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나의 행운

가을이 낯을 가리며 오고 있다

아침 산책을 나섰다.

바람은 아직도 묵직하게 덥고, 나뭇잎 마저 눈가에 더운 숨결을 뱉어내는 아침에.

날씬한 뒤태를 자랑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축축하고 새까만 코를 흙에 처박은 나의 사랑 토란이, 나의 사랑 오몽이를 보며 머릿속으로 지지부진 흘러가는 단편을 이어본다.

이야기는 쉬 이어지지 않고, 의식은 주변의 풍경으로 시선을 빼앗긴다.


바람이 아직 더운데,

단풍은 무슨 근거로 벌써 붉은 낯빛을 드러내는지,

가을이 오려나.



오기야 오겠지만,

이런 날에 설마.

하다가 몇 발자국 걷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솜털 달린 나뭇잎에 눈길이 멈춘다.


봄날에나 볼 수 있는 어린 나뭇잎이

이 계절에? 허리를 구부려 자세히 보는데

토란이도 와서 나뭇잎에 코를 처박으려 한다.

에에이, 엄마 좀 먼저 보자잉.

나도 얼른 고개를 숙여 토란이의 얼굴을 민다.

놀라면서도 장난인 줄 알고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들이미는 토란이.

나를 미소짓게 하는 존재.

털달린 나뭇잎은,

토란이가 먼저 코를 쳐박지 못하도록 한 나의 장난기가 고마워지는 순간.

쐐기나방 애벌레임을 집에 들어와 똑똑한 나의 초록 뇌를 통해 알게 된다.

가만, 이 녀석은

성충이 8월 중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나온 애벌레가 늦가을이 오기 전에 고치를 만들어 월동을 하고 이듬해 5월에 성충이 된단다.

그러니까 이 녀석을 봤다는 건 곧 가을이 된다는 뜻.

조금만 더 버텨보자!

하고 생각해보니, 단편을 이어보자고 나선 산책길은 가을을 확인하는 발자국만 남긴 시간이 되었다.

그나저나 쐐기나방 애벌레는 몸에 까칠까칠한 가시가 솜털처럼 돋아 있는데 보기에는 복슬복슬 이쁘지만 독이 있어 쏘이면 저리다 못해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아프다고 하니,

나도 토란이도 천만 다행이었다.

고맙습니다. 나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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