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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즉흥곡

내 오랜 벗에게 던지는 질문

나이가 마흔 중반을 향해 가서 그런지 요즘에는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요리를 하다 문득,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득,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를 시끄럽고 신나게 다 보고 나서 문득,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문득,

특히 책을 읽은 뒤에나 잠들기 전에 퍼뜩.


나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학교 총회와 

학부모 모임을 앞두고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릴 때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싶다가도,


아니!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인걸 어쩌라고?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게 편하고, 전혀 빠르지 못하고

그래, 무슨 대답 하나라도 할라치면 눈알이 허공을 뱅글뱅글 맴돌기를 한참. 

간신히 찾아낸 말도 뱉다 보면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걸. 

이런 내 모습이 싫지만 나는 허공에 내뱉는 말보다는 흰 종이에 시간을 들여 쓰는 말이 좋아. 

그걸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이를 만나기도 전에 

세상은 허공을 향해 말을 뱉어 내라 하니, 나는 도저히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이게 나인데, 

아! 이 참에 다 정리하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홀연히 살고 싶다 생각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나만의 공상. 


야단 났네 야단 났어, 하면서 느릿느릿 안락의자에 궁둥이를 내려놓으며 

들여다보는 sns 속 다른 학부모들의 삶은 어쩜 이렇게 활기가 넘치고 사회적인지.

지인들과 함께 한 산행, 독서 모임, 베이킹 클래스, 꽃꽂이 모임이며

파티, 술자리, 봉사활동 등등 화려하면서 빼꼭하게 수 놓인 그네들의 sns 속에는 사람들이 가득, 세련된 삶이 가득가득.


나의 sns에는 홀로 또는 오롯한 우리 세 가족, 개 세 마리가 전부

공백이 헐렁헐렁.

나는 이게 좋아 이렇게 살아왔는데 왜 지금 비교하고 앉아있는지 스스로 한심스러워하다가도,


누군가 그런 말을 했지 아마, 나를 드러내기 싫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에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거나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워 주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둘 다인데,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스스로 자연인이 되지 않는 이상 나 역시도 이 사회에 섞여서 살아야 하는데, 

섞이려고 할 때마다 물 위에 뜬 기름 마냥 더 외롭고 쓸쓸해졌던 기억밖에 없는데. 


결혼 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나의 이 성격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굳이 되돌려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히 알고 있다. 


상처.

그리고 내 마음의 부재.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침묵하면 크게 시끄러워질 일이 없기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침묵을 선택했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침묵했나. 

침묵이 나의 많은 부분을 잠식해버렸다. 

침묵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내가 품은 감정과 생각을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힘 조차도 빼앗아 버렸다. 

나는 침묵 속에 파묻혀 안락함을 느끼고, 침묵은 나를 감싼 채 세상을 단절시킨다.


글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내 유일한 소통창구였지만

마흔이 넘어보니, 글로 하는 소통은 너무 느리고 사람들은 내 입에서 차분하면서 논리 정연하고 

위트 넘치는 말이 신속하고도 말끔하게 나오길 기대한다 -심지어 글에서도 그런 걸 원한다. 내 글이 절대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같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그런 글은 그야말로 박물관 소장실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는 골동품 중에 골동품이 되었다 -. 


아니, 어쩌면 그러길 바라는 건 나 자신일지도. 내가 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말끔하길 바라고 주의를 집중시키기를 바라는 걸지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논리 정연, 차분, 위트 이런 것들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 입을 여는 순간 나는 물 위에 뜨는 기름이 되어 버리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기름. 


이를 어쩐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한담. 

큰 욕심은 바라지도 않고, 마음 맞는 몇몇 사람들과 만나 나도 흥얼흥얼 어울리고 싶은데. 

그들 안에 그저 편안하게 녹아들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란다. 


어쩌니, 침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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