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딸, 오늘은 엄마가 산책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들을 너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이 말들도 아마 엄만 너에게 직접 하지 않을 거야. 성장은 엄마나 누구의 말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인지와 이해, 궁극으로는 표현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알기에, 엄마는 오늘도 말을 삼키고 너에게 마음으로 그리고 눈빛으로 말을 건네 본다.
딸, 엄마가 살아보니까, 그리고 사람들을 살펴보니까 그런 것 같아.
세상은, 내 안에 있는 진짜 나를 보기를 원해.
누군가 가진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쫓는 자가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드는 나의 것들을 보기를 원해.
누군가 가진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쫒는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그 쫒는 행위 자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지. 사람들은 그런 행위 안에 존재하는 나의 욕망과 절망과 그것을 얻었을 때의 내 충족감이 바깥으로 발현됐을 때의 실체를 보길 원해.
가령 우리가 지난 일러스트 페어에서 만난 작품들 같은 것이지.
엄마는 전필화 작가의 작품과 윤수현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고, 너는 노마 작가의 작품 앞에서 눈을 반짝였지? 그건 그 작가들이 고뇌하고 깨달음을 얻은 과정들이 작품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작품 안에 녹아 있는 의미들이 우리 마음에 닿았기 때문에, 게다가 때마침 우리 마음속에 그러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진정한 위로와 고독을 원했기 때문에, 그리고 너는 노마 작가의 작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건 아마 너의 마음이 가장 잘 알겠지.
마음에 분노와 폭력이 담겨 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있는 그 감정을 살인과 전쟁으로 표출한다면 그는 범죄자가 되겠지만, 그것을 공포영화나 방탈출 게임 제작으로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겠지 – 물론 요즘 세상에는 범죄자를 추앙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런데,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무엇인가 중대한 결여가 있는 사람들일 테고 종국에는 그 결여에게 지배당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이겠지 -.
마음에 재물에 대한 욕심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있는 자가 물욕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두려워하거나, 실패자라는 평가가 두려워서 그 마음을 숨긴 채 재물을 쫓고 성공을 바란다면 그는 하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채울 만큼의 능력이 현재는 자신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는 아마 곧 재물과 성공을 얻는 방법을 깨닫게 되겠지. 그런 용기까지 가진 사람이라면 성공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보여준 실체는 자신의 욕구와 능력에 대한 인정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태도일 거야.
공황장애가 있었던 어떤 작가는 자신의 정신적 두려움을 고독한 새를 그림으로써 나타냈고, 사랑과 위안을 갈망한 어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포근한 일러스트로 완성했어.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불만과 자아실현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어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었고, 자신의 육체를 육체로써가 아닌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자 한 댄서는 유명한 남자 발레리노가 되었지.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내 안의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실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실체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되겠지. 사실 엄마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거 알아. 엄마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으니까. 엄마가 욕구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실체로 나타내지도 못했으니까.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수단을 이용해 드러낸 순간 그것은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고 생각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거나, 홀로 고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욕망이 어떤 수단으로든 나타나게 되면 결국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어. 성철 스님이 그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엄마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고타마 싯다르타가 그랬지. 자신을 드러낸 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숙명적인 특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너를 드러내는 건 무엇일까? 너는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무엇이 되길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단다. 지금은 네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웃음이 나오는지, 울음이 터지는지, 어떨 때 배가 고프고, 어떨 때 참을 수 없이 잠이 오는지, 어떨 때 슬프고 어떨 때 기분이 나쁜지, 그 감각들에 집중하고 나라는 사람을 알아나가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해. 그 때라는 건 말이지, 사실 이건 비밀인데, 없단다. 때라는 건 없는 것 같아. 일찍 알면 내가 나를 발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까 좋을 뿐, 그렇다고 나이 들어 알게 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어.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드는 대로 내가 발견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 젊을 때와는 다르게 또 달라지니까. 체력이 약간 걸리긴 하지만. 체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른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게 인간이지.
체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체력은 없는 것보단 역시 어느 정도는 있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더 넓혀주는 게 체력이기에 체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정신은 다른 문제야. 정신에는 한계가 없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까지 무한대야. 그러니까 체력은 언제나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켜주는 게 중요해. 정신은 너의 욕구와 관련이 있으니, 언제나 그 둘의 이야기를 잘 들어두렴. 앞에 엄마가 말한 대로 너를 먼저 알아가는 것으로. 그러고 나서 무엇을 할 때 너의 욕구가 가장 잘 채워지는지, 그 <무엇>이 내 <욕구>와 찰떡같이 붙는지 지켜봐. 그 무엇이 너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테니까. 네가 그 수단을 통해 채워졌을 때,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너라는 사람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알고 싶게 된단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명사들처럼.
그래서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명사가 되려고 하지 마, 네가 먼저 되어봐.
엄마는, 너의 태아기부터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미래의 너까지, 너의 모든 순간이 궁금하고 기대 돼. 왜냐하면 엄마는 너가 모르겠다고 하는 네 안의 너를 아니까. 지금 보이는 네가 너이기에 –에이, 엄만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너는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그건 노노~ 엄만 너를 모르는 게 아니라, 엄마라서 장님이 되는 것뿐이야. 엄마라는 직함이 가진 비극적인 운명이지-.
한 손에는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빵 봉지와 토란이의 리드줄을 든 채,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햇살을 내어주는 그늘 아래 앉아 찰나에 그런 생각을 해봤어.
너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