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러브 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

진짜 삶 - FIND ME


"시간에 관한 아주 추상적인 논문이라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미국인 조종사는 소도시에 함께 자란 고교 시절의 여자 친구와 결혼했지. 전쟁터로 떠나기 전 처가에서 2주를 같이 보냈어. 일 년 하고 하루가 지났을 때, 그의 전투기가 격추당했지. 어린 아내는 남편의 전사 통보를 받았지만 추락한 증거도 없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어. 얼마 후 그녀는 대학에 들어갔고 남편과 닮은 참전 용사를 만나 결혼해서 딸 다섯을 낳았지. 여자는 10년 전에 죽었어. 그녀가 죽고 몇 년 후 전투기 추락 현장이 드러났는데 첫 남편의 군번줄과 유해가 회수되어 먼 사촌과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됐지. 사촌은 조종사나 그의 아내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지만 검사를 수락한 거야. 슬프게도 조종사의 유해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건 아내도 장인 장모도 그의 부모와 형제자매도 전부 죽고 난 뒤였어. 그를 애도하기는커녕 기억해줄 사람 하나 없었던 거야. 아내는 딸들에게 그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게 없었지. 딱 한 번, 그녀가 이런저런 기념품이 든 낡은 상자를 꺼낸 적이 있어. 다른 물건들 틈에 조종사가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남긴 지갑이 들어 있었지. 딸들이 누구 거냐고 묻자 그녀는 거실로 가서 아이들 아빠의 사진이 든 액자를 꺼내 그 사진 뒤에 끼워 넣은 오래된 사진을 보여 주었어. 첫 남편의 사진이었지. 딸들은 엄마가 재혼한 걸 몰랐어. 그녀도 첫 남편의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고. 내가 보기엔 삶과 시간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이야기야. 시간이 완전히 잘못되어 아내가 잘못된 강둑 더 나쁘게는 전부 다 잘못된 두 강둑의 삶을 산 것처럼 말이야. 두 개의 평행선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여러 개의 삶이 있어. 하나의 삶이 다른 삶 아래 끼워졌거나 나란히 있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생을 다 채우기 전에 죽어 없어지는 삶도 있고, 충분히 살아지지 않아서 다시 살아지기를 기다리는 삶도 있지. 기본적으로 우린 시간을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 시간이 시간을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고 시간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거든. 또 시간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불안정하고 못 미더운 은유이기 때문이지. 궁극적으로 시간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도, 우리가 시간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야. 어쩌면 잘못된 것은 삶 자체일 거야."


-FIND ME, 안드레 애치먼, p57-59


 그렇다면 당신의 생과 나의 생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결국 시간이라는 뜻일까요? 한때는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서로 맞닿았던 적이 있었지요. 우리는 하나의 몸이 되어 하나로 이어진 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가끔 어색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요. 하나의 길, 하나의 세계, 하나의 생각, 하나의 순간. 그 환희의 순간에...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만났던 그 순간, 하나의 우주가 탄생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잘못된 것이 삶 자체라면...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맞닿아서 만들어낸 그 하나의 삶은 왜 다시금 둘로 나누어진 것일까요? 그때 하나로 포개졌던 시간은 결국 우리가 서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 하나로 포개져보니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만들어낸 우주를 망가뜨리기로, 그러기로 한 걸까요. 우리가 완벽하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한 하나의 삶이 결국은 불안정하고 못 미더운 삶에 대한 은유일 뿐이라서...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삶이 그 자체로 잘못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단지 저만의 큰 착각, 우주 하나를 기만할 정도로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요. 당신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요? 우리의 시간이 만났던 그 순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이 이 우주에서 사라지게 되는 날, 당신의 흔적이 사라지게 되는 날, 첫 남편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 속의 아내처럼, 아마도 나는 당신이 한때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홀로 마음에 담아둔 채 살아가다가 소멸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완벽한 시간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요. 이 세계에서는 삶과 시간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시간이 소멸의 경계까지 손을 뻗는 일은 없을 테니 우리는 하나의 순간, 하나의 삶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결국 시간이라는 뜻이겠군요. 당신은 저쪽 경계에서 수많은 가지를 뻗어 수많은 시간의 영역을 만들어내며 살고 있고, 나는 이쪽 경계에서 수많은 삶을 만들어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삶들은 각자 달려가다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다가 결국 다시 떨어져서 누군가의 삶 아래에 끼워지거나 나란히 앞을 향해 나아가겠죠.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낸 삶이 내가 만들어낸 삶과 맞닿는 일은 다시는 없겠지요. 우리가 완벽하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던 그 우주에서 떨어져 나간 그 순간 시간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했으니까요.


 당신이 지금 사는 시간은 진짜인가요? 내가 지금 사는 시간은 진짜일까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진짜였을까요? 시간의 꼭두각시로 살고 있는 우리는 진짜일까요? 내가 지금 하는 이 질문은 옳은 질문일까요? 어쩌면 잘못된 것은 삶 자체일지도 모르지만 왜 나는 이 잘못된 삶이 진짜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하나로 만나 졌던 환희의 순간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가 망가져버린 우주도, 그 뒤에 시간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수많은 삶 -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관심 없는 그 시간이 만들어준 삶들-도 왜 나는 다 진짜 같을까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당신도, 지금 내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도 왜 모두 진짜 같고 나만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잘못된 것은 삶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