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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깊어가고 주책바가지 탈을 쓴다.

음탕한 할머니로 늙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드라마를 아예 보지 않았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맞춰 봐야 하는 번거로움도 싫지만, 우리나라 드라마가 대부분 복잡한 가정문제나 삼각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지긋지긋하도록 겪는 일이 가정문제인데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봐야 하나 싶고 삼각관계는 말 그대로 내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나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거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지를 못해서 첫사랑과도 대학 입학 후 군입대부터 제대 후 졸업할 때까지 함께 했고, 남편과도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중간중간 헤어질 위기가 있었는데 그럴 때조차 다른 사람을 만나볼 생각을 못했다. 나는 지독히 아파하고 아파하고 아파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참 줏대 있는 사람 같은데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보다는 관계 맺기가 서툴러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만남도 헤어짐도…….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3년 전에 했던 드라마를 재방송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하백의 신부」인데 평소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표정을 하는 남자 배우가 하백 역을 맡아서 참 안 어울린다 생각하고 한동안 채널을 고정한 채 그가 연기하는 하백을 보았다. 나는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을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배우는 소년 같은 얼굴에 남자 몸을 하고서는 꿍꿍이가 있어 보이니 그가 나오는 방송은 그냥 돌려버리곤 했다. 이 배우는 좋고 저 배우는 싫고 하는 게 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 배우가 나오는 방송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져서 돌려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뭐에라도 씐 걸까…. 보다 보니 그가 연기한 하백이 꽤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해석하는 강의 신은 과연 어떤 신일까 궁금해졌다. 때마침 6회를 이어서 편성해 끊어서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날 밤을 꼬박 새워서 「하백의 신부」를 보았고, 6회가 끝날 즈음엔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두두리며 다음 회 편성을 찾아보고 있었다. 사랑 이야기이긴 했지만 삼각관계는 아니고 우리나라 신화를 소재로 삼아서 참신하면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 앞에서 빼고 재고하는 것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은 강의 신 하백이기까지 하다. 생을 관장하고 모든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  흐름으로써 존재하는 강의 신.  처음에는 과한 분장과 어색한 표정연기에 평소 그의 얼굴 표정이 생각나 그럼 그렇지 했는데, 힘을 잃은 채 인간세상에 올라온 신을 연기하는 그는 제법 괜찮았다. 하백이라면 정말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어느새 소년의 얼굴을 한 그에게 빠져버렸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던 표정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인간사에 함부로 간섭하면 안 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고, 소년 같은 그의 모습은 신의 순수함을 그대로 담은 그릇처럼 보였다.  대사 중에 "조심하라니까. 나한테 한번 반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했잖아."라고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딱 그렇게 됐다. 주책바가지 탈을 쓴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역전이 되었다. 나는 소년의 얼굴을 한 그의 작품을 뒤져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모두 자고 조용해진 거실에 혼자 앉아 두근두근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점점 짙어가는 차가운 가을 밤안개 냄새를 맡으면서. 


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사노 요코 씨도 에세이에서 자신이 한류 드라마로 신세를 망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젊고 잘생긴 남자를 바라볼 때의 쾌락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가? 그건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는 베컴을 한순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젊은 여자를 보며 좋아하는 음탕한 할배처럼 나도 음탕한 할매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양파껍질이 훌렁훌렁 벗겨지듯 잘생긴 남자는 자꾸자꾸 나왔다.

- 사노 요코,  「문제가 있습니다」, 행복투성이 p.195  


사노 요코 씨에게 동료가 생겼다. 비록 저세상 동료는 아직 못되어 주지만 아마도 나 같은 동료들이 이 세상에 줄을 서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노 요코 씨처럼 나도 무엇이 그토록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았더니 답은 간단했다. 그는 소년의 얼굴로 참 담담하게도 사랑을 얘기한다 -물론 극 중에서-. 사랑을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아마도 사랑을 겪어본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처음 해본 사람들은 모든 것이 차고도 넘친다. 아픔조차도 넘치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사랑을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경험해본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복합적인 문제들과 감정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엉킨 실뭉치 같은 그런 감정들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는 언어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그 언어 안에는 모든 복합적인 문제들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감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듯 모자라나 이미 차있다. 


극 중에서 2800살 먹은 하백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선 어울리지 않게 담담하게 사랑을 말하고 표정으로 나타내고 몸으로 표현한다. 망설이고 질투하고 사로잡힌다. 모든 것을 아는 신이지만 이 사람과는 처음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것이 사랑했을 때의 내 기억을 소환했고, 나는 무의식 중에 내가 꿈꾸었던 사랑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너저분한 현실 따위는 난쟁이 똥자루에 꽁꽁 묶어 깊고 깊은 땅굴 속에 봉인해 버리라지 하며 2주 동안 꿈속을 헤맸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나라도 된 마냥 피식피식 웃으면서,  주책바가지 아줌마의 탈을 쓴 채 행복하게. 수정구슬 안의 환상을 보는 것 같은 이 기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올 가을은 그 덕분에 길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섰을 때는 그 환상이 흔적 없이 사라지길 바란다. 주책바가지 아줌마의 탈을 계속 썼다가는 대책 없이 음탕한 할머니로 늙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슬퍼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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