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삶 죽음 고독 그리고 나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라건대 고독하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독이 무얼까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내 두 발로 동굴 속에 들어가길 열렬하게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이유가 이번에는 명확히 붙어 있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물어보기도 전에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주 들여다보는 브런치 북의 한 작가님이 고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독과 동행하라고, 그 안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투쟁하며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어떤 작가는 여러 명사들의 말을 인용하며 고독하지 않고는 비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고독하고 사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글을 읽으니, 한편으로는 크게 공감이 가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고독이 수단이 되는 것 같아, 고독에게 미안해집니다. 나에게 고독은 그저, 고독이었으니까요. 나에게 고독은 위안이고 친구고 따뜻한 것입니다. 마치 회색빛의 낮은 하늘이 딱 품고 싶은 면적만큼의 땅을 품듯, 고독은 내 마음 중에 깊이 침잠되어 있는 그 면적만큼을 품어주는 유일한 친구입니다. 고독이 그리운 나날입니다.

그가 내게 해 준 제안을 착실하게 지키고 싶어 오랜만에 서점엘 갔습니다. 발들이길 망설이고 있었는데, 서고 사이사이로 말소리가 들립니다. 나지막하고 안심이 되는. 어떤 서고는 내가 지나가니 말소리가 뚝 끊기면서 침묵합니다. 어린이 서고에서는 주말 낮 놀이터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주방 기구가 달그락 거리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요리 서고를 지나 사유하는 자들이 낮은 소리로 기도문을 외는 서고로 향합니다. 장 그리니에가 두 팔을 벌려 나를 반깁니다.


「오랜만이야.」


「미안해요.」


「괜찮아, 그런 건. 언젠가 자네를 다시 볼 줄 알았거든.」

「고마워요. 당신을 만나러 오는 길을 잊지 않도록 아주 먼 옛날로부터 나를 불러주어서.」

그를 다시 만나 나는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그를 잊고 지내온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나의 정신은 20년 전의 섬에 가 있습니다.


「고독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그동안 자네가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일 거야. 하지만 나도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네. 어쩌면 자네의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분명 아닐 거네. 자네가 자네이듯이 고독도 그렇다네. 내가 발견한 건 거기까지야. 어찌 되었든, 자네를 다시 볼 수 있어 정말 반가워.」

「그리니에 씨, 제가 얘기했던가요? 당신은 나의 첫사랑입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그 옛날에 했던 고백을 또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연인의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지듯 그의 살결을 조심스럽게 펼칩니다.


여행. 담배. 포도주. 비밀. 독서. 향수. 침묵. 정오. 자정....

나는 그의 살결에 새겨진 비밀스러움을 맛보며 고독에 손가락을 멈춥니다.

「나의 고독은 대상이 없었어요. 당신이 말한 그 대상이요. 나는 고독이었고, 고독이 나였죠.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대로 소멸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기억들을 안고. 행복하게 소멸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사실 나에게 죽음은 그다지 두려운 게 아니에요. 내가 두려운 건 나의 죽음으로 슬퍼할 이들이죠. 그들의 슬픔이 두려운 거예요.」


「당신이 그랬죠. 절대 고독은 내가 대상이 되고 그 대상에서 다시 벗어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분신을 되찾는다고 믿을 때 의식할 수 있다고. 무슨 말을 하든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내가 이윽고 대상이 되어 내 분신을 되찾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당신이 얘기한 마키아벨리가 그랬던 것처럼 고독은 사람의 삶을 충만하게만 하는 걸까요? 고독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스티유 감옥의 독방에 가두고 자신의 은밀한 사유와 하나가 되어 마침내는 그 사유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 사드는 훗날 자신을 다시 되찾는 순간을 가졌다면, 마키아벨리가 느꼈던 그 충만함을 느꼈을까요? 고독이 이르는 결말은 언제나 재창조나 파멸 둘 중에 하나일까요? 오늘 당신의 비밀스러운 시는 내게는 마치 대낮의 무대장치처럼 어려운 것이로군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 오래전 수몰된 고대 도시, 봄날의 차가운 바람, 회색빛의 낮은 하늘, 나의 첫사랑.」

나는 지성인들이 말하는 고독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나의 고독은 언제나 바닥에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 고독을 만나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때론 예고 없이, 때론 수많은 징조의 마지막에서, 때론 사람들 틈에서, 때론 깊은 침묵의 끝에서.

고독으로 가는 길에 나는 때론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울은 나에게 죽음의 가면을 들이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달콤한 가면입니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기도 합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를 우울에 빠뜨린 삶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절망합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윽고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고독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고독 속에 몸을 누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회한 없이, 고독 속에 발을 담급니다. 그곳은 어둡지만 아늑합니다. 시간이 지납니다. 몇 분이, 또는 몇 시간이, 때로는 며칠이. 그러는 사이 고독이 말을 걸어줍니다. 침묵이 깨지면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딸의 목소리가, 남편이 커피를 내려주는 소리가, 아버지의 전화벨이, 어머니의 엄살이, 언니의 하소연이, 오빠의 헛기침이, 토란이의 방귀소리와, 까망이의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모란이의 지저귐이, 미소의 쳇바퀴소리와 기어 다니는 존재들의 바스락 거림이, 가볍게 탁탁 울리는 키보드 소리가, 바람 소리, 오몽이와 우렁이의 웃음소리가.


「우울이 건네준 달콤한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죽음 속에서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먼 훗날 당신이 말한 절대고독이 내게 죽음을 건넨다면, 그 죽음은 아마 절망적이지 않겠지요. 죽음은 고독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독이 내게 바닥에서 삶을 보여준 것처럼, 진정한 죽음 역시 고독의 모습일 테지요. 어둡고 아늑하고 아무런 회한 없이. 그리니에 씨, 나는 당신이 말한 고독이 무엇인지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고독의 끝은 아마도 너드 커넥션이 노래 부른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내게 물었습니다. 바닥에서 다시 시간의 태엽을 감도록 도와주는 게 뭐냐고. 그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동쪽 하늘, 생의 한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는 죽음을 향해 건방을 떨었습니다. 나는 고독에게 건방을 떨고 삶에게 건방을 떨고, 죽음에게 건방을 떨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품은 나에게 건방을 떨었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와 보니 다시 나였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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