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한 날이 있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한가운데 꽉 끼어버린 것 마냥, 방법이 없어 발버둥 치기도 버거워지는 그런 날. '한 발짝 내디디면 될 것 같은데' 하는 마음마저 오도 가도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할 때면 머릿속에 돌덩이가 빈틈없이 꽉 들어찬 것처럼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어. 마음이 담담하지 못하고 무심하지 못한 그런 날은 지레 마음이 앞을 내달려서 돌아보면 달려온 자리가 불에 타있고, 허공에 내뱉어진 말들은 갈길을 잃은 채 부끄러워하지. 뒤늦게 남겨 온 낯 뜨거운 것들을 거두려고 해도 벌써 지나간 날의 해가 꿀꺽 삼켜버려서 어디로 가야 거두어올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해져.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마음은 납으로 만든 궤에 갇힌 채 밤이 찾아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괜찮을 거야, 별 일 없을 거야.'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머릿속 돌덩이들은 택도 없다는 듯이 더욱 세차게 달그닥 거리며 서로 부딪히지.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달그닥 달그닥. 궷 속에 갇힌 마음을 달래 보려 머릿속 돌덩이에게 살살 말을 걸어보지만, 그럴수록 돌덩이들은 너 잘 만났다는 듯이 달그닥거리다가도 꽉 끼어버리고, 다시 제멋대로 달그닥 거리며 나를 농락하지. 달은 진즉에 모습을 감춰버렸어. 앞으로만 내달리고 싶은 마음은 좁은 궷속에서 미쳐 날뛰고, 그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어. 어둠 속에서 참 별소리가 다 들리는구나 감탄스러울 정도야. 이러다가는 졸도할지도 모르겠다 싶은 순간에 눈을 감아버리면 어딜 도망가려고! 소리들이 머리채를 훽 잡아당겨. 아아, 정말 야단 났구나. 야단 났어. 나도 모르게 두 팔로 가슴을 끌어안고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소리들이 잠재워지길 기다려보지만, 아무래도 이번 밤은 기어이 내 머리카락을 새하얗게 지새우려는 것 같아. 이대로는 아니야. 이대로는 아니란다. 조용해질 생각이 없다면, 그래 계속 소리를 내보렴. 달그락달그락, 덜컹덜컹. 네 소리를 흉내 내어 적어볼게.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하얀 스크린에 네가 내는 소리들을 던져볼게. 네가 내는 박자에 맞춰 한없이 가볍고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려볼게. 한 글자, 두 글자. 타다 탁탁 타다 탁탁 탁 탁 타탁. 가볍게 가볍게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날뛰던 마음이, 달가닥대던 돌덩이들이 키보드 소리에 맞춰 자기 몸을 하얀 스크린에 내던진다. 풍덩풍덩, 하얀 싱크홀에 갇히는 줄도 모르고 신난다고 마구마구. 거뭇거뭇한 때를 묻히며 겁도 없이 뛰어드는구나. 하아, 가볍다. 가벼워졌다. 머리도 마음도. 시끄럽게 웅성대던 소리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멍멍한 통각만이 남아서 잠이 쏟아진다. 이제야 비로소 잠이 쏟아지는구나. 별마저 희미하게 사라진 시간에, 약간은 무심한 듯 덤덤해진 마음으로. 눈꺼풀 위에 무거운 잠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