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연구팀은 38쌍 남녀가 포옹한 후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스킨십을 하면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고 혈압도 낮아져 심장병이 생길 가능성이 감소한다고 했다. 또한, 메릴랜드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의사들이 공동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몸을 만지거나 손을 잡아주면 심장 박동 수가 변화하는 것이 관찰되었고, 심지어 온몸이 마비된 상태의 환자들도 스킨십을 하면 심장 혈관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의 저자 박혜란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도 서로 손을 잡거나 기대거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스킨십을 한다고 했다. 어떨 때는 좁은 소파에 모여 앉아 몸을 밀착시키고 서로 발가락 하나라도 걸칠 정도로 가족 간에 스킨십을 자주 했다고 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부모와의 스킨십 경험이 거의 없는 거 같다. 스킨십은커녕 이야기도 별로 나누지 않고 그저 조용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사실 난 다른 가정들도 나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중학교 때 교 때 산골에서 읍내 있는 학교로 통학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 있다. 집에 도착하니 친구 아버지가 친구를 두 팔을 크게 벌려 꼭 안아주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도 다가와 딸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누군가에게 안긴다는 것 좀 낯설고 어색했지만, 기분은 묘하게 좋았다. 친구 아버지 품은 참 따뜻했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아주 달라서 어리둥절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부모님이나 나의 부모님 세대는 비슷한데 왜 나의 부모님은 자식인 나에게 스킨십을 하지 않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나름 답을 찾았다. 아마도 친구의 아버지는 성장할 때 부모로부터 스킨십을 경험하며 자랐고,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경험 없이 성장했을 거 같았다.
내가 아기였을 때 부모님이 안아주고 업어주면서 키웠듯이 나 또한 자녀를 그렇게 키웠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스킨십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나 역시 아들이 초등학생 되면서부터는 스킨십을 하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져서 스킨십을 하지 못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인데도 왜 그리 어색해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바로 내가 스킨십 경험을 하지 않고 자랐기 때문이리라.
남편이 목회자로서 새 삶을 시작하는 곳에서 「아버지 학교」 과정을 수료한 후 눈에 띄게 변화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스킨십이었다. 한집에서 살지 못하고 떨어져 생활하다가 가끔 아들을 만나면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면서 부자간의 관계도 좋아졌다.
2009년에 나는 「어머니 학교」 과정에 참석했다. 자녀를 많이 안아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교육을 통해 수없이 들었다. 교육받는 4주 동안 부자연스러웠지만 억지로라도 스킨십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교육과정이 끝나니까 도루묵이 되었다. 스킨십이 생활화가 된 남편은 스킨십을 하며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헤어질 때도 포옹하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따뜻해져 온다. 남편 따라 아들과 포옹하기를 자꾸 하다 보니 어색함이 많이 줄어들었고 지금은 청년이 되어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아들들을 만나면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생활할 2021년 여름휴가를 맞아 울산 시누이 집으로 갔다. 방역지침을 지켜가며 잠시 머무르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조카들을 꼭 안아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조카들이 자신의 부모로부터 스킨십을 받아 본 적 없었기에 조금 당황해하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느라 고생하고 있는 시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렇듯 스킨십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킨십이 몸에 조금 익숙해질 때 학생들에게 스킨십을 이용하여 인사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교실에 들어오면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학생에게 “그래, 어서 와, 반가워.”라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교실로 들어오는 어린이를 안아주면서 “사랑합니다”라고 서로 말하며 인사를 건넸다. 하교할 때도 마찬가지로 “사랑합니다” 인사를 했다. 반 어린이 중에 어떤 남자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 안았고, 어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처럼 포근히 안겼다. 여자 어린이는 나보다 더 힘 있게 꼭 껴안아 한참 동안 안겨 있기도 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다. 복도나 교외에서 만나면 남학생은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하고, 여학생은 나를 보면 두 팔을 벌려 안기며 내 몸을 마구 흔들며 정을 표현한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모의 장례를 경험하게 된다. 11년 전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조문 온 사람 중에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의 어깨와 등을 다독여 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넓은 가슴으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스킨십이 그 어떤 위로보다 큰 위로가 됨을 어머니의 장례 때 경험을 통해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