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저변에서 태엽을 감는 큰 굴레
화이트 아웃(white out)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하얗게 지우다' 또는 '흰 눈, 안개로 덮여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인데, 눈의 난반사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여 방향감각을 잃을 때 하는 말이다.
나는 일상에서 화이트 아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블랙아웃(black out, 의식을 잃다, 정신이 깜깜 해지다)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지 모르지만, 깜깜해지는 쪽보다는 하얘지는 쪽이니 굳이 화이트 아웃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겪는 것 같다.
화이트 아웃 현상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분명 전날까지 평온했던 마음이 알 수 없는 기류로 소용돌이치면서 주변의 배경을 전부 삼켜버린다. 거센 눈보라가 지나고 난 뒤 머릿속은 온통 하얘지고 눈부신 무채색의 빛에 방향을 잃고 만다. 알 수 없는 기류라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실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거나 월가 같은 금융계에서 미친 듯이 증권 거래하는 트레이더쯤 된다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무척이나 단조롭고 조용하다 못해 냉장고의 냉매가 꾸륵꾸륵 소리를 내며 순환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집에서 살고 있다. 창밖에서 들리는 아파트 주민들의 발소리에 민감하게 짖어대는 반려견들만 아니라면(개들의 청각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평일 오전에 19**호에는 과연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데도 시끄럽다고 하는 이유는 집안 식구들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에세이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와 남편의 집안은 그리 화목하거나 평온하지 않다. 어느 집이든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우리 두 집안도 예외 없이 그런 나름의 사정이 꾸준히 진행선 상에 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시끄러웠으면 이제 조용해질 만도 한데 참 정력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특히 친정인 우리 집 쪽이 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저런 일로 전화가 끊이지 않는데 거기에는 언니의 역할도 한몫한다. 그렇다고 언니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은 아니고 친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요목조목 꽤나 현실감 있게 얘기해주는 쪽이다. 잊을만하면 재방과 지방방송도 잊지 않고 틀어주어 기억을 되돌릴 틈이 많아진다.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보통은 웬만한 전화나 사건사고에 평정을 잃지 않는 편인데, 그게 이상하게 비틀어지는 날이 생기곤 한다. 그런 날이 나에겐 화이트 아웃을 경험하는 날이 된다.
우리 집 두 노인 양반은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이 맞아본 적 없는 부부다. 그런 두 분의 하루가 어떨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부터 오징어를 구우면 집안에 냄새가 나니 굽지 마라, 구워라, 화장실 습기 차지 않게 문을 열어둬라 마라,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리니 소리를 크게 해라 마라, 중식이 먹고 싶다, 싫다까지, 두 분 모두 한 고집을 넘어 똥고집에 무소뿔 고집이니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그만한 연륜이 되었으면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고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막상 매일을 밥상 앞에 머리를 맞대고 살아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한치도 양보하면 안 되는 일이 돼버린다. 그런 사소한 다툼이 불씨가 되어 그야말로 활활 타오를 정도로 큰 싸움이 되고, 자식들은 그런 일에 꽤나 인이 박였다. 그래서 웬만한 사건사고에도 평온을 유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티격태격 대고 그 오랜 세월을 정나미가 다 떨어질 정도로 사셨으면서도 여전히 함께 사시는 것을 보면 자식들은 모르는 어떤 인연의 굴레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과연 그것을 인연의 굴레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딱 잘라 악연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강 짐작되는 내용이라고 해도 자식들 보기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하나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티격태격 대다가도 다음 날 보면 나란히 소파에 앉아 홍시를 드시면서 EBS에서 방영하는 명작 영화를 보고 계신다. 멘붕이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적은 내용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바닥에는 친정을 비롯해 남편의 집안, 그리고 우리 집 문제까지 더해져 많은 일들이 두꺼운 퇴적층처럼 쌓여있다.
빙산의 일각이든 두꺼운 퇴적층이든 나는 그 거대한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가끔 찾아오는 그 화이트 아웃 현상인데, 일단 한번 찾아오면 내 발길은 갈 곳을 잃고 만다. 습관처럼 해오던 집안일이 뒤죽박죽이 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우선으로 두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댄다. 곧 부화를 앞둔 암탉 마냥 집안 여기저기를 안절부절 돌아다니다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와 하얗게 삼켜진 거실 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런 날에는 하루가 통째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다시 보니 밤인 것 같은 기분. 허리가 뚝 끊어져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화이트 아웃이 꼭 집안의 만성적인 문제들 때문에 오는 것 같지는 않다. 집안 문제는 말 그대로 저변에서 태엽을 감고 있는 큰 굴레에 지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그 굴레와는 동떨어진 다른 일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 파편들 때문에 만성적 굴레의 태엽에 렉이 걸리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다. 큰 굴레가 멈춰버렸으니, 뇌가 그 완충 기작으로 화이트 아웃 현상을 가동하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숙주가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으니 모든 시스템을 한동안 셧다운 시켜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마음이 혼란을 덜 느끼고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배경을 하얗게 집어삼킨 뒤에 숙주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면 뇌를 서서히 표준모드로 전환시켜 렉이 걸린 태엽 쪽으로 조명을 비춰준다. 그러면 숙주는 큰 태엽에 걸린 파편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고, 그것이 새로운 문제인지 아니면 고질적인 문제인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그대로 두고 봐야 하는 문제인지, 노력해도 안 될 문제인지 안정적인 시각에서 판단하게 된다.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화이트 아웃이 왔을 때의 아무 일도 못하는 속수무책인 상태가 너무나도 싫지만, 그래서 되도록이면 경험하기 싫은 현상이긴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가동되는 시스템이라면 태엽을 감는 큰 굴레가 새 것으로 교체되기 전까지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현상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큰 굴레는 아마도 내가 이번 생에서는 계속 태엽을 감아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음 … 역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