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대교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므두셀라'.
성경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 시대 이후부터 존재해온 이 나무는 5000살이라는 어감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세 종교 이야기」는 이 므두셀라 나무가 태어난 시대의 배경부터 시작한다.
유대교 이야기와 기독교 이야기, 이슬람교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읽고 나면 마치 세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 편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 안에서 옴니버스 식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오늘날 종교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너의 땅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축복하며 너의 이름을 크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 1-3
하느님의 이 한 마디 말로 세 종교는 갈래를 뻗게 된다.
1. 유대교 이야기
책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유대교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체를 요약해 주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유대교의 탄생 과정과 유대교가 하나의 종교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읽다 보면 우상 숭배를 했던 수메르 문명의 우르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게 된 연유와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통해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뻗어 나왔다는 복선과 같은 지식을 얻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대규모 식솔들을 이끌고 하느님이 지시한 가나안 지역, 지금의 팔레스타인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가나안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이들을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유대인은 계약의 민족이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 땅과 아버지와 친족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지시했다. 그대로 행한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자를 큰 민족이 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왕손이 나오게 하겠다고 약속한다(창세기 17:1-8). 이 약속은 기독교 탄생의 복선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할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이 땅에 태어나서 대부분 거쳐가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할례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계약의 증표로 내세운 제도다. 그것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느님의 말대로 할례를 받은 남성만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이후 아브라함에게서 난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 에서를 거쳐 야곱의 아들 요셉이 등장한다. 요셉의 등장은 모세의 출애굽과 연결이 되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내린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이 유대교 신앙의 본질이다.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구약성경의 내용이 담긴 《토라》만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히브리어로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토라》는 유대인들의 역사서이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율법서다. 유대인에게 있어 모세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예수와 유대교의 모세는 큰 차이가 있다. 신약성경은 대부분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지만 구약성경에서 <모세오경>은 모세가 말했다고 인용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말씀은 유일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통해 모세에게 전달된 것뿐이고, 따라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게 유대교의 기본 이념이다. 율법을 전해준 모세도 유대인들에게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데 유대교에서는 모세의 기념일이 없는 이유다.
출애굽 뒤에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민족은 복병을 만난다. 비슷한 시기에 남부 해안에 살다가 이주해 온 필리스틴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로 이 필리스티아에서 유래하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악연은 이렇게 기원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라고 불린다. 블레셋 사람들은 거인이 많았는데 여기에서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설이 나온다. 블레셋을 무찌른 다윗은 12지파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을 사상 처음으로 통일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성전을 건립하는 초석을 닦게 된다. 「세 종교 이야기」에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국으로서 통일하게 되기까지의 내용을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십계명이 담긴 언약의 궤를 안치할 하느님의 성전 건립은 안타깝게도 다윗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윗이 저지른 죄 때문에 하느님은 그 일을 아들인 솔로몬 왕 시대에 이룰 수 있도록 조치한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이스라엘의 호구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구 조사는 한 국가에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위 자체가 통치행위를 의미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권을 침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아담과 이브 시대처럼 하느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다. 이 사건을 통해 유대인의 기본 사상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토라》의 토대를 세운 모세를 기념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사건에서도 유대인들은 전지전능한 하느님 한 분만을 유일한 주권자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왕이라도 그것은 단지 백성의 대표일 뿐 그들의 통치자는 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최초의 자치제와 민주주의 제도는 유대인의 평등사상에 근거해 탄생한 것이다.
「세 종교 이야기」에는 참고 자료로 나오지 않지만, 모세 시대부터 함께 한 언약궤의 모습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25:22~ 29장에 걸쳐 언약의 궤와 장막, 제단, 제사장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솔로몬 왕 시대에 완성된 성전에 십계명 석판 두 개를 안치하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명실상부한 성지가 된다. 유대인에게 언약궤는 하느님이 함께 한다는 것과 일치했는데 기원전 620년-586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되면서 언약궤는 사라져 버린다. 바빌로니아 군이 성전에 난입했을 때는 언약궤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하는데 성서에도 열왕기 둘째 25장 36장 에스라 1장 등에 바빌론이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금은보화를 약탈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궤를 약탈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함락을 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솔로몬 왕 시대부터 만연한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이자 십계명의 제1 계명을 지키지 않은 벌로 1차 이산을 당하게 되고 바빌론의 노예로 전락한 뒤에야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게 된다. 1차 이산에 대한 예언은 구약성서의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 뒤 이스라엘은 1948년이 되기까지 약 2천5백 년간 방랑의 시대를 맞게 된다.
1차 이산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큰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들의 죄로 하느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성전에서 더 이상 하느님을 향한 제례의식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대인에게 있어 종교를 잃게 되는 일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때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성전에서의 제례의식보다 올바른 믿음을 갖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여호와를 더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전파한다. 성전에만 고착되어 있던 믿음이 어디서나 숭배할 수 있는 종교로 바뀐 것이다. 그 뒤 유대인들은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지키는 것을 더 우선하게 되었다. 《토라》의 기본 사상이자 유대인 공동체 시너고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1차 이산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 성전 재건을 거쳐《토라》를 재정비하고 유대교를 개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치하로 들어간 유대민족이 그리스 속국이 되면서 그리스 제국 내의 각 도시들로 뿔뿔이 흩어진다. 유대 민족은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활동을 하면서 터를 닦아 놓았던 중앙아시아를 포함해 인도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으로도 흩어진다. 히브리어로만 쓰였던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이유다. 그리스어로 쓰인 70인 역 성경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다. 70인 역 성경의 출현으로 성경은 유대민족뿐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읽히게 된다. 이들은 훗날 사도 바울이 이방 선교를 할 때 기독교인을 이루는 주 세력이 된다.
유대민족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기는 했지만 그리스 속국으로 있는 동안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정복된 뒤로 유대민족은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여러 종파로 나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끊임없이 크고 작은 독립운동을 하지만 유대민족은 끝내 로마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이것이 유대민족의 뼈아픈 2차 이산이다. 어렵게 재건한 예루살렘 성전은 서기 70년에 완전히 함락되고 그 잔해마저 남지 않게 된다. 누가복음 19장 44절에서 예수가 예언한 "너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유대인들은 평화롭고 부유해지면 나태해지고 부패했다. 언제나 하느님에게 벌을 받고 난 뒤에야, 나라를 잃은 뒤에야 후회하고 반성하며 다시 더 견고하게 뭉쳐서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에 의한 2차 이산을 통해서 유대교는 더욱 견고하게 재정립된다.
이때부터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랍비가 나와 유대인들을 이끌며 율법을 해석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 또 랍비를 길러내는 율법 학교 예시바도가 생겨났다.
두 차례의 뼈아픈 이산의 고통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의 문화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거쳐온 역사를 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들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세 종교 이야기」를 다 읽고 어떻게 리뷰를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정돈된 지식을 차근히 써 내려가는 것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을 하기엔 책의 내용이 너무 군더더기가 없고, 독후감처럼 쓸까 하다가 그건 또 내가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들을 담기엔 부족하겠구나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히 써 내려가야지 결심하게 되었다. 이 책에 유일한 비평을 한다면, 믿음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보고자 했던 처음의 결심에는 맞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상황에 맞지 않은 책을 선정한 것일 뿐 「세 종교 이야기」에 어떤 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면서도 아주 쉽게 또 개연성 있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유대교에 대한 내용만 정리했지만 그마저도 담고 싶은 내용을 다 담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이 명작을 읽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감히 필독서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한 책이다. 특히 중고등학생이 꼭 읽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