리에 몸에서 빠져나갔던 피가 다시 돕니다. 어디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전 내 쉴 틈 없이 드나든 손님들 치레를 마치고 한숨 돌릴 겸 잠시 앉은 사이 깊고 좁은 웜홀 속으로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곳에서 표류를 마치고 다시 본체로 돌아온 그런 느낌입니다.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리며 손을 움직여보지만 체온은 아직 차갑습니다.

한 주 내내 세상은 정치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인터넷 가상공간도, 현실의 체감공간도 긴장감과 불안감, 걱정, 출처를 알 수 없는 확신들로 어지러운 에너지가 가득했습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매장은 한산했습니다. 모든 소상공인들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부부네 돈가스 집은 한산했습니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많은 감정들을 안고. 하고 물어봐봤자 대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부도 체념하고 하루치의 몫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나갔습니다.


한산한 한 주 동안, 감정의 퇴적층 맨 위층에서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칼춤을 추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멍을 때렸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녀석을 만났을 때는 독서고 글쓰기고 모두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요. 몇 번을 책을 들었다가 놓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그대로 닫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들린 듯 치맛자락 휘날리며 칼춤 추던 그 녀석이 무슨 이유에선지 일순간에 조용해졌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니, 더는 그 녀석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사실은 너무 지쳐 요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심하고 담백한 생선조림을 하자. 우리나라의 칼칼하고 매운 그런 생선조림 말고 일본의 심심하고 담백한 그것을 만들어보자. 나는 뭐든 밥과 어울리는 음식을 좋아하니까, 한 술 가득 뜬 흰쌀밥에 어울릴만한 맑은 생선조림과 장아찌무침. 삼치를 사다가 물에 깨끗이 씻고 팔팔 끓인 채수에 한 번 데쳐 건진 다음 새로 알게 된 일본의 우스구치 간장을 이용해 삼치조림을 만들어봤습니다. 간장을 조금만 썼을 뿐인데도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삼치조림이 완성되었네요. 윤기 좌르르 나는 흰쌀밥에 곁들여 먹으며 상품화하기 위해 더 개선해야 할 점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숭덩 또 잘려나가지만 지금은 이렇게 잘려나간 시간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사건과 감정 사이에는 신념이나 고정관념, 잘못 학습된 경험이 가로 놓여 있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수많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다행인 일이지만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분명 그 사이에 놓인 신념, 관념, 경험 중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면 감정을 달래 치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세 가지 이슈 중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파헤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반드시 그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듣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혼자가 되자 그의 말이 망치가 되어 내 뒤통수를 세게, 그것도 아주 세게 때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토란이와 산책하다가 그녀가 쓴 말을 읽어보았습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아주 똑똑하고 합리적인 작가인데, 확신에 따라 행동할 힘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느냐는 독자의 물음에 믿음과 소망의 차이에 대해 먼저 설명합니다.


확신. 확실한 믿음.
‘믿음’은 결과에 대한 감사이지 결과되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바라는 ‘소망’과는 다르다.
믿음과 소망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믿음은 성경에 나온 말대로 결과에 대한 실체이며 현실인 반면, 소망은 미래이며 추상이자 비현실이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야망이나 소망이나 소원하는 것을 뛰어넘은 차원에서 실체화된 결과에 내 시선을 꽂아두고 오늘, 지금을 살아가는 행위를 통해 ‘믿음’의 밀도가 촘촘한 ‘확신’이 되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 '지담' 님의 연재글 [감정의 반전-나를 임상실험하다] 가운데 23화


그녀의 말이 다시 또 한 번 뒤통수를 세게 때립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읽은 수많은 학자들의 사상이 반영된 바- 확신이라는 단어 안에는 이미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들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확신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미래이기에, 내가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그 결과에 다다르기 위해 현재를 착실하고 다소 지루하고 고되더라도 이겨내며 반복하는 일밖에는 할 게 없습니다. 확신하는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 밖에는요. 그러기 위해서는 확신에 이르게 된 나의 감각을 믿고, 그 감각을 방해하는 요소들, 가령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믿지 않고 냉철한 정신으로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일어날 때,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계획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처음의 확신대로 내 몸을 움. 직.이라고 합니다. 기계적으로요. 이 말은 텔레비전에서 아줌마 같은 푸근한 입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김창옥 씨도 했던 이야기 같네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지금 주어진 삶을 계속 착실하게 살아 나가라고요. 어쨌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지금의 삶을 나태하게 산다면, 아마 그 확신한 미래는 내게 오지 않겠지요. 확신은 내가 믿는 바에 대한 미래지 정해진 운명은 아니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전부터 내 의식에 켜켜이 쌓인 관념이나 의지를 버리거나 수정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가 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어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그와 그녀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타이밍이 참 신기하지요?


이런 메시지가 연달아서 내게 온 이유가 뭘까. 골똘히 생각하며 산책을 마칩니다. 지난 한 주 새롭게 칼춤바람을 일으킨 감정들을 생각하며. 감정이 상한 일이 있으면 내 감정부터 치료해 주어야 한다고 요즘 세상은 가르칩니다. 어떤 학원 선생님은 유튜브 영상으로 학원생들에게 말합니다. 내 감정이 다쳤는데 내 감정 먼저 치료할 생각도 없이 나를 다치게 한 상대방을 향해 쌍심지를 켠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라고요. 마음에 불이 나고 피를 흘리는데 그 불 끄고 피 멎게 할 생각 없이 다른 곳으로 화를 돌린다면 그 사이에 내가 다 타버리고 피가 다 빠져나가 버릴 거라고요. 내 마음의 불부터 끄고, 그리고 한 박자 쉬었다가 세상을 바라보면 방법이 보인다고 합니다.


칼춤바람을 일으킨 감정 속에 푹 빠져 있다가 그 감정들을 외면했습니다. 외면하는 사이 생선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윤기가 나는 밥도 지어 한 숟갈 크게 떠 그 위에 맛깔스럽게 갈색 빛 간장 코팅된 생선조림을 올리고 입 안 가득 넣습니다. 오물오물 씹고, 잘 익은 무도 숟가락으로 뭉텅 잘라서 물컹물컹 혀로 부숴먹고 고개를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의 삶을 착실하게 살아나가라.

그러다 보면 힘이 조금 붙고, 길이 조금 보이고, 확신이 조금 생기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한 발짝을 뗄 수 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의 걸음마는 평생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생선조림 걸음마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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