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일"

by 육동녕


아침밥 먹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요즘 오는 전화는 받기도 전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IMF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내가 오래 몸담았던 회사도 결국 파산함으로써 이제 갈곳없는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나설 일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냥 실직이 아니라 하필이면 파산 당시 대출업무를 맡았던 죄로 여신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파산한 수십 개의 그룹사에 대해 대출한 책임과 회수 못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집에 쌓아둔 돈이 있다 해도 몇십억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졸지에 부실금융기관 직원이 된 나에게 법무부는 출국금지 통보를 해왔고 국민 세금으로 예금을 대 지급한 예금보험공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산은 가압류된 데다 검찰에서는 출두요구서를 보내왔으며 금융감독원은 추가 검사 결과에 따라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니 전화 벨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것도 당연했다.


김 사장이었다. 재직 시 금융권 고속 출세의 표본이고 그룹 회장이 형님이라 부를 정도의 막강 파워로 직장에서는 마주 앉아 숨도 크게 쉬기 어려웠던 최고경영자였지만 회사 파산 후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걱정되고 우울할 때마다 나에게 불쑥 전화한다. 자주 만나 소주도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다 보니 이제는 과거 직급을 떠나 서로 동병상련을 느낄 정도로 많이 가까워진 듯하다.


경영 최고책임자였으므로 나보다도 훨씬 더한 책임과 시달림을 받고 있을 김 사장은, 옛날의 패기는 간 곳이 없이 요즘 부쩍 늙어 보이는데 많은 옛 임직원 중에 특히 나를 자주 찾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웬만하면 무슨 제안이든 군말 없이 따라주는 나의 소심한 성격 때문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점심 나절에 약속 장소인 명동 미성옥에 가 보니 김 사장은 미리 나와 설렁탕 국물에 수육과 소주를 시켜놓고 몇 잔째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맨 정신으로 하루를 지내는 것이 힘든 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앉자마자 소주한 병을 더 시켰다.


나라를 IMF에 이르게 한 무능한 정권과 썩어빠진 재무 당국자들을 성토하며 내용도 없는 주먹을 허공에 지르다가 끝나는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중요하고 실질적인 안건이 있었다. "삼청동 총리공관 건너편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데 같이 한번 가 보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혼자 가기엔 좀 멋쩍기도 하고 동행이 필요했을 터이다. 동업사 두 군데가 일찌감치 은행전환을 결정해 기적적으로 IMF바람을 피하고 개설을 준비 중인 것을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알겠다.


재무당국이 권한 은행전환을 앞장서 반대했던 김 사장은 "대주주가 어떻고"등, 여러 이유를 들어 변명도 늘어놓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 그런데 점을 보러 가자니! 나는 우리가 처한 현실과 대화 내용이 기막히고 믿어지지 않아 취기가 오른 김 사장의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혼란의 시대, 하루 앞이 궁금한 나 역시 처지는 다를 게 없는지라 따라나서기로 하고 우리는 낮술도 깰 겸 명동에서 삼청동까지 꽤 먼 길을 걷기로 했다.


삼청동의 '점 보는 집'은 대기실이 넓은데도 사람이 꽉 들어찰 정도로 붐비고 있었고 대체로 나이 든 여자 손님이 많았지만 IMF혼란기이다 보니 우리 나이 또래 남자들도 몇 명 있었는데 거의 모두가 지치고 힘든 모습들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먼저 불려 들어간 김 사장이 점괘가 좋았는지 밝은 얼굴로 나왔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들어가 보니 한복 입은 중년 여자가 방 가운데 앉아 나를 보자마자 대뜸 반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왔어, 비행기 타고 먼 데 가서 살게 될 테니 걱정 말고 몸이나 잘 챙겨!" 하며 나가라는 시늉으로 손을 내저었다.


선불한 오만 원 복채가 아깝기도 해 몇 마디 물어보려 했으나 점쟁이는 눈길도 안 주고 다음 손님을 들이는 바람에 엉거주춤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점 집을 나서며 김 사장과 점괘를 비교해 보니 둘 다 나쁘지 않은지라 우리는 모처럼 기분이 좋아 서로를 격려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비행기를 탄다고?’ 나는 이 뜻밖의 말을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또한 한참 전, 선배 언니를 따라 점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곧 물 건너가서 살게 될 거란 말을 들었다고 하며 신기해했다. 요즘 밤낮으로 머리 아파하는 나에게 말해봤자 핀잔이나 먹을 것이 뻔해 그냥 덮어두었다고 했다.


우리는 하도 어수선한 시기이니 점쟁이가 넘겨짚고 그럴 수 있겠다는 말로 피식 웃어넘겼지만 사실 그 뒤에 출국금지는 해제되었고 피소된 국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승소하여 없던 일이 되었으며 형사고발은 보류된 데다 결국 이민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으니 점괘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모든 게 절망적이고 앞이 캄캄할 때 한 마디 말로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다름 아닌 삼청동 점쟁이였다.


그날 점쟁이는, 내가 회사 파산 이후 온갖 걱정에 많은 날을 불안에 떨고 잠 못 이루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때문이라는 것과, 이민 비행기를 타는 몇 년 뒤의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낯선 타국에서 가슴 졸이며 겪은 모든 일도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고 우리 인생 전체가 그렇다고? 내가 살아왔다는 것도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그저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일 뿐이라고?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다면 될 일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고 안 될 일은 발버둥 해봐야 어차피 안 된다.

인생길에서 해답을 미리 알고 살았더라면 시행착오도 않고 시간낭비도 덜하고 사는 게 좀 편했을까.

아니면 조마조마 두근두근 까 보는 재미가 없으니 좀 싱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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