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는 저마다의 땅콩집이 있다

'집'이라는 것은 본래, 침해받지 말아야 할 공간이죠

by 김희영


1.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땅콩집 마을이다.

칸막이로 둘러싸인 공간들. 사람들은 칸막이 안에 몸을 숨기고 일을 한다. 나는 이 공간을 '땅콩집'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땅콩집에서 무언갈 하고 있다. 남모르게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정말 열심히 서류를 들춰볼 수도 있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 나처럼 눈치를 보며 글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면 일을 열심히 할 때를 제외하곤 백이면 백, 미어캣처럼 얼굴이 퐁 튀어 오른다. 그와 동시에 상사의 험담을 하던 메신저 화면이 재빠르게 꺼진다.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나의 땅콩집에는 다양한 사무용품이 있다. 없는 게 없는, 도라에몽 호주머니.

널브러진 서류며 커피 자국이 남은 이면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펜,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탁상달력. 이래 봬도 인스턴트커피는 메마를 날이 없다. 회사가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준비한 소소한 배려다.

글을 써야 하는 부서의 특성상 내 자리는 늘 서류나 자료로 너저분하다. 치워도 치워도 어지러워지는 이상한 책상이지만, 난 이 땅콩집에서 1년 하고도 3개월을 지내왔다. 지저분하다곤 해도 엄연히 나만의 안락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컴퓨터와 아이컨택을 하며 온종일 씨름한다. 컴퓨터 모니터 속에는 한글이나 인디자인 같은 프로그램이 띄워져 있긴 하지만, 한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메신저 공간도 마련돼 있다. 직장에서의 고충을 털어놓는 친구들과의 대화방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사회의 막내들이므로, 우리는 메신저를 통해 서로 공감하며 사회 생활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가끔 메신저로 목을 축이는. 내게 메신저는 마치 사막 같은 사무실에서 맑은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2.

그나저나, 언젠가부터 우리 집 물건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자리의 펜이나 자, 테이프 등이 없어졌다. 어쩌면 티 나지 않게 포스트잇도 쓰일지 모르는 일이다. 대체 누가 쓰는 거지? 계속된 실종에 머리를 굴려본다. 아무도 사용 못 하게 하기 위한 잔머리, 이름을 써보고 화려한 꽃 스티커를 붙여보고 책꽂이 사이에 꼭꼭 숨겨도 본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내 사무용품은 누군가에 의해 꿋꿋이 쓰인다. 쓰지도 않은 내 물건을 내가 찾으러 다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누군가에게 비참하게 괴롭혀진 내 사무용품은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다. 가위가 대표적이다. 펜 같은 경우는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도 잃어버린 나의 펜은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거나 잉크를 토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3.

나의 땅콩집 옆에는 땅콩집 이웃이 있다. 이웃이라곤 하나 가벼운 눈인사나 떡을 돌리는 행위 따윈 일절 이뤄지지 않는다. 조금 애매한 사이다. 어쩌면 경계해야 할 적진일지도 모르는 집. 옆집 사람은 가끔 스토커처럼 내 집을 염탐한다. 그것은 나의 물건을 탐하는 눈빛과는 다르다. 은근슬쩍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쳐다보는 호기심의 눈빛이며, 혹시 험담을 하거나 이력서를 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구린 의도에서 비롯된 눈초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잘못 걸리면 나는 회사 내 소문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열심히 일하고 있어도 괜히 유난을 떨며 더 오버스럽게 일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만 좀 봐. 그러다 눈이 관자놀이에 달리겠어!'

속으로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이웃이라 쓰고 염탐꾼이라 읽는 내 옆 사람들은 나의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본인들의 눈빛이 서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사실 내 뒤통수와 관자놀이에는 보이지 않은 눈이 달려있다. 언제, 어디서, 어느 곳에서 내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막내라고 해서 이런 것까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나 나의 사무용품을 되찾아오겠다는 불굴의 의지 따윈 부릴 수가 없다. 그만 좀 쳐다보라고 화를 낼 수도 없다. 속으로 혼자 되뇔 뿐이다. 사무용품을 언제나 갖춰놓고 막내들의 모니터는 훔쳐보지 않는 상사가 되어야겠다고.

오늘도 모두의 사무실 땅콩집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니, 사무실 막내들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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