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와 김화영 번역가 , 윤리 선생님과 나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나는 그대들을 이따 금식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 없는 거울아, 빛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 행운의 섬들 가운데
"나는 아무런 회한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든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
황혼 녘, 대낮이 그 마지막 힘을 다해가는 저 고통의 시각이면 나는 내 불안감을 진정 시키키 위해 고양이를 내 곁으로 부르곤 했다. 그 불안감을 뉘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랴? <나를 진정시켜 다오.>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불어 내게 낯익은 유령들이 깨어 일어난다. 그래서 무섭다. 해가 저물 때, 내가 잠들려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이렇게 나를 저버리는 세 번... 허공을 향하여 문을 열어 놓는 저 순간들이 나는 무섭다. 짙어가는 어둠이 그대의 목을 조일 때, 잠이 그대들을 돌처럼 굳어지게 할 때, 한밤중에 그대가 나는 무엇인가 하고 결산해 볼 때, 그대가 생각할 때--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대낮은 그대를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장치 조차 없다.
-고양이 몰루 가운데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 씩이나 해 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난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과 시간 사이에는 견디기 어려운 간계가 맺어져 있다.
-케르겔렌 군도 중에서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하늘의 투명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내 어린 시절, 반듯이 누워서 그리도 오래도록 나뭇가지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하늘, 그리고 어느 날 삭 지워져 버리던 그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냥 하나의 꽃에서 또 다른 꽃으로 달려갔을 뿐이다. --여행 그 자체 밖에는 아무런 목적 없는 여행들.
나의 목적은 시간에 좌우되지 않는다.
-공(空)의 유혹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