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퇴적층

물이 필요하다


‘나무늘보 씨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 짧게 한 시간만이라도 해보십시오.’ 그는 나에게 이런 숙제를 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신체 노동과 감정 노동에 절어 있는 내게 그가 내린 처방입니다. 그 처방을 받기까지 3주 동안 내 안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것은 분명 나의 감정을 꺼내 그에게 보인 일었습니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편했던 감정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그것을 하나의 형상 또는 현상으로 정형화해 묘사하는 일은 확실히 힘이 드는 일입니다. 말하는 동안엔 모르고 있다가도 그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기 전에 혹은 눈을 뜰 때, 몸의 관절과 근육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사이 문득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에게 이야기한 감정들은 아주 해묵은 것들이었습니다. 퇴적층으로 치자면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무의식 층의 2, 3층 위에 있는 것들입니다. 무의식 층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경계가 모호해진 부분도 있어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 층은 시시때때로 자기 형질을 바꾸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3주 동안 나의 유기체가 해묵은 감정을 집어삼켜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조심 나의 감정들을 꺼내보였습니다. 그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린 처방은 단 한 줄. 너무나도 단순했습니다. 압니다.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는 걸. 단순하지만 그만큼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그걸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했고, 상황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틀렸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때가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야.'

그의 말도 맞고, 나의 생각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느릿느릿 책을 펼쳐 다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에 찢어버리기로 마음먹은 책은 옆으로 치워두고 –아직 찢지 못했고, 조만간 폐지함에 넣을 생각입니다. 알라딘에 되팔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맹세코 책에 대해 이런 감정이 드는 일은 처음이지만, 또 그렇게 해야만 저자에 대해 내가 품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가 될 듯합니다. 반대로 저자가 나에게 감정을 갖게 되겠지만요. 어쨌든 그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내 존재를 알지도 못하겠지만요 –

여러 차례 “어쩌면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로 운을 떼는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의 첫 장은, 언제 읽어도 눈이 반짝일 만큼 앞으로 이어질 한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그리고 전화벨은 항상 그 순간에 터집니다. 결코 가볍지 않을 여러 가지 사건을 농축한 벨소리입니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안 되는 상황임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나는 책을 덮고 책을 읽고 나서 몇 줄이라도 끄적이려고 펴놓았던 노트북을 다시 접고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저녁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옵니다. 요즘 나의 저녁은 항상 그렇게 찾아옵니다.

전화를 받고 나면 감정의 퇴적층 중 가장 위에 자리 잡은 몇 개 층이 지진이 날만큼 흔들리곤 합니다. 아직 퇴적이 되지 않은 그 감정들은 가장 아래층에 자리 잡은 무의식 층만큼 형질이 없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잘 다스리지 않으면 그동안 무너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다져놓은 퇴적층 전부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합니다. 가장 위에 있는 층이기에 무뎌지지도 않았고 너무나도 선명하고 신선해서 잘 갈아둔 칼날 같습니다. 그 칼날에 베이는 날에는 한동안 깊고 어둡고 아무도 없는, 완전히 고독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화살에 맞아 피 흘리는 짐승처럼. '나는 오늘 그렇습니다.'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숙제가 오늘 나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군요.' 집으로 돌아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봅니다. 고장 난 전압 차단기를 계속 올려보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글에 화면이 멈춥니다.


샤워부스 안에 앉아서 샤워기의 물을 맞는 기분이 꼭 화초가 된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샤워부스에서 분. 주. 하. 지. 않.게. 나. 에. 게 물. 을. 주.었다.
-브런치 작가 강노아 님의 글 「삶은 당신입니다」 가운데 ‘앉아서 합니다.’ 중-

미소가 번졌습니다. 머릿속으로 나에게 물을 주는 상상을 해봅니다. 물을 흠뻑 맞아봅니다. 물이 봄날에 화들짝 놀랄 만큼 차가운 꽃샘비였다가 시원한 여름날의 소낙비였다가 따뜻할 만큼 퍼붓는 장맛비로 변하며 내립니다. 잠시 숨이 쉬어집니다. 하아.

숨은 다음 날 다시 불현듯 멎을 테고, 어김없이 멎었지만,

그의 말대로, 나에게 물을 주던 작가의 글을 만난 것처럼,

나를 위한 한 시간을 노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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