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말귀를 대체 왜 못 알아듣는 거냐?"
내가 회사에 발을 들인 지 딱 1년 차 되던 시기였다.
글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한국어'라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언어의 장벽이 생길 수 있을까. 그래서 한때 이 장벽 때문에 많이도 힘들었다. 뭇 연인 중 남자들이 여자들의 언어를 알아먹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회사에는 어쩐지 회사만의 언어가 있는 듯했으니까.
난 정말이지 내 화법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상사에게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보았는데 물어본다고 발끈했다. 어떤 날에는 눈치 보며 묻지 못하는 내 모습에 '괜찮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봐도 돼'라며 상냥하게 말하기도 했다. 난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은 잘 알아듣고 적응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나만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의문들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 마음 뒤쪽에 슬쩍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야!' 라는 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듣는 시기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는 완곡한 표현을 쓰는 일뿐이었다.
'그건 아닌데요' 보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처럼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최대한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 듯 감추면서, 은근히 드러내는 화법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완곡한 표현을 쓰려 노력해도, 상사는 늘 내게 직설적인 표현을 했다. 언성을 높이며 너무나도 쉽게 '그건 아니야'를 외쳤다.
"도대체가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먹는 거야?"
쌓이던 고민은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장난에 터지고 말았다.
퇴근 후 카페였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잔업을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친구가 앉아있었는데, 잠시 문서에 집중하는 사이 친구와의 대화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미안한데, 다시 한번 말해줄래?' 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도대체가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먹는 거야?' 라고 한 것이다. 겨우 그것뿐이다. 절대 기분이 상할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풍선에 바늘이 닿을 듯 말듯 했던 감정이 결국은, 그 한마디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 밤, 카페의 한 쪽 구석에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펑펑 울고 말았다. 친구가 괜히 미안하다고 했다. 절대 미안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친구는 얼굴을 붉혔다. 당황했을 것이다. 분명 장난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친구에게 회사에서의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내 말을 듣던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냐. 너와 대화하는데 난 한 번도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없어. 그거야, 회사에서만 그런 거잖아. 나랑 대화할 때도, 다른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대화에 불편한 걸 못 느꼈잖아. 그럼 된 거야. 네가 이상한 게 아냐."
친구의 위로에 나는 남은 눈물 한 방울을 닦아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쓰는 화법이 따로 있는 걸까. 그동안 살면서 내가 언어를 잘못 써왔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울음을 그치고 조금은 넓어진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확실히 회사에서는 일상과는 다른 분위기와 대화가 있었다.
수직적인 구조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회사의 문화였다. 고착된 이 문화에 상처 받고 울어봤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만 아플 뿐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기분에 따라 던진 타인의 말에 상처 받을 필요가 없다. 귀담아 듣고 아파하지 말자. 타인은 뒤돌아선 순간 잊어버릴 말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곡한 표현을 쓴다.
설령 상사가 내게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퍼붓는다고 해도, 나는 변함없이 완곡한 표현을 쓸 것이다. 분위기를 유하게 풀어 나가려 해 볼 것이다. 상사를 위한 아부 따위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덜 공격적인 말을 받기 위해서, 내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는 친구의 말처럼 그렇게 천천히 내려놓는 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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