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루는 작고 동글동글한 콩벌레예요. 가족들과 함께 축축하고 따뜻한 낙엽더미 밑에서 살고 있지요.
코루는 가족이 정말 많아요. 정말 정말 많답니다. 코루도 누가 누군지 다 기억을 못 할 정도니까요. 그래도 맛있는 낙엽이 보이면 모두 사이좋게 모여서 나눠먹어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 잎자루까지 남김없이 모두 꿀꺽 삼킨 코루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와! 굉장하다!’
코루 앞에 초록색 잎이 선명한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었어요.
나무는 정말 근사했어요. 줄기가 단단하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였지요. 꼭대기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저게 뭐지?'
코루는 불빛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푸릇푸릇한 나뭇잎은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지요.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더 근사할 거야!'
코루는 나무 꼭대기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발밑에는 불빛이 반짝이고, 초록색 왕좌에 앉은 왕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지요. 더는 축축한 낙엽더미 밑에서 어떤 낙엽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요.
코루는 나무에 오르기로 마음먹었어요.
<2>
나무 밑동에 달린 첫 번째 가지 위에 오르자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이 보였어요. 개미는 코루가 사는 낙엽더미 밑에도 종종 찾아와 낙엽을 가져가곤 했답니다. 그 바람에 콩벌레들이 먹을 낙엽이 줄어들어 쓰디쓴 곰팡이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지요.
"개미야, 저기 나무 위에서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코루가 쭈뼛쭈뼛 물었어요.
개미들은 곁눈질로 흘끗 쳐다보기만 할 뿐 나무껍질 나르기를 멈추지 않았답니다. 낙엽더미 아래 있을 때보다 더 분주한 것 같았지요.
코루는 실망하지 않고 두 번째 가지에 올랐어요. 그곳에는 집게벌레가 나뭇잎을 부지런히 조각내고 있었어요.
"저, 집게벌레님. 나뭇잎 맛은 어떤가요?"
코루는 초록 잎의 맛이 궁금했어요.
집게벌레가 꼬리 끝에 달린 집게를 등 위로 말아 올렸어요. 하지만 코루가 낙엽더미 밑에서 만났던 콩벌레라는 걸 알고는 경계를 풀었답니다.
"난 그런 거 몰라."
집게벌레가 쌀쌀맞게 대답했어요.
"집게벌레님, 그렇다면 저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코루는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그런 게 궁금할 시간이 어딨어? 난 바쁘다고!"
집게벌레는 톡 튀어나온 작은 눈으로 코루를 흘겨보고는 계속해서 나뭇잎을 조각냈어요.
집게벌레가 너무 바빠 보여서 코루는 단념하고 다시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답니다.
<3>
세 번째 가지에 오르자 이번에는 나방이 날개를 활짝 핀 채 화려하게 앉아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전 낙엽더미 밑에 사는 콩벌레예요."
코루가 나방에게 인사했어요.
"콩벌레가 여기까지 웬일이지?"
나방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나무 위에 반짝이는 불빛이 궁금해서 왔어요. 나방님은 혹시 아시나요?"
"글쎄, 그게 뭘까?"
나방이 능청스럽게 대답했어요.
"불빛이 뭔지 알게 되면 나한테도 알려주렴. 난 지금 집게벌레가 나뭇잎을 얼마나 모았는지 보러 가야 하거든."
"집게벌레님이 모은 나뭇잎을요?"
코루는 나뭇잎에 대해 물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나방님, 나뭇잎은 맛있나요?"
"넌 낙엽을 먹고사는 콩벌레잖니? 나뭇잎 맛은 몰라도 돼."
나방은 새침하게 대답하고는 나무 위로 날아올랐답니다. 집게벌레를 만나려면 나무 밑으로 가야 하는데, 코루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4>
이제 코루는 꽤 높은 가지까지 올라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반짝이는 불빛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코루는 배가 고팠지만 쉬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갔답니다. 네 번째 가지에 다다르자 까만 빛깔이 아름다운 딱정벌레가 있었어요. 딱정벌레는 언뜻 보기에도 코루보다 나이도 많고 점잖아 보였지요.
"딱정벌레님 안녕하세요, 전 낙엽더미 밑에 사는 콩벌레예요."
코루가 공손하게 인사했어요.
딱정벌레는 코루를 향해 긴 더듬이를 뻗었어요. 그러고는 한참 동안 코루의 몸을 수색했지요.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딱정벌레가 말했어요.
딱정벌레는 코루 앞에 축축한 나무껍질을 내밀었어요. 코루는 딱정벌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허겁지겁 나무껍질을 먹었답니다.
"죄송해요, 배가 너무 고파서...."
미안한 나머지 코루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어요.
"괜찮아. 배가 고프면 그럴 수도 있지."
딱정벌레가 부드럽게 대답했어요.
"저, 딱정벌레님. 한 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딱정벌레의 친절한 태도에 코루는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풀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답니다.
"얼마든지 물어봐."
딱정벌레가 대답했어요.
"나뭇잎은 맛있나요?"
"그럼, 맛있고말고. 하지만 넌 먹으면 안 돼. 배탈이 날 수 있거든."
"그렇군요."
코루는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나뭇잎을 맛보고 싶은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딱정벌레님, 그럼 나무 위에 저 반짝이는 건 뭐예요?"
코루가 다시 물었어요.
"그건 나도 대답할 수 없구나. 예전에 나도 너처럼 궁금해서 꼭대기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매미에게 밀려났거든."
"매미요?"
"그래, 어찌나 시끄럽게 날 쫓아내던지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단다. 너도 반짝이는 게 뭔지 궁금해서 여기까지 온 거라면 매미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코루는 딱정벌레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다시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어요. 땅은 이제 까마득히 멀리 보이고 모든 것이 작고 하찮아 보였지요.
<5>
다섯 번째 가지에 오르자 딱정벌레의 말대로 매미가 기둥에 달라붙어 있었어요. 매미는 코루를 보자마자 배를 떨며 울기 시작했어요.
"콩벌레가 여기까지 웬일이지? 어서 내려가!"
매미는 사납게 울면서 날개를 파르르 떨었어요.
"매미님, 전 반짝이는 불빛이 보고 싶어요! 제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시겠어요?"
코루도 지지 않고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매미를 향해 소리쳤어요.
매미는 배를 더 세차게 흔들며 울음소리를 냈답니다.
"나도 올라가지 못해 본 곳을 네가 가보겠다고? 안 돼! 거긴 내 자리야!"
"네? 매미님도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매미의 대답에 코루는 깜짝 놀랐어요.
매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또르르 굴렸어요. 그렇지 않아도 톡 튀어나온 눈인데, 그 바람에 눈알이 더 튀어나올 것 같았지요.
"꼭대기에 떡 버티고 서있는 장수풍뎅이에게 잘 보이려면 나무 수액을 갖다 줘야 하는데, 좋은 수액을 그 양반이 다 먹고 있으니 어떻게 올라갈 수 있겠어?"
매미는 전보다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장수풍뎅이는 곤충의 왕 중에 왕이니까 매미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코루는 좋은 꾀가 생각났어요.
"매미님, 그렇다면 제가 먼저 올라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매미가 배로 나뭇가지를 탁 치며 말했어요.
"만일 제가 장수풍뎅이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꼭대기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쫓겨날게 뻔하잖아요? 하지만 반대로 장수풍뎅이님 마음에 들게 된다면 매미님을 위해 수액을 조금 얻어 올 수 있을 거예요. 약속해요!"
배로 나뭇가지를 기세 좋게 탁탁 치던 매미가 순간 움직임을 멈췄어요. 매미는 짧은 더듬이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요. 얼마 뒤 매미는 촐싹 맞게 다리를 움직이며 코루에게 길을 터주었답니다.
"장수풍뎅이한테 절대로 내 얘기는 하지 마!"
매미가 아까와는 다르게 가늘어진 소리로 말했어요.
코루는 다시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답니다.
<6>
마침내 코루는 나무 꼭대기에 올랐어요. 반짝이는 불빛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였지요. 코루는 황홀한 눈으로 불빛들을 쫓았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불빛들이 제각기 포르르 포르르 움직이면서 하늘을 수놓았어요. 어떤 불빛은 이파리 뒤에 붙어서 등불을 켠 것처럼 나무를 밝혔지요.
코루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미가 말한 장수풍뎅이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장수풍뎅이님, 안녕하세요. 저는 낙엽 밑에 사는 콩벌레예요!"
코루는 혹시 장수풍뎅이가 들을까, 큰소리로 인사했어요.
어디선가 츠르르릅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코루가 서있는 나뭇가지 뒤편에서 장수풍뎅이가 수액을 훑어먹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장수풍뎅이님. 저는…."
"알아, 콩벌레라고? 그런데 콩벌레가 나무 꼭대기까지 무슨 일이지?"
장수풍뎅이는 튼튼한 다리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휙 돌렸어요. 그러고는 코루 앞으로 커다란 뿔을 빠짝 들이밀었답니다. 코루는 너무 놀란 나머지 또 몸을 동그랗게 말았어요.
"하하하! 겁낼 것 없어. 내가 널 공격하는 일은 없으니까."
장수풍뎅이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어요. 코루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눈만 힐끔거렸어요.
"넌 낙엽을 먹는 콩벌레잖아. 내 수액을 먹을 일이 없는데 왜 너를 공격하겠어?"
장수풍뎅이의 말에 코루는 동그랗게 만 몸을 풀었어요.
"전 반짝이는 불빛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코루가 짧은 다리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건 개똥벌레란다. 많은 곤충들이 저 개똥벌레를 보려고 여기까지 올라오지."
"개똥벌레요?"
코루는 낙엽 밑에 살면서 개똥벌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본 건 처음이었지요.
"그런데 장수풍뎅이님은 다른 곤충들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싫은가요?"
"다른 곤충들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오든 말든 난 상관없단다. 내 수액을 빼앗아 먹지만 않으면 돼. 이 나무는 꼭대기에서 나는 수액이 가장 맛있거든."
장수풍뎅이는 수액이 또 먹고 싶다는 듯 배를 꿈틀대며 말했어요.
“매미가 수액을 빼앗아 먹으려고 했나요?”
“암, 그 녀석은 개똥벌레를 보고 싶다는 핑계로 올라와서 호시탐탐 내 수액을 노렸어! 조금만 빈틈을 보였다면 금세 내 자리를 차지했을걸!”
코루는 그제야 매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어요. 장수풍뎅이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사실 수액만 아니었다면 나도 이 꼭대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을 거야. 그나마도 이제 수액이 모두 말라서 곧 떠날 생각이란다.”
“어디로요?”
코루가 물었어요.
“그야 수액이 맛있는 나무를 찾아가야지. 미리부터 터를 잡고 있는 곤충들과 또 싸워야겠지만, 맛있는 수액을 먹으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장수풍뎅이가 나무를 떠난다는 말에 코루는 매미가 조금 가여워졌어요. 이제 꼭대기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수액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저, 장수풍뎅이님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코루가 용기 내어 말했어요.
“저에게 장수풍뎅이님의 수액을 조금만 나눠주실 수 있나요?”
코루는 매미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장수풍뎅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코루의 부탁에 당황하는 눈치였어요. 크고 단단한 몸을 꼼짝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지요.
“좋아. 콩벌레한테 수액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떠나기 전에 네게 수액을 조금쯤 나눠줘도 괜찮겠지!”
긴 침묵을 깨고 장수풍뎅이가 대답했어요. 그러고는 입수염에 꾸덕꾸덕하게 묻은 수액을 앞다리로 동글동글 말아 구슬 모양으로 만든 다음 코루에게 건네주었답니다. 코루는 수액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장수풍뎅이에게 작별인사를 했어요.
<7>
나무를 내려가는 일은 올라갈 때만큼 힘들지 않았어요. 코루는 수액을 안고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매미를 만났던 나뭇가지를 향해 굴러 내려갔답니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 혹처럼 튀어나온 옹이에 걸려 동그랗게 말았던 몸이 펴지고 말았어요. 코루는 안고 있던 수액을 떨어뜨릴까 봐 등을 한껏 구부린 채 몸을 튕겼답니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다리를 딛고 일어서서 걸려 넘어진 옹이를 돌아보았지요.
“반짝이는 게 뭔지 알아냈니?”
옹이인 줄 알았던 것은 세 번째 가지 위에서 만난 나방이었어요. 나방이 나무기둥에 몸을 딱 붙인 채 물었어요.
“네, 그런데 아무래도 매미님이 사는 곳을 지나친 것 같아요.”
코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답했어요.
“매미는 왜?”
“수액을 가져다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수액을 가져다주기로 했다고?”
나방이 옹크리고 있던 날개를 파르르 떨었어요.
“수액이 있어야 장수풍뎅이님께 잘 보일 수 있다고 매미님이 말했거든요. 그나마도 이제 장수풍뎅이님께 잘 보일 이유가 없어졌지만요.”
코루가 더듬이를 축 늘이며 말했어요.
“너 정말 반짝이는 게 뭔지 본거로구나?”
나방이 놀랍다는 듯이 날개를 활짝 펴며 말했어요.
“전 반짝이는 것이 별인 줄 알았어요. 땅으로 내려온 별이 나무를 비추는 것인 줄 알았는데 개똥벌레였어요.”
“그래서 실망했니?”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어요.”
수액 구슬을 가슴에 안은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코루가 대답했어요.
“초록색 나뭇잎도 못 먹고, 반짝이는 별이 사실은 저 같은 곤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왕이 된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작고 하찮아 보였어요. 낙엽 더미 밑에 있을 때는 꽃잎에 맺힌 이슬도 보석같이 아름답고 금방 태어난 새끼 개미들의 자그마한 더듬이도 귀여웠는데 말이에요.”
나방이 새초롬하게 뜬 눈으로 코루를 쳐다보았어요.
“저 나방님, 이 수액을 저 대신 매미님께 전해주실 수 있나요?”
코루가 나방에게 수액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어요.
“소용없어. 장수풍뎅이가 다른 곳으로 날아간 걸 보고 매미도 떠나버렸거든. 장수풍뎅이가 떠났다는 건 수액이 말랐다는 뜻이니까.”
나방의 말에 코루는 수액 구슬을 안고 있던 다리들을 축 늘어뜨렸어요.
“그러지 말고 그 수액 구슬 날 줄래?”
나방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어요.
“나방님은 이 나무에서 계속 사실 건가요?”
“수액도 나지 않는 나무에 내가 왜? 난 꿀이 가득한 꽃을 찾으러 떠날 거야!”
나방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는 듯이 동그랗게 말았던 주둥이를 쭉 펴고는 다시 후루룩 말았답니다.
코루는 수액 구슬을 슬그머니 품 안에 다시 안고 등을 구부렸어요.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이 나방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지요.
“미안해요, 나방님. 하지만 이 수액은 드릴 수 없어요. 나방님은 맛있는 꿀을 찾아 날아갈 수 있지만 개미들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설마, 그 수액 구슬을 개미들에게 주려고?”
“네, 얼마 전부터 개미굴이 분주해지기 시작한 걸 보면 알이 곧 부화할 것 같아요. 나무 밑동에서 만난 개미들도 정말 바빠 보였거든요.”
“나였다면 차라리 내가 먹고 말지!”
나방은 달콤한 수액 구슬이 못내 아쉽다는 듯 톡 쏘아붙였어요.
코루는 수액을 빼앗길까 봐 재빨리 몸을 둥그렇게 말고 나방에게 작별인사를 했답니다.
“나방님, 행운을 빌어요!”
코루는 나무 밑동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갔어요.
<8>
나무 밑동에는 개미들이 여전히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턱으로 잔가지에 난 잎봉오리들을 잘라내고 나무껍질을 부지런히 날랐지요. 코루는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아주 살짝 편 다음 수액 구슬을 나뭇가지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재빨리 몸을 말고 낙엽 더미가 수북이 쌓인 땅 밑으로 굴러 내려갔어요.
낙엽더미로 돌아가기 전에 코루는 나무를 한 번 더 올려다보았어요. 나무 밑동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었어요. 뜻하지 않게 발견한 수액 구슬 때문에 개미들의 발길이 더욱 분주해졌지요.
“유충들에게 먹일 영양식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군! 어서 굴속으로 옮겨!”
멀리서 대장 개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코루는 개미들에게 수액 구슬을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미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집게벌레들이 무슨 일인지 보려고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삐죽 내미는 모습도 보였지요. 친절한 딱정벌레 아저씨는 이젠 아주 조그맣게 보였어요. 딱정벌레 아저씨는 여전히 아름다운 빛이 반짝이는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9>
나무는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웠어요. 코루는 나무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낙엽더미 안으로 파고 들어갔답니다. 낙엽더미 아래서는 가족들이 여전히 바글바글 모여 사이좋게 낙엽을 먹고 있었어요. 코루도 그들 틈에 끼어서 낙엽을 먹기 시작했지요.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코루도 다 기억을 못하지만 낙엽 밑은 언제나처럼 축축하고 따뜻했답니다.
-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